사해 두루마리 권위자는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 롤랑 드 보Roland de Vaux신부다.
프랑스 출신으로 당시 예루살렘 성서대학Ecole Biblique 교수로 있었다.
발견된 문서가 돈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도굴이 시작되었다.
두루마리를 팔겠다는 접촉이 드보 신부에게도 왔다.
도굴을 막으려 정부에 알렸다.
군인과 함께 문화재 관리위에서 나섰지만 수백 개의 조각문서는 요르단으로 넘어간 뒤였다.
결국, 이스라엘은 요르단 정부에 15,000 요르단 파운드를 지불하고 사들인다.
4만 달러가 넘는 돈이었다.
드 보 신부는 두루마리가 한 곳에만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만일을 대비해 분산 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문서를 처음 발견했던 목동을 찾아내 동굴이 있던 절벽을 확인한 뒤 탐사를 계속했다.
이후 동굴은 계속 발굴되었고 수백 개의 두루마리를 추가로 발견했다.
마침내 바위 아래 땅속에서 옛 도시의 흔적까지 찾아냈다.
두 겹으로 된 성벽 안에는 급수시설과 공동묘지도 있었다.
방에는 책상과 걸상이 먼지에 덮여있었고 잉크병과 붓까지 있었다.
동굴 문서들이 그곳에서 기록되었음이 분명했다.
실제로 잉크병의 잉크와 두루마리 글씨의 잉크가 같은 것으로 훗날 밝혀졌다.
쿰란 동굴은 1956년까지 11개가 발견되었다.
발견순서에 따라 1Q(Qumran Cave1)에서 11Q까지 번호가 매겨졌다.
600종이 넘는 문서에 두루마리 형태를 갖춘 것도 10권 이상이었다.
보존상태는 좋았다.
건조한 사막기후가 부패를 방지했던 것이다.
하지만 조각으로 발견된 문서를 짜 맞추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작업을 위해 사해문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록펠러 박물관으로 보내졌고
현재까지 그곳에 보존되어 있다.
현대성경의 근본자료는 마소라 사본과 70인 역 그리고 불가타 사본이다.
마소라 사본은 유다인 학자들이 필사했기에 특별의미가 있다.
하지만 구약을 모두 담고 있는 최초사본은 레닌그라드 사본으로 AD 1008년 완성되었다.
고대 히브리어는 모음이 없고 자음만 있기에 7세기부터 모음을 달기 시작했다.
작업을 주도한 학자를 마소라라 했고 모음이 붙은 성경을 필사했기에 마소라 사본이라 한다.
70인 역은 기원전 3세기 히브리 성경을 희랍어로 번역한 것이며
불가타 사본은 라틴말로 번역한 것이다.
사해문서는 세 사본보다 훨씬 이전 것이기에 구약성경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자료다.
신은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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