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카 성삼일이 뭐냐고 물으면, 신자들은 흔히 요일 앞에 거룩할 성(聖) 자가 붙은 삼일 성목요일, 성금요일, 성토요일이라고 대답하는데, 틀렸다. 부활 주일이 여기에서 빠졌다.
사실 파스카 성삼일은 목금토 3일이 아니라 부활 주일까지 포함해서 목금토일 4일이다.
‘전례주년과 전례력에 관한 일반 규범’ 9항은 아주 분명하게 “주님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성삼일은 주님 만찬 저녁 미사부터 시작하여 파스카 성야에 절정을 이루며 부활 주일의 저녁기도로 끝난다”라며 파스카 성삼일이 목금토일 4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번 더 질문을 던질 수 있겠다. 실제로는 4일이면서 왜 성삼일이라고 부르며, 또 성삼일이면 그냥 성삼일이지 왜 ‘파스카 성삼일’이라고 부를까 하는 궁금증이다.
파스카 성삼일을 이해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파스카’란 말을 이해해야 한다. 파스카란 ‘건너간다’는 말인데,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홍해를 ‘건너간’ 사건을 기념하는 축제 이름이었다.
이 ‘건너감’은 단순히 물을 건너간 행위가 아니라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간’ 행위였다.
이집트 탈출 사건 일화들에는 이렇게 죽음에서 당신 백성을 구해 주시는 하느님의 구원 업적이 계속 이어진다. 모세를 보내시고, 파라오에게 재앙을 내리셨다.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 백성의 장자들을 살려 주시고, 홍해를 건너게 해 주셨다.
그뿐만 아니라, 당신이 구해 내신 백성과 시나이에서 계약을 맺으셨으며 40년 광야 생활 동안 그들을 인도하셔서 마침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살게 해 주신, 이 모든 역사의 정점에 있었던 사건이 홍해를 ‘건넌’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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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해를 건너는 유대인', 이반 아이바조브스키.(1891) | ||
이스라엘은 이 사건을 파스카 축제를 통해 대대로 기념함으로써
첫째, 구원자 하느님을 기억하며 감사 찬미 드리고
둘째, 구원된 자신들이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음을 기억하며 이 변화된 신분에 맞갖게 살아갈 것을 다짐했던 것이다.
그리고 셋째, 자신들이 앞의 두 가지를 실행하면 아브라함에게 하신 축복을 영원히 받게 되리라 믿고 바랐던 것이다.
그리하여 파스카 축제는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는 행위가 아닌, 이스라엘을 하느님의 백성으로 탄생시키는 산모 역할을 하면서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이 되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사건을 새로운 파스카 사건으로 보았다.
예수님께서도 이미 공생활 동안 여러 번 당신이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루카 9,31)을 예고하시면서 당신의 죽음이 모든 사람을 위해 대신 죽는 행위, 곧 파스카 축제의 어린양처럼 죽는 것임을 자주 밝히셨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신”(요한 13,1 참조) 것을 제자들은 사실 믿지 못했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파스카 축제 마지막 날, 곧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50일째 되던 날, 베드로 사도는 예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것과
우리가 이를 믿고 회개하기만 하면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이라고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에게 외쳤다.(사도 2,14-47 참조)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교회였으며,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사도 2,42)
교회는 그리스도의 파스카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고 생긴 처음부터 빵을 떼어 나누는 일, 지금의 표현으로 말하면 미사를 봉헌하는 일에 전념했다.
교회는 처음부터 매 주일에 모여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며 말씀을 듣고 빵을 나누었다. 주일 예배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가장 토대가 되는 이유다.
이것을 일년에 한 번 유대인들의 파스카 축제일 근처에 오는 주일에 더 크고 장엄하게 거행한 것이 그리스도교의 부활절이었다.
그러나 원래 이날을 부른 용어는 부활절이 아니라 ‘파스카’였다.(지금도 공식적으로는 역시 똑같이 파스카다) 주일에 거행했던 그리스도교의 파스카 축제는 원래 하루에 거행하는 것이었지만, 나중에 발전하면서 이틀간의 단식이 앞에 붙게 되었다.
그 이유는 유대인들의 파스카 거행 관습인 하루 단식을 모방한 것도 있지만, 이때가 그리스도교 예비자들이 세례를 받던 때라서 세례 준비 조건으로 금, 토 이틀간 단식을 했다.
이렇게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니 그분과 함께 살리라고”(로마 6,8) 믿고 세례를 준비하던 이들에게 이 금토일 삼일은 그야말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땅에 묻히고 사흘째 다시 살아나는 그런 체험이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는 것이 그들에겐 죽고 묻히고 부활한다는 세 가지 차원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이 금토일 삼일은 날짜만 삼일이지 실은 분리될 수 없는 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삼일의 정점은 말할 필요도 없이 세례를 받고 교회 모임에 들어와 처음으로 성찬례에 참석해서 축복된 빵을 나누어 먹으며 자신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가 되었음을 깨닫고 기뻐하는 순간이었다.
이 세례성사와 견진성사와 성체성사가 베풀어지는 순간이 바로 파스카 성야였다.
토요일 저녁 세례부터 시작해서 주일 아침 미사와 영성체로 끝나는 그 긴 밤을 보내는 신자들은 자신들이 신약의 새로운 하느님 백성으로 태어났고, 다시 믿음을 고백했으며, 사도행전의 예루살렘 신자들이 느꼈던 구원의 기쁨을 체험했다.
4세기 이후 중세를 거쳐 20세기에 이르기까지 파스카 성야를 준비하는 앞의 요일들, 그중에서도 목금토 이 삼일에 여러 변화가 많이 생겼다. 주님의 수난 일화를 기억하며 역사적 시간과 장소를 모방하며 기념하는 예식이 많이 도입되었다.
그러면서 목요일 저녁에는 최후의 만찬과 발씻김, 금요일에는 십자가 경배, 토요일에는 집(무덤 대신에) 축복 등등이 있었다.
풍성해진 듯 복잡해지고, 심오해진 듯 난해한 말씀과 예식들을, 오래됐으나 늘 새로운 ‘파스카’ 중심으로 재편했다. 이것이 비오 12세의 성주간 전례개혁(1951-1956)이다.
여기서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가장 중심은 ‘파스카 성야’(부활 성야)를 초기 교회의 모습처럼 바꾸어서 밤 전례에 참석하는 신자들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태어난 기쁨을 맛보게 하는 것이었다.
파스카 성야를 준비하며 단순히 말씀 듣기와 단식으로 그 앞 시간들을 보냈던 옛 전통에 따라,
지금의 성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부터 성토요일까지에 오는 예식들이 파스카 성야에, 초점이 맞추어진 단 하나, 그리스도의 신비를 거행하는 것임을 드러낼 수 있게 개혁되었다.
성삼일을 그냥 성삼일이 아니고 ‘파스카 성삼일’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기간에 우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느님의 여러 구원 역사를 기억하지만,
중요한 것은 전례를 거행하는 지금 여기서 우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죄와 죽음에서 벗어나 자비로우신 아버지의 나라로 ‘건너가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파스카 성삼일의 정점인 파스카 성야를 다음과 같은 노래로 마무리하며, 다음날인 주일을 거쳐 파스카 시기 50일 동안 이 노래가 울려 퍼지게 할 것이다.
“우리의 파스카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도다”(1코린 5,7 참조: 파스카 성야 영성체송: 예수 부활 대축일의 복음 환호송과 영성체송)
최종근 신부(파코미오)
1989년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 입회하여 1995년에 첫 서원을 했다. 1999년에 사제가 되었고, 같은 해에 대구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영성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 교황청립 로마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을 공부해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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