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이집트·시리아 3개 종파, 예수 무덤서 부활절 미사 동시 진행
(예루살렘=연합뉴스) 김선형 특파원 = "저들의 교회보다 우리 교회 규모는 보잘것없이 초라합니다. 하지만 뭐 어떻습니까. 우린 말씀에 따라 기도하고 있습니다."
부활절인 27일(현지시간) 오전 이스라엘 예루살렘 올드시티(구시가지) 성묘교회에서 시리아 정교회 사제라고 자신을 소개한 라미(37)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하며 종파별로 동시에 따로 미사를 봉헌하는 상황을 설명했다.
교회 안은 예수 무덤을 중심으로 기독교 3개 종파(로마 가톨릭, 이집트 콥트교, 시리아 정교회)의 미사가 동시다발로 집전됐다.
로마 가톨릭교는 교회 전면에서 대형 파이프 오르간 반주에 맞춰 2천여 명이 넘는 신자들과 라틴어로 '알렐루야'를 연발하며 대규모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 중간 침묵이 흐르면 교회 뒤편에 자리를 잡은 이집트 콥트교와 시리아 정교회의 100명도 안 되는 신자들이 부르는 아랍어로 된 성가가 울려 퍼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성묘교회는 2천여 년 전 예수가 숨지고 부활한 성지다.
1850년대 오스만 제국(터키)의 '현상유지' 칙령에 따라 기독교 6개 종파(그리스 정교회, 로마 가톨릭, 아르메니아 교회, 에티오피아 정교회, 이집트 콥트교, 시리아 정교회)가 구역을 나눠 공동 관리하기로 했다.
그러나 신도 수와 자산 등 힘의 불균형에 따라 세 종파가 사실상 대부분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종파 간 분열이 심해 불과 4∼5년 전만 해도 부활 전야 '거룩한 불'(Holy light) 미사에는 집단 싸움도 벌어졌다. 그래서 지금도 이슬람교도들이 교회 문지기로서 종파 간 중재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이집트 콥트교 사제들은 오전 9시 45분이 되자 약속한듯 서둘러 미사를 끝냈다.
콥트교 신자 나빌(58) 씨는 "약속 시각에서 2분만 지체돼도 그리스 정교회나 교회 관리인들이 사제들을 끌고 나간다"며 서둘러 미사를 마친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 콥트교는 예수 무덤 뒤쪽 개방된 공간에 한 칸짜리 작은 회관을 차리고 자신들만의 부활절 미사를 올리고 있었다.
콥트교 주교는 피부색이 다른 신자들에게까지 십자가 문양이 새겨진 빵 조각을 성체로 건넸다. 통제 속에 열린 로마 가톨릭교 미사와 달리 주교가 성수를 마구잡이로 뿌려 관광객들이 몰려들기도 했다.

터키, 이라크, 시리아인으로 구성된 시리아 정교회의 미사는 콥트교보다 단출했다.
미사 장소는 교회 제일 뒤편 예수의 제자 요셉의 무덤으로 알려진 또 다른 동굴이었다.
이라크, 터키, 시리아 출신의 주교 3인이 한 자리에 나란히 모였으나 바깥에서 전해지는 로마 가톨릭교 미사 소리로 주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을 때가 더 잦았다.

미사 후 "시리아 난민을 위해 기도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말카 모라드 시리아 주교는 "시리아만이 아닌 세계 평화를 염원했다"고 답했다.

한편, 그리스 정교회는 율리우스력에 따라 오는 5월에 부활절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에티오피아 정교회는 수일째 문을 닫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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