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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환 추기경. |
“비록 완벽하진 않더라도 신문의 행간 곳곳에 인간에 대한 애정이 깊게 깔린 그런 신문이 되도록 우리는 모두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1988년 5월 15일자에 실린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의 평화신문 창간 기념 인터뷰. 김 추기경은 “참된 평화를 이룩하는 데 이바지하는 신문이 돼 달라”고 당부했다.
평화신문은 김 추기경의 당부대로 이 땅의 평화에 이바지하기 위해 목소리를 냈고, 교회 곳곳의 소식을 전하며 한국 교회 역사를 지면에 새겨왔다.
때로는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도 했다. 평화신문의 눈에 비친 한국 교회의 지난 28년은 어떤 모습일까. 평화신문을 다시 펼쳐봤다. 교회는 그동안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평화신문은 사회와 교회에 어떤 제언을 했는지 살펴봤다.
임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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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대상자가 2014년 6월에 열린 제71차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성금전달식 ’미사 중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다. |
사랑, 하나 되고 피어나고
평화신문은 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왔다. 관심에만 그치지 않고, 그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독자들과 함께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도 했다.
1996년에는 평화방송 TVㆍ라디오와 소년소녀가장 돕기 운동 ‘사랑으로 하나 되어’ 캠페인을 시작했다. ‘사랑으로 하나 되어’는 한 면을 할애해 부모를 잃고 어렵게 살아가는 소년소녀가장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1996년 1월 21일자 신문은 “이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두 분의 사제는 300만 원과 100만 원을 보내왔으며,
서울 영등포본당 복사단은 용돈을 모아 6만 2850원을 전달해주는 등 많은 분이 ‘작은 예수’를 돕기 위한 사랑의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10여 명의 주교도 캠페인에 동참하며 사랑 나눔에 앞장섰다.
1996년 5월까지 이어진 캠페인에 소년소녀가장 12명이 소개됐고, 후원자는 888명, 후원금은 1억 7000만 원이 넘었다. 결연을 하고 지속해서 후원하겠다는 뜻을 밝힌 이도 140명에 이르렀다.
가난한 이웃에 대한 관심은 2001년 시작된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로 이어졌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지면에 소개하고, 독자들의 보내 주는 후원금을 대상자에게 전달하는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는 지금까지 727명에게 94억여 원을 전달해 희망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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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세 통계는 언제나 ‘위기’
1996년 5월 5일자 기사 ‘천주교 신자 345만 명’은 “신자 증가율이 처음 3%대(3.36%)로 떨어졌다”고 우려하며 “전체 교회 차원의 적극적인 선교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자 증가율(2015년 1.7%)이 1%대에 머물고 있는 현재 상황을 생각하면 ‘배부른 소리’처럼 들리지만 20년 전에는 분명 ‘위기’였다.
당시 평화신문이 내놓은 ‘대응책’은 ‘영성적 가치 추구보다 물질 만능 풍조에 더 빨리 젖어드는 현대인들을 위한 적극적인 선교 대책 수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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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열섭(청주교구) 신부는 1996년 5월 26일자 기고에서 쉬는 교우 증가에 대해 교회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2000년 6월 11일자 사설은 “1990년 말 23%였던 쉬는 신자 비율이 10년 사이에 8% 이상 높아졌다는 것(1999년 31.7%)은 결코 예사롭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다”면서 주일미사 참례율이 29.5%를 기록, 처음으로 30% 아래로 떨어졌다는 것도 충격을 더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4~2015년 주일미사 참례율은 20.7%로 2~3년 안에 20% 아래로 떨어지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청소년은 교회의 미래
‘젊은이는 교회의 미래’. 20년 전 사설(1996년 1월 4일자) 제목이자 요즘에도 종종 볼 수 있는 기사 제목이다.
청소년들의 신앙생활이 위기에 빠져있다는 지적과 청소년 사목 활성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20년 넘게 계속되고 있지만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 사설은 “주지하다시피 오늘의 교회에는 젊은이들이 없다. 중고등학생의 불과 30%만이 주일학교에 참석하고 있고,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청년은 신자 청년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1996년에는 ‘유급 교리교사제 도입 절실’, ‘교회의 투자ㆍ관심이 부족’ 등 청소년 사목의 변화를 촉구하는 기획 기사가 많았다.
김 추기경은 그해 청소년 주일 강론에서 “주일학교 등록 학생 수 감소는 10~20년 후 교세의 급격한 감소를 의미하므로 유럽 교회처럼 노인들의 교회가 될 가능성이 많다”고 우려했다.
김 추기경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60세 이상 신자 비율은 1995년 10.7%에서 2015년 24.5%로 늘어났고, 19세 이하 청소년은 23.7%에서 10.7%로 급감했다.
2000년에도 청소년 사목은 여전히 교회의 고민거리였다. 3월 19일자는 서울대교구 ‘청소년사목 실태 조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본당 사제와 수녀, 교리교사들은 주일학교 출석이 저조한 원인을 ‘학교 공부’ 때문이라고 인식하고 있고, 학생들을 ‘놀러 가느라고’ 주일학교에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인터넷 참가’에서 SNS 사목까지
‘한국 천주교 인터넷 참가’. 1996년 3월 24일자에 실린 기사다. 1996년은 한국 교회가 ‘인터넷’을 처음 접한 해였다. 지금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당연한 듯 사용하고 있지만 20년 전만 해도 인터넷은 ‘새로운 세계’였다.
기사는 “전 세계 컴퓨터 통신망인 인터넷에 대한 열기가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교회도 인터넷에 ‘한국 가톨릭 사이트(site)’를 개설한다”고 알렸다.
이어 “한국 교회의 홈페이지가 설치되면 세계 어느 곳에서나 한국 가톨릭의 각종 정보를 받을 수 있다”며 “교황청과 한국 교회는 서류가 오고 가는 번거로운 절차 없이 인터넷을 통해 한국 교세 통계와 교황 담화문 등 각종 문서를 교환하는 일이 가능해진다”고 예를 들었다.
2011년 6월 5일자에는 ‘SNS(사회관계망 서비스)를 선교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라는 기사가 게재됐다.
15년 만에 인터넷을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0년 전 기자들은 아무 곳에서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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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교구 명동성당에서 열린 태교 음악회 및 축복 미사에서 지영현 신부가 임신부에게 안수기도를 해주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 사진 |
낙태, 지속적 비판
생명 윤리, 특히 낙태 문제에 대해서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다.
1994년 2월 6일 자 사설에서 서울대학병원이 낙태아의 뇌를 이용해 파킨슨병 환자를 치료한 사실을 언급하며 “이 세상에 태어나 울어보지도 못하고 수술칼에 난도질당해 죽어가는 태아의 들리지 않는 울음소리에 한 가닥 양심의 가책을 느끼자”고 울분을 토했다.
1996년 6월 16일자 사설에서는 “1994년 성비가 여아 100명당 남아 116명”이라며 “남아선호사상은 태아 성감별행위, 인공 임신 중절 등의 반인륜적 행위를 유발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논문 조작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황우석 교수의 이름은 2000년부터 등장했다.
2000년 8월 20일자 사설은 “황우석 교수가 남성 체세포를 여성의 난자에 주입해 융합시킨 수정란을 배반포 단계까지 분열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창조주 하느님의 고유 권한인 인간 생명 창조에 대한 조작은 그 어떤 명분이라도 용납될 수 없다”고 경고했다.
2000년 3월 26일자에서는 “낙태를 광범위하게 허용하는 모자보건법은 폐지돼야 한다”고 했고, 2011년 5월 1일자는 “낙태를 없애는 일은 아무리 힘들고 오래 걸릴지라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교회의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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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는 해외 선교 관련 기사의 단골 제목이었다. 사진은 남미 볼리비아 알토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효진(하느님 섭리의 딸 수녀회) 수녀와 아이들. |
해외 선교, 이제는 나누는 교회로
‘받는 교회에서 나누는 교회로’(1990년 5월 6일자).
해외 선교의 중요성을 이야기할 때마다 20여 년째 어김없이 등장하는 기사 제목이다.
1990년에는 ‘아직 모든 면에서 부족한 한국 교회이지만 외국 선교사들과 외국 신자들의 도움에 대한 보은의 차원에서 더 어려운 이웃 나라 교회와 나누려는 모습’을 보도했다. 당시 해외선교사 수는 100여 명이었다.
1996년 10월 20일자에서는 해외 선교 20년 만에 선교사 200명을 파견했다며 “한국 교회는 과거 받는 교회에서 이제는 나누는 교회로 그 역할을 달리하며 해외선교를 우리의 당연한 몫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나누는 교회’라는 표현은 지금까지도 해외 선교 관련 기사가 나올 때마다 언급되고 있다. 2015년 말 현재 해외 선교사 수는 교구 사제 99명을 비롯해 952명에 이른다.
응답하라 1990년대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기사도 눈에 띄었다. 지금은 중고등학생이 교복 입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1990년에는 교복이 있는 학교가 10곳 중 1곳 정도였다. 3월 18일자는 “중고교생 50%, 3년 안에 교복 입는다”고 보도했다.
‘승용차 안 타고 성당 오기 실천을’ (1990년 6월 10일자) 기사는 “미사 참례를 위해 신자들이 타고 온 승용차가 성당 주변 도로를 주일마다 가득 메워 인근 주민들에게 더는 불편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높게 일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일의 성당 주변 주차 문제는 26년이 지난 지금도 진행형이다.
‘마을버스는 도시의 사랑방’ (1994년 1월 23일자) 기사는 “마을버스가 골목, 산동네 누비며 도시의 벽을 허물고, 같은 정류장에 내리는 사람은 이웃사촌이 되고 있다”며
“얼마 전 우연히 마을버스에서 알게 된 이웃사람과 퇴근길에 술을 한잔 나눈 후 지금은 가깝게 지내고 있다”는 한 회사원의 발언을 실었다. 요즘은 거의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임영선 기자
1988~2016년 한국 교회 주요 소식들
20년 만에 맺은 결실. 가경자 최양업 신부
‘최양업 신부 시성 운동 본격화’. 1996년 신년호 1면 머리기사다. 같은 해 10월에는 ‘주교회의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 추진 승인’이라는 소식을 볼 수 있다.
그리고 20년 하고도 4개월이 지난 5월 8일자 1면에 ‘증거자 최양업 신부 ‘가경자’로 선포’라는 기사가 실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4월 26일, 최양업 신부가 ‘영웅적 성덕’을 실천하며 살았다는 내용의 교령을 승인한 것이다. 아직 시복ㆍ시성이라는 절차가 남아있긴 하지만 20년 만에 값진 결실을 봤다.
‘성신’(聖神)에서 ‘성령’(聖靈)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어린 시절 세례를 받은 중ㆍ노년 신자들은 ‘성령’ 대신 ‘성신’이 들어간 성호경이 낯설지 않다. 1996년 대림 제1주일부터 미사 기도문에 큰 변화가 있었다. ‘성신’은 ‘성령’으로 ‘천주’는 ‘하느님’으로, ‘내 탓이오’는 ‘제 탓이오’로 바뀌었다.
1996년 5월, 29년 만에 새 미사통상문이 확정되면서 일어난 변화였다. 5월 19일자 1면 기사 ‘새 미사통상문 확정’은 “1967년 확정된 현행 미사통상문이 현대 어법과 다르다는 지적에 따라 새 미사통상문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살아 있는 말로 미사를 봉헌’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고령의 신자들 사이에는 상당한 거부감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그러나 30년 만에 예스러운 어법을 버리고 일상 언어로 과감히 바꾼 것은 21세기를 앞둔 한국 교회에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단”이라고 평가했다.
천주교 성직자들은 1994년부터 납세
몇 년째 종교인들의 세금 납부를 두고 찬반 토론이 이어지고 있지만, 사제들은 1994년부터 세금을 냈다. 1994년 3월 20일자는 주교회의가 춘계 정기총회에서 성직자들 납세를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사설은 “주교회의는 성직자 납세를 확정함으로써 납세를 통해 국민의 의무를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평가했다.
5월 29일자는 수원교구 사제들의 납세 소식을 전하면서 “수원교구 주임 신부는 성무활동비ㆍ생활비 64만 원, 보좌신부는 45만 원을 받고 있으며
이에 따라 주임 신부는 월 9300원, 보좌 신부는 3700원 정도의 소득세를 내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김수환 추기경이 6월에 소득세 1만 6710원을 냈다는 기사도 있었다.
사형제 폐지 법안 통과는 언제쯤?
교회는 오래전부터 사형제 폐지를 위해 노력했다.
1996년 12월 8일자 기사 ‘그래도 사형은 안 된다’는 “헌법재판소가 최근 사형제도 합헌 판정을 내린 것은 반생명적이고 반시대적이라는 비판이 강력히 제기되고 있다”면서 “천부 인권인 생명권은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침해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2000년 8월 6일자는 ‘사형폐지에 관한 특별법안’을 여야의원 76명이 국회에 제출한 소식을 전했고, 2006년 3월 12일자 사설은 “부디 이번 17대 국회에서는 사형폐지법이 꼭 입법화돼 이 땅에서 사형이 영원히 사라지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사형폐지특별법안은 1999년 제15대 국회에서 처음으로 발의된 후 16ㆍ17ㆍ18ㆍ19대 국회에서 계속해서 발의됐지만,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맞서면서 자동폐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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