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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가톨릭] “불교 ‘이타적 보살정신’, 천주교의 자비와 통해”

dariaofs 2016. 5. 20. 11:12

- 주보에 ‘불교 자비사상’연재한 최동석 신부

베이징대서 ‘불교철학’ 전공
천주교 더 잘 알기 위해 선택

‘특별 희년’ 맞춰 기획 마련
두 종교‘자비’ 큰 차이 없어
선승도 수도자도 수행 전통
벽 허물고 대화 나눌 밑거름

천주교 인천교구(교구장 최기산 주교)는 지난 2월 말부터 이달 초까지 불교에서 자비(慈悲)의 의미를 짚어보는 글을 10회에 걸쳐 주보에 실었다.


인천교구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폐막 50주년이었던 지난해 12월 8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자비의 특별희년’을 선포한 것과 관련해 이 기획을 마련했다.


역사적인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은 ‘가톨릭 교회는 다른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성스러운 것을 배척하지 않는다’는 ‘비그리스도교와의 대화’ 정신을 담고 있다.

글쓴이는 천주교 사제로 중국 베이징(北京)대에서 ‘불교철학’으로 석·박사를 한 최동석(사진) 대구가톨릭대 교양교육원 교수. 최 신부는 18일 문화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우리나라에서 불교는 1000년 동안 함께해와 우리 역사라고 할 수 있다”며 “불교를 공부하면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 불교철학을 전공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최 신부는 베이징대에서는 불교의 능가경(楞伽經)을 전공했다. 그는 “능가경은 중국 선종이 6조 혜능에서 ‘금강경’을 주된 경전으로 삼기 이전인 1조 달마부터 5조까지 수행경전이었다.


능가경은 불교사상의 정수인 공(空)사상, 유식, 여래장사상 등이 들어 있어, 그걸 공부하면 앞으로 불교를 공부하는 데 더욱 확장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리스도교는 ‘자비의 희년’은 물론 ‘자비로우신 하느님’ ‘자비로운 사람이 되십시오’ 등으로 자비란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불교의 ‘자비’와는 차이가 있을까. 

“천주교에서 자비는 라틴어 ‘Misericordia’를 번역한 한 단어다. 초기불교에서 어원적으로 자(慈)와 비(悲)는 원래 별개였다.


‘자’는 일체중생에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 ‘비’는 불행을 없애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두 개념은 거의 같은 마음에서 출발하고 있어 중국에서 합성해 ‘자비’로 번역했고 우리가 받아들였다.


천주교에서 말하는 ‘Misericordia’와 불교의 ‘자’와 ‘비’에 대한 개념이 신학적으로 일치하느냐보다는 폭넓게 그 정신이 같다고 보는 게 이웃 종교와의 소통이란 측면에서 더 의미가 있다.”

불교는 수행을 통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종교로, 이는 그리스도교와 넘나들 수 없는 벽이다. 천주교에도 수행의 전통은 깊다. 

“불교는 ‘중생이 곧 부처다’라는 걸 인식하는 것인데 이는 천주교와 큰 차이가 있다. 천주교는 성령을 통해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과 일치하지만, 내가 그리스도가 되는 건 아니다.


이런 차이 때문에 불교는 수행과 관련해 아주 디테일하게 발전했다. 내가 공부한 불교는 교학(敎學)이지 오랜 수행을 통한 선학(禪學)이 아니어서 불교 수행에 대해 뭐라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교부시대 초기 수도자들부터 천주교의 수행 전통은 엄청나게 깊고 넓다. 이런 부분도 두 종교가 대화를 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최 신부가 이번 글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은 ‘보살(菩薩)의 정신’이다.

“대승불교는 초기불교나 부파 교단(소승불교)과 달리 ‘보살의 출현’으로 성립됐고, 보살은 대승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이다. 보살은 깨쳤음에도 불구하고 중생을 구제할 때까지 부처 됨을 보류한, ‘이타수행(利他修行)’을 실천하는 존재다.


이미 부처의 길에 들어서서 한 발짝만 내디디면 성불하는데, 어리석은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 됨을 잠시 보류한 보살의 정신, 참으로 아름다운 서원이 아닌가.”

최 신부는 “자비는 인간을 뛰어넘으면서, 인간 속에서 실현되는 것을 요청한다. 자비는 실천돼야 하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시작돼야 한다”고 글을 맺었다.  


                                                                  최동석 신부

엄주엽 선임기자 (문화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