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빌론의 포로생활은 기원전 538년에끝난다.
‘페르시아’가 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고 포로들을 자국으로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몇 차례에 나누어 바빌로니아를 떠났다.
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남아 있는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자신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았다. 이들이 최초의 ‘디아스포라’인 셈이다.
유다인들이 바빌론으로 처음 끌려간 것은 BC 597년이다.
이 해에 바빌로니아의 네부카드네자르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여호야킨’ 왕을 사로잡는다.
그는 성전과 왕궁의 보물들을 약탈한 뒤 새로운 임금을 임명했다.
그가 마지막 임금 ‘치드키야’다. 그리고는 여호야킨과 그의 가족을 끌고 갔다.
대신들과 기술자들, 그리고 수천의 젊은이들 역시 포로로 끌려갔다.(2열왕 24,14)
두 번째는 치드키야의 무모한 도전으로 이스라엘 왕조가 끝났을 때다.
화가 난 네부카드네자르는 예루살렘 성전을 완벽하게 파괴하고
주민들과 싸움이 가능한 모든 남자들을 포로로 데려갔다. 기원전 586년의 일이다.
이렇게 볼 때 바빌론의 포로생활은 길게는 60년이고 짧게 잡아도 48년 동안이다.
유배 중 유다인들은 종교예절을 금지 당했다.
수입과 노동력은 착취 당했으며, 희망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기댈 언덕은 오직 ‘야훼 하느님’뿐이었다.
다행히 바빌론은 이스라엘 백성을 한 곳에 모여 살게 했다.
노동력의 손실을 막기 위해 그랬던 것이다.
덕분에 유다인들은 개별적으로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괴로웠다.
왜 이렇게 고통을 겪어야 하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말해주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율법에 충실해야 다시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 믿었다.
유배지 에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렇게 해서 가족 중심의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현실만을 보던 시각에도 변화가 왔다.
비로소 사후세계를 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떠돌아 다녀야 하는 그들의 운명에 큰 도움이 되었다.
‘시나고게’(유대교 회당)가 처음 시작된것도 바빌론 유배 때다.다윗 이후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제사를 봉헌할수 있었다.
따라서 성전 파괴는 제사 드릴 장소가 없어진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들은 마음을 달래며 바빌론에서도 안식일과 축제일을 지켰다.
할례는 더 철저하게 시행했다.
이런 모임이 발전하여 시나고게가 된 것이다.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 제국 전역에 유다인들이 살았고 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뭉쳤다.
만남과 교육의 장소로 발전시킨 것이다.
‘회당장’에게는 엄청난 급료를 지급했다
신은근 신부(마산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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