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선박서 미사 집전하고 인권·복지 상담하는 '스텔라 마리스'
천주교 인천교구서 이주사목 겸해…"우리가 먼저 미소 건네야"

(인천=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한 해에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은 약 1천300만 명에 이른다. 관광객과 근로자·유학생 등을 모두 합친 연인원이다.
그러나 한국에 들어오고도 발을 땅에 딛지 못한 채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외국 선적의 외항선 선원들이다. 일부는 상륙 허가를 얻어 가까운 곳을 돌아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배에서 짐을 내리고 싣기를 기다렸다가 떠난다.
그들의 정다운 벗을 자처하는 단체가 천주교 해양사목회(The Apostleship of the sea)다. 본부는 영국 런던에 있고 100여 개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라틴어로 '바다의 별'이란 뜻의 '스텔라 마리스'(Stella Maris)란 별칭을 더 애용한다. 한국에는 천주교 부산교구와 인천교구가 해양사목부를 두고 있다.
인천교구의 김미카엘(41) 신부는 올 1월부터 해양사목을 맡고 있다. 2008년부터 20012년까지 필리핀 앙헬레스 한인성당의 주임을 맡았으니 생소한 일은 아니다.
사실 인천에 입항하는 배의 선원 가운데 신부를 가장 많이 찾는 이도 가톨릭 신자가 많은 필리핀 선원들이다.
"망망대해에 떠 있으면 하느님을 더 찾게 되지요. 다른 종교인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선교를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긴 항해에 지친 바다의 나그네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안전을 위해 기도하는 게 우리의 일이지요. 천주교 의식을 요청하면 그에 응해줄 따름입니다."
인천교구 해양사목회는 지난 5월 30일 선종(善終)한 최기산 전 인천교구장이 사목국장을 맡고 있던 1988년 항만사도회로 출범했다.
배에 올라가 영어로 미사를 봉헌하거나 고해성사를 받아주기도 하고 선상 복지나 인권에 관한 상담도 한다.
생일을 맞은 선원들에게 파티를 열어주는가 하면 티셔츠나 모자 등을 선물하기도 한다. 상륙하면 어디를 들르는 게 좋을지 알려줄 때도 있다.

9일 오전에도 김미카엘 신부는 필리핀에서 인천교구로 파견된 이주노동사목 담당 아르빈 모스케다 신부, 해양노동사목부 직원 김은숙 씨와 함께 인천항을 찾았다.
6부두에 정박해 있는 마셜군도 선적의 화물선 '하이드러스(HYDRUS)호'에 올랐다. 선원들은 모두 우크라이나 사람이다.
뜻밖에도 젊은 여자 선원이 반갑게 맞는다. 이들은 정교회 신도여서 종교의식은 행하지 않고 선물을 건네고 대화를 주고받다가 내려왔다.
두 번째 들른 배는 중국 선적의 '다리야 마(DARYA MA)호'. 곳곳에 붉은 바탕에 검은 글씨로 복을 기원하는 문구를 붙여 놓았다.
선장이 직접 나와 자기 방으로 안내한다. 인천에 차이나타운이 있다고 알려주자 선장은 '가보고 싶기는 한데 너무 바빠 하선할 틈이 없다'며 아쉬워한다.
"가톨릭 신자들은 멀리서 '스텔라 마리스' 심볼이 새겨진 우리 차량만 보고도 반갑다고 손을 흔듭니다. 종교가 달라도 웬만한 선원들은 우리를 압니다.
국제운수노조(ITF)와도 연계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중국 배는 선교를 하지 않는지 의심해 승선을 거부하는 사례가 많은데 오늘은 친절하게 맞아줘 놀랐습니다."
해양사목은 다른 사목과 달라 신도들의 얼굴이 늘 바뀐다. 누구를 만날지도 모르고 짧은 만남 뒤에 기약도 없이 헤어진다. 만나기 전후 연락을 주고받는 일도 없다.
김 신부는 신앙 공동체가 없는 것이 아쉬울 만도 한데 '어쩌면 그게 인생인지도 모른다'며 웃어넘긴다.
"한번은 필리핀 배에 올랐는데, 1년여 전 우리가 준 스티커를 붙여 놓았더군요. 우릴 늘 잊지 않은 것으로 느껴져 정말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그달에 생일을 맞은 선원들에게 케이크를 선물하고 파티를 벌이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어요. 그 모습을 보면 저희도 흐뭇해집니다.
위로하러 갔다가 위로받고 오는 셈이지요. 바다 사람들은 무뚝뚝해도 뭔가 통하는 게 있습니다. 눈빛을 교환하고 손을 맞잡으면 금세 친구가 되지요."
보통 3만t급의 화물선이 입항하는데, 그 정도 규모면 선원이 25명가량 된다고 한다. 배는 일단 육지를 떠나면 고립된 곳이어서 노사 문제가 생겨도 해결하기 어렵다.
김 신부가 배에 올라 선원들에게 애로사항을 물어보면 처음에는 입을 열기를 꺼리지만 눈치를 채고 따로 불러 면담하면 어려움을 털어놓는다고 한다. 어떨 때는 ITF 검사관에게 연락해 현장 조사를 벌이도록 요청하기도 한다.
"필리핀 배에 올랐을 때의 일입니다. 선장이 '어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선주가 허락하지 않아 못가고 있다'고 하소연하더군요.
곧바로 ITF 사무실에 연락해 선장을 교체해 귀국하도록 조치해준 적도 있습니다. 고마워 어쩔 줄 모르더군요. 이럴 때 보람을 느끼지요."

인천항에서 시작된 김 신부와의 인터뷰는 인근 중구 신생동의 해양노동사목부 사무실로 옮겨 계속됐다.
그는 이름이 곧 세례명인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났다. 여동생 이름은 데레사. 대를 이은 신자 집안은 아니고 부모님께서 인천 답동주교좌성당 예비교리자 교육에서 만나 결혼했다고 한다.
이름이 특이해 어릴 때 놀림도 많이 받았는데, 친구들은 당시 즐겨 먹던 사탕 이름과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밀크카라멜'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름이 '천사'이자 '성인'이라는 뜻이니 나쁜 짓을 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며 '불만'을 털어놓는다.
어머니 배 안에서부터 기도 소리를 듣고 자랐고,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예비성소자(聖召者) 모임에 나가기는 했지만, 사제가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었다고 한다. 수원가톨릭대에 입학했다가 1996년 신설된 인천가톨릭대로 옮겼다.
2004년 사제 서품을 받고 옹진군 대청도성당, 인천 남동구 서창동성당, 강화도의 갑곶순교성지성당 주임신부를 지냈다.


1883년 개항한 인천은 외국인의 한국 이주와 한국인의 해외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곳이기도 하다. 인천교구는 인천광역시를 비롯해 경기도 부천시와 김포시, 그리고 시흥시 일부와 안산시의 대부도·영흥도 등을 관할하고 있다.
김 신부는 인천교구 사회사목국에서 해양사목과 함께 이주노동사목도 맡고 있다. 관할 지역 안에 이주노동자 숫자가 많아 해양사목보다 일도 훨씬 많고 신경도 더 쓰인다고 한다.
다른 신부들과 돌아가며 답동성당에서 매주 일요일 오후 4시 영어로 미사를 집전하고 있고, 외국인노동자상담소에서 이주노동자들의 '고민 해결사'로도 나서고 있다.
이주노동사목부는 이주노동자들이 쉴 수 있고 한국어도 배울 수 있도록 '노동자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 사고나 질병으로 안타까운 처지에 빠진 이주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가톨릭 무료진료소'도 개설했다.
이주노동자 어린이집 '품 놀이터'는 인기가 좋아 일부러 이 근처로 이사 오는 사람까지 있다고.
"불법체류자를 우리는 미등록외국인으로 부르는데, 이들은 몸이 아프면 아무도 돌봐줄 사람이 없습니다. 성경에서도 나그네를 잘 대접하라고 했고, 예수께서는 이방인 여인에게 마실 물을 청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크게 보면 우리도 나그네입니다. 종교와 국적을 떠나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들에게 우리가 먼저 나서서 따뜻한 미소를 던지고 작은 정성이라도 베풀면 그들의 마음도 밝아지고, 나아가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밝아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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