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6년 9월 3일 다해 연중 제22주간 토요일(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dariaofs 2016. 9. 3. 01:19



부유한 귀족 고르디아누스(Gordianus)의 아들로 태어난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또는 그레고리오)는 로마(Roma)에서 교육을 받았고, 랑고바르드족(Langobard)의 이탈리아 침략이 로마를 위협하고 있을 당시에는 로마의 장관이었다.


수도생활을 오랫동안 꿈꾸어 왔기 때문에 그는 574년경에 로마와 시칠리아(Sicilia)에 수도원을 세우고 35세경에 수도자가 되었다. 579년부터 585년까지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교황 대사로 활약하다가, 5년 후에 자기 수도원으로 돌아온 뒤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수도자가 교황으로 선출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교회법령을 정비하고 무능한 성직자들을 해임시켰으며, 막대한 경비를 들여 자선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지혜롭게 교황청 재산을 관리했고, 랑고바르드족(Langobard)으로부터 포로들을 석방시켰으며, 부당한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기근의 희생자들을 구호하였다.


 593년 그는 랑고바르드족 침략군을 설득하여 로마를 평정시켰으므로 랑고바르드족의 왕과 함께 평화의 수호자로 존경을 받았다. 그는 위대한 주교이자 정치인이었다.

또한 그의 학덕은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레굴라 파스토랄리스’(Regula Pastoralis, 주교의 직책과 의무), ‘모랄리아’(Moralia, 욥서 주해), ‘대화집’을 비롯하여 800여 통의 서한들 속에 담긴 그의 사상은 서방교회의 공식 예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유럽의 역사에도 큰 발자국을 남겼다.


그는 잉글랜드(England)의 개종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고, 교황권이 교회의 최고 권위임을 재확립하였으며, 교황을 일컫는 칭호인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란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위대한 설교가였고, 로마 전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결과, 그는 “그레고리안 성가”의 편집자로 추앙받는다.


또한 베네딕토 수도회를 면속시켜 교황의 권위 하에 두었다. 그는 라틴 교부의 일원으로 공경을 받으며 중세 교황직의 아버지로 추앙받는다. 서거 즉시 시성되었다.



강론   :   루카 6,1-5(16.9.3)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루카 6,5) 


Debates about the Sabbath


영혼 구원을 위한 사랑의 법

어느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먹었습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왜 당신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금지된 밀 수확을 하느냐?” 하고 따집니다.


들은 밀 이삭을 자르는 행위가 안식일에 금지된 추수작업에 속한다고 보는 법해석(미슈나 삽바트 7,2; 예루살렘 탈무드 9,1-7)에 따라 문제 삼았던 것입니다.

만일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노동을 부주의로 하였다면 경고를 받고 속죄 제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경고를 받은 사람이 목격자가 보는 앞에서 다시 안식일 금지 규정을 어기면 그는 그 벌로 돌로 쳐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율법의 엄격한 준수를 통해 하느님 백성이 된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굶주림에 시달리던 다윗이 성전에 보관된 ‘거룩한 빵’을 먹고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는 말씀을 통하여(1사무 21,1-7)


율법의 정신은 사랑이며, 율법의 존재 이유는 인간의 존엄과 선익임을 가르치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율법의 본질과 정신인 사랑을 망각한 채, 인간을 하느님의 사랑의 눈길 저 멀리 내쳐버렸던 것입니다.

율법의 정신은 사랑이며 그 목적은 영혼구원입니다. 하느님의 법은 사랑이 아닌 그 어떤 이기적인 목적이 개입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하느님의 권한을 위임받은 사람의 아들(5,24; 6,5)이십니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는 사랑 받기 위해 존재하는 인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에 따라 새로운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과 일치하여 그 질서를 따르도록 불림 받았습니다.


따라서 어떤 제도, 구조, 체제, 법률, 관습도 늘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나고 인간을 섬기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는 공동의 선과 유익을 위한 질서와 법과 제도가 필요합니다.


제도나 법에는 하느님의 사랑과 정의와 공평이 배어 있어야 하고, 그것은 인간의 존엄을 살리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서로를 섬겨야 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을 살리는 율법의 근본정신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교종 성 대 그레고리오 교회학자는 이를 깊이 이해하고 실천하려 애썼던 분입니다. 그는 교회 역사상 최초로 ‘하느님의 종들의 종’(servus servorum Dei)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그는 겸손하게 교종의 직무가 그리스도인들에게 봉사하는 것임을 인식하고 그렇게 살려고 힘쓴 것입니다. 제도가 담고 있는 본질에 충실한 것이지요.

오늘 우리 사회에는 법 위에 소수 권력집단들이 군림하고, 법과 권력을 공동의 선과 정의를 위해 집행하기보다는 자신들의 탐욕과 이권을 챙기는데 눈먼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는 사이 많은 법과 제도가 인간을 지배하고 도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되는 때도 적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 각자가 주님을 따르는 신앙인으로서 법과 제도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위해 용기 있는 선택과 행동을 해야겠습니다.


수없이 많은 교회 안팎의 법과 제도에 그 혼인 사랑과 영을 불어넣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공평한 적용을 함으로써 서로를 살리도록 힘썼으면 합니다.


우리 삶의 터가 사랑의 축제가 되는 밀밭길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