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교좌 대흥동성당 주임(박진홍 요셉)신부는 안나회(회장-김연희 안젤라) 회원들의 영성생활을 위하여 2016년 10월 6일 목요일에 홍주 성지 순례를 하게 하였다. 회원 38명. 원장수녀(김 루치아)1명 총 39명이 08시 30분에 성당에서 주임신부님의 격려와 강복을 받고 출발하였다.
성지에 도착해서 11:00 미사를 드리고 점심식사를 한 후에 성지 봉사자의 안내로 홍주 6곳 순교터를 돌면서 설명을 듣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고 순교자들의 정신을 묵상하며 돌아왔다. 성당에 도착하니 주임신부님이 기다리고 계시다가 반가이 맞아주시어 인사를 드리고 성당에 들어가서 성체조배를 잠시 한 다음에 기쁜 마음으로 마쳤다.
신앙을 증거한 80년간의 순교터
홍주성지
:: 홍주 순교성지의 세 가지 특징
첫째, 박해 초기(1792)부터 병인박해까지 약 80년 동안 지속적으로 순교자들이 탄생한다. 홍주성지는 기록상 212명의 순교자가 있고, 무명 순교자까지 거의 700여명이 순교한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이름이 알려진 순교자가 많은 곳이다.
현재 원시장(베드로), 방(프란치스코), 박취득(라우렌시오), 황일광(시몬)등, 4명은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어 시복·시성을 위한 재판이 진행 중이다.
둘째, 예비자들의 모범 성지이다. 홍주순교 성지는 예비신자들이 모범적으로 열심 수계하며 순교했다는 특징이 있다.
천주교에 입교하여 3년간 예비자로서 수계하며 복음을 선포한 원시장(베드로)이 신해박해 때 옥에서 세례를 받고 동사로 순교했다.
그리고 장장 22년간이라는 예비자 생활을 하며 거의 10년 넘게 옥살이를 하다, 순교하기 직전 자기가 자신의 머리에 물을 붓고 하느님을 영접한 이여삼(바오로) 가 ‘예비자들의 모범’이다.
셋째, 한국 천주교 순교사의 거점 성지이다. 서울에서 권 일신에게 세례를 받은 이존창이 예산 여사울에서 첫 선교를 하여 내포고을에 천주교가 급속히 확산되었다.
박해가 시작되면서 내포의 많은 신자들이 전국으로 피난을 가게 되어 전국에 복음이 전파된다. 그럼으로써 홍주순교성지는 복음전파의 못자리가 된다.
그 증거로 제4대 조선교구장 베르뇌 장주교는 1891년 10월 전국을 8개의 본당으로 나누었는데, 이중 4개 지역이 충청도에 있었고, 그 중 2개 본당이 내포(상부, 하부) 지역에 있었으니 그만큼 신자가 많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홍주는 한국 천주교 신앙의 중심인 내포의 열개 고을을 관할하던 정3품 관찰사의 주둔지였다. 따라서 내포의 신자들은 체포되어 이 곳 홍주 목에 압송되어 신앙을 증거 하다가 대부분 홍주 옥에서 순교하게 된다. 홍주 옥에서 교수형이나 옥사로 113명이 순교하였다.
:: 홍주의 대표적 순교자들(약전)
- 하느님의 종 원 시장 베드로
1788년 입교하여 1791년 신해박해 여파로 체포되어 홍주 영장과 목사로부터 3~4회 걸쳐 영세도 받지 않은 예비신자의 몸으로 숱한 매질과 고문을 당한다. 그는 입교 2~3년 만에 옥중에서 베드로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는다.
주리와 치도곤 등으로 살 이 묻어나고 뼈가 으스러지도록 고문을 가해도 죽지 않자 홍주 목사는 “ 저 놈은 틀림 없이 귀신을 부리는 놈이다”라고 외쳐대며 엄동설한 한밤중에 온 몸에 물을 뿌려 동사 시킨다. 1792년 12월 17일 (양력 1793. 1. 28) 61세에 순교하여 홍주 지역뿐만 아니 라 충청도의 첫 순교자가 된다. - 하느님의 종 방 프란치스코
“만일 우리가 천당을 얻을 이렇게도 좋은 기회를 놓친다면 나중에 또 어떤 기회를 기 대할 수가 있겠소?” 하며 다른 두 명의 동료들과 함께 6개월간의 옥고 끝에 1798년 12월 16일 교수형으로 순교한다.
- 하느님의 종 박 취득 라우렌시오
면천출신 박 취득은 홍주로 이송되어 16번의 문초를 받는 동안 곤장과 몽둥이 등 도 합 1천 400대의 매를 맞고 8일 동안 물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한다.
“나는 굶겨도 죽 지 않고 맞아도 죽지 않을 것이오. 그러나 목을 매면 죽을 것이오.” 라고 증언한 대 로 죽지도 않고 그의 모든 상처가 흔적도 없이 기적적으로 치유되자, 형리들은 이 광 경을 보고 놀라 요술이라며 그를 새끼줄로 목 졸라 죽인다. 1799년(기미년) 2월 29 일 (양력 4. 3) 30세의 나이로 순교의 영광을 얻게 된다.
- 하느님의 종 황 일광 시몬
홍주의 백정출신 황 일광(시몬)은 1801년 12월 26일 15명의 다른 동료들과 함께 서 울에서 사형판결을 받고, 해읍정법에 따라 홍주에서 12월 27일(양력 1802. 1. 30) 45세의 나이로 참수된다.
그는 “ 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 해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라며 양반과 상놈의 구별이 없이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천주교 교리에 기뻐하며 순교하였다.
:: 순교자들이 목숨을 바친 순교 터 3곳
- 홍주 옥(1871년 홍주목지도, 구 검찰지청 및 법원지원자리) : 113명(교수형 100명+ 옥사 13명) 이 순교한 최대의 순교 터이다.
- 생매장 터: 홍주성 밖 월계천과 홍성천이 만나는 합수머리 근처에 생매장터가 있다.
- 참수 터: 홍주성 북문 밖 월계천과 소향천이 만나는 북문교 아래 100m지점
:: 순교자들이 신앙을 증거 한 장소 3곳
- 경사당 자리: 순교자들이 문초와 형벌을 당하던 홍주진영의 동헌(현. 한국통신 자리)
- 근민당 자리 : 홍주 목사의 동헌(현. 군청 뒤뜰)
- 저자거리 : 순교자들이 조리돌림을 당하던 장소(구. 예비군중대 터)
:: 성지 순례 코스
①근민당-> ②홍주 옥->③ 경사당-> ④저자거리-> ⑤참수 터->⑥생매장 터-> ⑦홍성 본당(미사 요청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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