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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비친 가톨릭] 세계문화유산 후보 된 일본 규슈의 사키쓰(崎津) 교회를 가다

dariaofs 2016. 10. 20. 18:48


-규슈 어촌 마을의 사키쓰(崎津) 교회

 
일본에서는 좀처럼 교회를 보기 어렵다. 그러나, 규슈(九州)의 나가사키(長崎)나 아마쿠사(天草) 등에는 기독교 관련 유적지와 교회가 많다.

한 때 꿈결처럼 번영했던 일본 교회가 250년의 탄압과 잠복기를 거쳐서 기적적으로 부활한 것이다. 특히, 아마쿠사 지역의 잠복(潛伏) 크리스천은 금교(禁敎) 시대에도 은밀하고도 눈물겹게 자신들의 신앙을 이어왔다.
 
이러한 역사를 바탕으로 사키쓰(崎津) 가톨릭교회가 나가사키(長崎)의 크리스천 관련 유적들과 함께 세계문화유산 후보에 올라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최종 심사는 오는 2018년에 시행된다.
 
필자는 이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안고 아마쿠사의 혼도(本渡) 버스 터미널에서 택시를 탔다. 택시가 고개를 넘고 산허리를 돌아 해변으로 진입하자 작은 어촌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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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바다와 어촌과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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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선들이 정박된 어촌의 교회

시골 처녀처럼 순박해 보이는 어촌에 높은 고딕 건물이 우뚝 서 있었고, 하얀 십자가가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택시에서 내려 골목길로 들어섰다.

차량이 통행할 수 없는 좁은 골목이기 때문이다. 교회 입구에는 ‘사키쓰(崎津) 가톨릭교회’라고 한자와 일본어로 쓰여 있었다. 사키쓰(崎津)는 이 마을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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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키쓰 가톨릭교회의 정문

일본·서양문화의 공존하는 세계문화유산 등록 후보
 
세계유산(世界遺産)은 어떻게 분류되고 선정되는 것일까. 세계유산은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 등 세 가지로 분류된다.

사키쓰(崎津) 교회는 바로 '문화유산'에 해당된다. 당시 외국의 선교사들이 사키노쓰(Saxinoccu)로 불렀던 사키쓰는 전국시대 이후에 형성된 작은 어촌이다. 바다를 통한 접근이 좋고 은밀한 곳이라서 기독교 전래와 포교의 거점이 됐던 것이다.
 
아마쿠사 시(市) 세계유산 추진실 야마우치 료헤이(山內亮平, 30)씨는 “아마쿠사의 사키쓰 마을은 동(東)중국해로 들어가는 요카쿠만(羊角灣)의 북쪽 해안인 관계로,

좁은 땅임에도 불구하고 생업을 효율성 있게 영위하기 위한 토지의 효율성 극대화에 노력한 곳이다”면서 “자연의 혜택이 풍부한 어촌마을로 2011년 일본 정부로부터 중요 문화적 경관으로 선정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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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키쓰의 부두

그의 말대로 사키쓰(崎津集落)는 아름다운 어촌이었다. 이 마을의 도로와 해안 접안 시설, 신앙의 장소 등이 옛날 그대로 고스란히 남이 있었다. 교회 앞에는 신사(神社)도 있었다. 동서양의 문화는 물론 불교·신도·기독교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교회 입구에서 취재하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 교회가 세계문화유산 후보에 오른 후 일본 전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교회 입구에 한 신부의 기록이 있었다.
 
프랑스인 ‘하르프(Halbout, 1864-1945)’ 신부에 대한 비(碑)였다. 그는 1928년 12월 이 교회의 사제로 부임해서 크리스천 탄압이 강하게 행해졌던 자리에 교회의 개축(改築)을 강력하게 주장했던 인물이다.

1883년(明治 16년)에 세워졌던 이 교회는 그에 의해 1934년(昭和 9년) 이 자리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해 오늘에 이르렀다. ‘하르프’ 신부는 1945년 1월 81세의 나이로 영면했고 이곳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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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르프 신부의 기념비

거슬러 올라가면 아미쿠사의 교회 역사가 꽤나 깊다. 아마쿠사는 1566년 ‘루이스 데 아르메니다(Luís de Almeida, 1523-1583) 수도사에 의해서 포교가 시작됐다. 그는 의사로서 일본에 최초로 서양 병원을 설립한 사람이기도하다.

 '아르메니다'는 일본에 종교와 의술을 전해준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동상과 기록은 이 지역의 박물관이나 기념관에서 수시로 접할 수 있다.
 
아마쿠사는 한 때  크리스천 번영의 시기를 맞기도 했다. 그런데, 1638년 막부의 금교령에 의해 이곳은 강한 박해의 비바람을 맞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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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카야마 게이 씨

“아주 옛날에 덴쇼아마쿠사(天正天草)라는 전투가 있었습니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와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군에 의해서 영주 시키(志岐)가 멸망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니시의 통치하에서 이 지역은 가톨릭이 부흥했습니다.

히데요시(秀吉)가 천주교 탄압을 하는 가운데서도 그가 조선 침략에 정신이 없는 관계로 천주교의 박해가 뜸해졌던 것입니다.

1592년 아마쿠사(天草) 지방에는 60여 개의 교회와 3만 3천 명에 달하는 신도가 있었습니다.”
 
아마쿠사 시(市) 문화과에 근무하는 나카야마 게이(中山圭, 39)씨의 말이다.

나카야마(中山)씨는 ‘가톨릭 다이묘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세 번에 걸쳐서 아마쿠사를 방문한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엄숙한 분위기인 교회 내부로 들어서자 일본의 전통인 다다미(畳) 위에 의자가 놓여 있었다.

이는 일본에서도 진귀한 일로 일본의 전통문화와 서양의 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것이다. 이 또한 사키쓰 교회가 세계문화유산 후보에 오른 이유이다. 

1617년부터 1644년까지 선교사 75명이 처형돼...잠복 크리스천 늘어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로부터 시작된 금교 정책은 에도막부에 의해서 더욱 강화돼 1614년 공식적으로 금교령이 선포됐다.

그 결과 나가시키(長崎)와 아마쿠사(天草)에서만 1617년부터 1644년까지 선교사 75명이 처형되는 아픔이 있었다.

일본 최후의 순교자(1644년)는 장소는 다르지만,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손자인 고니시 만쇼(小西 Mancio, 1600-1644)였다.

그를 마지막으로 일본에서 더 이상의 순교자가 나오지 않았다. 고니시 유키나가가 처형되던 해에 태어난 만쇼는 1628년 로마에서 사제로 서품됐었다.
 
막부(幕府) 정부에 의해서 금지된 기독교도는 새로운 형태의 신자들을 탄생시켰다. 다름 아닌 잠복(潜伏) 크리스천이다. 그들은 남의 눈을 피해서 한밤중에 은밀히 모여 기도했다.

잠복 크리스천들은 생명이나 재산의 위험도 돌보지 않고 ‘신앙이야말로 훌륭한 보물이며, 행복의 원천이다’라고 확고히 믿고 있었다.

잠복 크리스천들은 자유롭게 신앙생활을 했던 시절의 심신회를 토대로 비밀 조직(Misericordia, Rosario 등)을 만들어서 활동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역할분담을 했다.

 매년 축일을 결정하는 역할자(帳方), 세례를 하는 역할자(水方), 또 그들을 돕는 조수역(聞役)이다. 조직책은 취락마다 1명을 두고 세습제를 취했다.
 
잠복 크리스천들이 비밀 조직을 만들었지만 숨어서 신앙을 지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고충이었다. 그 때문에 신자들은 여러 가지로 머리를 짜냈다.

평상시는 불교도를 가장하기도 했고, 후미에(踏み絵: 그리스도나 마리아 상을 새긴 그림을 밟는 일)를 서슴치 않거나, 승려를 불러서 장례식을 치루고 난 후에 다시 기독교식으로 참회의 기도(痛悔)를 했다.

이들은 이렇게 은밀하게 25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신부도 없이 자신들만의 힘으로 기도하면서 신앙을 지켰던 것이다.
 
소설, 영화로 유명세를 탄 아마쿠사(天草)...평화의 순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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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사키쓰 항구

이 지역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많다. 2012년 발간된<아마쿠사 회랑기, 숨은 크리스천>(示車右甫 作)은 10,669명의 잠복 크리스천 중 5205명이 적발된 1805년의 ‘아마쿠사 붕괴’를 다뤘다.

또한 시바료타로(司馬遼太郞, 1923-1996)의 <가도를 가다/ 시마바라·아마쿠사의 제도>도 최후에 사키스마을과 교회를 방문했다.

그리고, 주제는 다르지만 1972년-73년 유명작가 야마타 다이이치(山田太一·78)의 소설을 영상화한 NHK의 TV소설 <쪽빛보다 푸른>은 평균 시청률 47.3%, 최고 시청률 53.3%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태평양 전쟁 말기로부터 일본의 패전 후를 다룬 것으로 아마쿠사를 무대로 했다. 이 외에도 독자들과 시청자들의 인기를 끈 작품들이 수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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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유래와 안내문

<세계에 평화가 깃들도록 신에게 기도합시다. 자기 자신의 말로 기도해 주셔도 좋고, 교회의 입구에 놓여 있는 ‘기도의 서표’를 사용하셔도 좋습니다.

평화의 소원을 담고 신에 기도할 때 이미 여러분은 ‘단순한 크리스천 꿈의 섬’에서의 역사 탐구자가 아닙니다. 평화로운 세계의 협력자이자 평화를 위한 순례자가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습니다.

‘평화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은 축복을 받으리다. 그들은 신의 아들로 불리는 것이다.’>

필자는 ‘400명의 신자가 세계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는 사키쓰(崎津) 교회의 안내문을 뒤로하고 새로이 길을 나섰다. 평화의 순례자는 아니지만 왠지 마음이 평온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생각해봤다.
 
‘우리나라도 세계문화유산에 오를만한 역사의 자산(資産)들이 많을진대...노력을 하지 않는 것일까? 관심이 없는 것일까?’


 

장상인 JSI 파트너스 대표(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