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6년 11월 4일 다해 연중 제31주간 금요일(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dariaofs 2016. 11. 4. 07:30



성 카롤루스 보로메오(Carolus Borromeo, 또는 가롤로)는 1538년 10월 2일 이탈리아 북부 마죠레 호수 근처의 아로나 성(城)에서 지베르토(Giberto Borromeo) 백작과 교황 비오 4세(Pius IV)의 여동생 마르게리타(Margherita de Medici) 사이에서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교회에 봉사하고자 하는 열망이 커서 12살 때 산 그라시니아노(San Gratiniano) 수도원에서 삭발례를 받았다.


그 후 밀라노로 가서 알치아티(Alciati)에게서 교육을 받았으며, 1552년 파비아(Pavia) 대학교에 진학하여 1559년에 민법과 교회법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559년 12월 25일 그의 외삼촌인 지안 안젤로 추기경이 비오 4세라는 이름으로 교황직을 계승하게 되었는데, 새 교황은 조카인 카롤루스 보로메오를 로마(Roma)로 불러들였다.


1560년 추기경으로 서임된 보로메오가 가장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일했던 분야는 교황청 국무성 장관으로서의 직무였다.


특히 그는 트렌토 공의회(Council of Trento) 제3회기 동안 그의 외삼촌인 교황에게 가장 열성적이고 믿음직한 협력자이자 지원자였다. 카롤루스는 공의회 운영의 훌륭한 지도자로서 임무를 수행했고, 마지막 회기에서 칙서들을 성문화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1562년 그의 형 페데리고(Federigo)가 세상을 떠났을 때 보로메오 가(家)의 수장 직책을 거절하고 1563년 7월 17일 사제 서품을 받고 성직자로서의 신분에 맞는 생활을 하려고 더욱 분발하였다.


그는 트렌토 공의회가 요청한 교리교육과 미사 전례 그리고 성무일도 작업들을 두루 감독하였으며,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도 높은 개혁을 단행하여 그가 대주교로서 교구장으로 재임하고 있던 밀라노 교구를 모범적인 주교좌로 만드는 놀라운 성과를 얻었다.

또한 그는 개혁 운동의 일환으로 성직자와 평신도의 윤리와 생활 태도 개선을 위하여 유익한 기준을 마련하였으며, 성직자 교육을 위한 신학교 설립, 어린이들의 종교 교육을 위한 그리스도인 교리회 설립 및 자신의 교구 내에 거주하는 예수회를 격려하였다.


또한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지원을 제도적으로 보완하였고, 프랑스 두에(Douai)의 영국계 대학을 지원하는데 있어서도 호의적이었으며, 자신의 재임 기간 동안에 11차례의 교구 시노드(Synod)와 6번의 관구 공의회를 개최하였다.

그는 사제직을 지망하는 후보자들을 위한 단체의 성격을 지닌 ‘성 암브로시우스의 헌신회’(지금은 성 카롤루스의 헌신회)를 설립하였고, 주로 설교 활동에 종사하면서 프로테스탄트의 침입을 저지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타락한 신자들을 다시 교회로 불러들이는데 정력을 기울였다.

1567년 그는 주교의 관할권에 대한 밀라노 의회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쳤다. 사건의 발단은 그가 나쁜 생활에 물든 평신도 여러 명을 투옥시킨 것으로 주교좌가 시당국에 의하여 심한 공격을 받게 되자 그는 그들을 모두 단죄하였다.


재차 그의 주교직이 산타 마리아 델라스카라의 시의원들로부터 도전을 받자, 교황은 그를 후원하고 시의회는 그들의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큰 파문을 일으킨 일이 있었다. 그는 어느 자객으로부터 상처까지 입었다.


1576년 페스트와 기근으로 온 주민들이 큰 난리에 빠졌을 때, 그는 한 달 동안 매일 3천여 명의 주민들에게 음식물을 제공하여 이 어려운 난국을 극복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시의회와 교회 관할권 사이의 분쟁은 이후에도 계속되었으나 카롤루스는 그 때마다 현명하게 대처하였다.

그는 영국 선교 길에 오르는 수많은 젊은 사제들을 접견하고 지원하였으며, 1583년에는 스위스 교황사절이 되어 그 지역의 프로테스탄트를 상대로 설교하여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그는 1584년 11월 3일 밤에 밀라노에서 사망하여 주교좌성당의 중앙 제대 아래 묻혔다.

그는 가톨릭 개혁운동의 기수들 가운데 한 사람이며 학문과 예술의 수호자였다. 비록 그가 권력을 휘두르는 위치에 있었지만 항상 겸손하게 처신하고 성덕을 높임으로써 개혁의 반대자들로부터도 칭송을 받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성직자나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권력을 남용한 적이 없다는 평을 들었다. 카롤루스 보로메오는 1610년 11월 1일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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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은 그 불의한 집사를 칭찬하였다.

그가 영리하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주님의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집사가 불의하였지만 불의가 탄로 난 뒤에는 그 대처를 영리하게 하였다.

그러니까 오늘 비유의 집사는 <불의한 집사>이자 <영리한 집사>입니다.

이런 집사는 요즘 우리가 역력히 보고 있는 대통령 이하 정치권의 사람들,

곧 불의한데다가 멍청하기까지 한 집사들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고,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런 집사를 칭찬한 것입니다.

   

우선 집사의 불의함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비유에서 집사가 불의한 이유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는 것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우리는 즉시 주인의 재산이 무엇이고,

재산을 낭비한다는 것이 과연 무슨 뜻일까 생각게 됩니다.

   

충실하고 슬기로운 집사에 대해 얘기하는 또 다른 비유(12)에서 집사란

주인의 종들을 맡아 제 때에 정해진 양식을 나눠주는 자이며

그렇게 할 경우 주인이 재산을 맡기는데 불충실한 집사는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술이나 먹고 하인들을 두들겨 패는 집사를 말합니다.

   

여기에서 재산은 분명히 종들에게 먹일 양식입니다.

그리고 이 때에 양식은 주님의 기도에서 가르쳐주시듯 일용할 양식입니다.

이 기도를 바치면서 우리는 내게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사 하고 기도하는데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양식을 집사가 자기 혼자 가로채어

제 배만 불리면 그것이 불충실한 집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비유에서 하느님의 재산은 재물만을 뜻하지 않고,

제 생각에 하느님의 은총이나 사랑과 같이 무형의 것도 포함됩니다.

그러니까 하느님의 재산이란 재물은 물론 갖가지 은총이나 은사들,

사랑을 비롯한 많은 덕들과 심지어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들까지입니다.

   

이런 것은 자기만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또 다른 자녀들과 나누라고 주신 것인데

자신이 집사라는 것을 망각하고 나누지 않을 때

그것이 바로 하느님의 재산을 낭비하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집사의 불의함은 하느님 재산을 자기만을 위해 쓰는 것뿐 아니라

이웃과 나누지 않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하느님 것을 하느님 뜻대로가 아니라

내 거 내 마음대로 하는데 무슨 잘못이냐는 태도입니다.

   

이제 집사의 영리함을 보겠습니다.

   

집사는 한 때 불의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불러서 그 잘못을 지적하자 즉시 깨닫습니다.

자기는 집사일 뿐인데 주인 노릇을 하였음을 깨닫고,

즉시 주인의 뜻대로 주인 재산을 나눠줘야 함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종들에게 나눠줍니다.

말하자면 주인 재산을 가지고 선심을 쓰는 거지요.

   

사실 우리의 사랑이라는 것이 다 이런 것입니다.

주인의 재산을 가지고 선심 쓰는 것.

   

하느님의 사랑을 가지고 사랑하고,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을 가지고 봉사하고,

하느님께서 주신 은사들을 사람들을 위해 쓰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한 번 묵상하고 영리한 집사 되기로 결심하는 오늘입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