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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사 이야기] (1) 손희송 주교(서울대교구 총대리)

dariaofs 2017. 5. 20. 06:00

“평화가 너희와 함께!”

요한복음서에 따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 그들 가운데 예수님이 나타나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20)라고 인사하신다.

 

예수님은 당신을 뵙고 기뻐하는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인사하시고 그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3)

부활하신 예수님은 위기의 순간에 당신을 버리고 도망갔던 제자들을 용서하시고 평화를 선물해주신다. 그리고 그들을 용서와 평화의 사도로 삼으시면서 계속 그들과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신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이 말씀대로 지금도 예수님은 성경 말씀과 성사, 특별히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기원하셨던 평화의 은총을 우리에게 선사해주신다.

유럽 유학 시절

미사 중에 주님의 현존을 느끼면서 평화의 은총을 체험한 이들이 적지 않다. 황송하게도 내게도 그런 체험이 있었다. 오래전 유럽 유학 시절의 일이다.

 

1982년부터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10년간 유학 생활을 했는데, 마지막 2년 반은 신학교에서 남자 수도원으로 거처를 옮겨 지냈다.

 

가능한 대로 수도원의 일과표에 따라 성무일도와 미사, 식사를 함께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곳 수사 신부들, 수련자들과도 친해져 공부에도 도움을 받고 개인적으로도 가깝게 지내게 됐다.

어느 날 그동안 비교적 친하게 지내던 수사 신부가 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독일어 발음이 잘못됐다고 지적해 주었다. ‘네가 독일어를 한 지가 벌써 몇 년이 되었는데, 그런 것도 틀리느냐’는 약간의 비웃음이 담긴 지적처럼 들렸다.

 

그 순간 모욕을 당했다는 느낌과 함께 그 신부에 대한 미운 감정이 솟아올랐다. 그런데 문제는 그 미운 감정이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이었다.

너그러울 때에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일 듯하다가도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도 없는 것이 마음이라는 어느 선승의 말을 절감하게 됐다. 그 신부와 대화는 물론 시선조차도 마주치기가 싫었다.

 

작은 일에 내가 이래서는 안 되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기도 중에 하느님께 도움을 청해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한 집안에서 매일 마주치는 사람에 대해 미운 감정을 갖고 살자니 우선 내가 불편해서 견디기 어려웠다.

미사 중 하느님께 간절히 청해

그러던 어느 날 수도원 아침 미사 때 그 신부도 함께 참석한 가운데 하느님께 간절히 청했다. ‘주님, 제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니 이제는 당신이 어떻게 좀 해주십시오.’ 나도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내 마음을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심정으로 그렇게 기도했던 것이다.

 

정말 신기하게도 미사 후에 그 신부에 대한 미운 감정이 사라졌고, 다시 평소처럼 그와 대화도 하고 농담도 할 수 있게 됐다. 미움의 먹구름이 한순간에 걷히고 내 마음에 찾아온 평화의 햇살은 온전히 주님의 선물이었다.

거의 단절되다시피 한 인간관계가 다시 이어지는 체험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는 세력이고, 돈독했던 인간관계가 끊어진 곳에는 분명히 죽음의 세력이 활동하는 것이다.

 

단절된 인간관계가 다시 이어졌다면,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죽음의 세력이 극복된 것이고, 바로 여기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의 손길이 닿았다고 말할 수 있다. 미사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손길을 느끼고 체험하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기원한다.

 

 

                                                         손희송 주교 서울대교구 총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