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17년 5월 26일 가해 부활 제6주간 금요일(성 필립보 네리 사제 기념일)

dariaofs 2017. 5. 26. 05:00

 

 

이탈리아 중부 피렌체(Firenze) 태생인 성 필리푸스 네리우스(Philippus Nerius, 또는 필립보 네리)는 산마르코(San Marco)의 도미니코 회원들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18세 때에 그는 산제르마노(San Germano)로 가서 사업 경력을 쌓으려고 노력했으나, 자신의 뜻과는 달리 신비체험을 하게 되면서 수도생활로 마음을 굳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1533년에 로마(Roma)로 갔으며, 그곳에서 어느 부유한 고향 사람의 두 아들을 가르치면서 은거생활을 하다가 사피엔차(Sapienza)와 산타고스티노(Sant'Agostino)에서 철학과 신학을 3년 동안 공부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길거리나 시장바닥에서 로마인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했는데, 신앙생활이 극히 미온적이었던 로마인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1548년 성 필리푸스는 자기의 고해신부인 페르시아노 로사(Persiano Rossa) 신부와 함께 '삼위일체 형제회'를 설립했는데, 이 수도회는 어려운 처지의 순례자들을 사목하기 위하여 평신도들로 구성되었으며 '40시간' 신심을 전파하였다.

 

그는 1551년에 사제로 서품되자마자 고해신부로 명성을 날렸으며, 수많은 군중들이 집단을 이루어 산 지롤라모 델라 카리타(San Girolamo della Carita)로 몰려왔다.

 

이곳은 그가 생활하고 있던 사제들의 공동체였다. 그는 수많은 개종자를 얻는 일에서뿐만 아니라, 자신을 도와줄 사제들을 확보하는 일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들은 신자들을 그들의 오라토리오(Oratorio, 방)에 모아놓고 영적 권고와 고해성사를 주곤 하였기 때문에 '오라토리언'(Oratorians)이란 이름으로도 알려졌지만, 실제로 '오라토리오회'가 설립된 연대는 1564년이다.

 

이때 필리푸스는 산조반니(San Giovanni) 성당의 주임신부였고, 다섯 명의 제자들이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 새로운 수도회는 1575년에 공식 승인을 받았는데 이때는 그가 이미 로마(Rome)의 명사로 알려진 때였다.

 

성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us XIII) 교황은 그에게 발리첼라(Vallicella)의 산타 마리아(Santa Maria) 성당을 하사했는데, 그는 옛 성당을 철거한 후 그 자리에 '키에사 누오바'(Chiesa Nuova)를 짓고 오라토리오회의 본원으로 사용하였다.

이즈음에 그는 '로마의 사도'로 알려졌고, 교황과 추기경 심지어는 권력자들과 일반 시민들로부터도 큰 존경을 받았다. 그는 뛰어난 영적 지혜와 환시를 통하여 부자와 가난한 자, 권력자와 힘없는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도와주었다.

 

특히 그는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탈혼과 환시를 수차 경험하였고, 기적까지 행하였으며, 예언의 은혜도 받았다.

 

1593년에 그는 건강상의 이유로 장상직을 사임하였으며, 1622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로부터 시성되었다.

 

 요한 16,20-23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요한 16,22) 
 

 


 

사라지지 않는 참 기쁨을 찾아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세상을 떠나 진리의 영을 보내시어 함께 하실 것이라 하시며 위로와 희망을 주십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근심에 휩싸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메시아의 모습과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여 살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며 말씀하시고 보여주신 삶은 제자들에게는 삶의 의미였고 희망의 끈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추종하는 삶은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은 거기서 기쁨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스승이 계시지 않는 상황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근심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며(16,20) 위로하시는데도, 그들은 근심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예고에 의식과 삶의 중심이 흔들려 불안에 떨어집니다. 그들은 스승이 계시지 않는 미래의 불확실하고 볼 수 없는 상황을 앞에 두고, 두려워하며 불안에 빠진 것입니다.

 

이렇듯 자신의 삶의 중심이요 뿌리인 예수님을 스스로 떠나면 걱정 근심에 휩싸이게 되지요. 걱정 근심은 기쁨을 앗아가 버립니다. 예수님을 잊고 떠남이 기쁨 상실의 근본 원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지금은 근심에 싸여 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다시 보게 되면 너희 마음이 기뻐할 것이고,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16,22)

 

곧 세상의 그 어떤 힘도, 그 누구도 죽일 수 없고, 죽여도 죽지 않음을 보여주시는 당신의 부활을 체험하기만 하면, 영원한 기쁨 안에 머물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삶에서 참 기쁨을 찾아가는 길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무엇보다도 믿음이 흔들리고, 예수님을 잊고 삶의 중심이 잃어 걱정 근심에 휩싸인다 하여도, 그 모든 것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께로 다시 얼굴을 돌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분이 바로 참 기쁨의 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 친히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그 어떤 고통과 어려움 한복판에 영원한 기쁨의 보물이 있음을 알려주신 까닭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근심에 휩싸이고 당신을 잊은 채 살아간다 하여도 늘 사랑으로 다가오시어 얼굴을 보여주시고자 하십니다.

 

그러나 영(靈)이 아니고서는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볼 수 없지요.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하고, 그분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육의 정신을 버림으로써 깨끗하고 순수한 영혼을 지니도록 힘써야만 합니다.

 

영의 눈으로 주님을 알아볼 때 우리는 참 기쁨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기쁨은 우리 편에서 찾아내고 발생시켜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지금, 여기의 삶의 터에서, 주님의 기쁨과 평화, 정의와 선이 드러나도록 온 힘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의 없는 기쁨, 사랑 없는 기쁨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불의하고 불평등한 현실, 인간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이 지속되는 그 어디에도 참기쁨은 없는 것이지요!

오늘의 시대는 불신의 시대, 하느님의 말씀을 상대화 하는 시대, 돈을 우상화 하고 강력해진 인간의 힘을 앞세우는 시대입니다.

 

이런 시대 상황에서 때로는 무력감을 느끼고 체념하고, 세상의 흐름에 맡기며 사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죽음을 이기신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기쁨을 적극 찾아 나서야겠지요.

오늘도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거짓 기쁨을 잘 분별하여, 주님 부활의 기쁨을 알아차려 받아들여야겠습니다.

 

내 삶의 자리에서 정의와 사랑과 선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고 나눔으로써,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 없는 참 기쁨을 발견하는 오늘이었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