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톨 릭 이 야 기

나의 미사이야기 (3) 김동숙(헬레나)수원교구 수리동본당

dariaofs 2017. 6. 12. 04:00

남편 잃은 슬픔 위로해주신 주님

 

 

‘미사’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영국과 미국) 포로들이 다른 수용소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맨발에 누더기의 초라한 모습으로 60마일이나 되는 먼 곳을 걸어 다른 수용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새 수용소에 도착해 가장 원하는 요구 사항을 간곡히 전했습니다. 그것은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있는 먹을 것이 아니고, 누더기를 갈아입을 수 있는 옷도 아니고, 발이 부르튼 상처를 싸맬 수 있는 약품도 아니었습니다.

 

미사를 드릴 수 있게 해달라는 놀라운 요구였습니다. 그들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져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제대 앞에 무릎을 꿇고 모두 미사에 참여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얼마나 미사에 굶주림과 갈증을 느꼈으면 그 지친 몸으로 미사를 가장 먼저 원했을까요? 이 감동적인 이야기를 나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게 된 것은 시어머님 장례 미사를 치르고 난 후 그 미사 예식에서 큰 감동을 받은 것이 동기였습니다. 시어머님은 아주 독실한 불교 신자였습니다.

 

결혼을 한 후에 어머니는 막내아들인 우리와 함께 사셨고 한 달에 한 번은 꼭 절에 다니셔서, 모시고 다닐 겸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둘째 아드님 댁(충주)으로 가셨습니다. 한 2년 정도 계셨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독실한 불교 신자셨는데 어떤 연유로 개종하셨는지 잘 모르겠지만 천주교식으로 장례 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친구 따라 개신교회는 가봤지만 성당은 들어가 보지 못하였습니다.

 

장례 미사를 하는데 가족들이 촛불 하나씩 들고 관 주위에 서 있고 신부님께서는 기도를 하셨던 것 같습니다.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마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예수님을 만나 그분이 말씀하실 때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 것과 같은 벅찬 감동을 느꼈던 것입니다.

장례를 마치고 남편과 집에 돌아오며 우리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안고 오는 것이 아니라 무슨 큰 희망이라도 안고 오는 것 같은 기분으로 같이 성당엘 나가자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울 신정동에 있는 성당에 예비신자 입교를 했고 몇 번 교리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직장 관계로 교리 수업에 나가지 못했고 나 또한 혼자 다니다 세례를 받지 못하고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뒤 많은 우여곡절 끝에 나는 세례를 받았고 남편은 대세를 받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내가 가장 믿고 의지했던 사람과 이별하고 예견하지 못했던 갑작스러운 남편의 죽음에 방황하던 어느 날, 미사 중에 나는 그분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성체를 영하고 돌아와 기도를 올리는 중 “내가 너를 사랑하니 너무 슬퍼하지 마라”는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그 말씀에 눈물이 폭포수 같이 흘렀습니다. 그 이후 하느님께서는 제게서 눈물을 거둬 가시어 내 눈에는 눈물이 말라버렸고 지금까지 나는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너를 사랑한다는 그 말씀 되뇌며 위로를 받습니다.

언제나 나를 사랑하시고 위로가 되어 주시는 나의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나의 미사 이야기’에 실릴 원고를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8매 분량 글을 연락처, 얼굴 사진과 함께 pbc21@cpbc.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가톨릭평화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