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선포의 걸림돌, 지혜 모아 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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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는 이방인 사도를 받아들이기 위한 초기 교회 공동체의 노력이 잘 드러난다. 니콜라스 베르햄 작, ‘리스트라의 바오로와 바르나바’, 1650년, 생테티엔 미술관, 프랑스. |
바오로 사도의 첫 번째 선교 여행 이후 초대 교회는 중요한 사건 하나를 전해 줍니다.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 사도 회의”입니다. 사도행전 15장과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2장에 담겨있는 이 내용은 상당히 큰 의미가 있습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 그리고 갈라티아서에 따르면 그리스 출신인 티토가 예루살렘의 사도 회의에 참석합니다.
여기서 ‘사도’라는 표현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원래 사도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목격 증인들에게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예수님의 삶을 함께한 이들, 곧 열두 제자를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공생활 초기에 부름을 받아 그 여정을 함께 걸었던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을 부르는 전형적인 표현은 “열둘”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백성을 이루었던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생각나게 하는 표현입니다. ‘열둘’이라는 숫자는 이때부터 성경 안에서 하느님의 백성을 나타내는 상징처럼 사용됩니다.
예수님 역시 열두 제자를 뽑습니다. 이 열둘은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을 의미합니다. 구약에서처럼 혈통에 의한 것이 아닌, 부르심과 믿음을 통한 새로운 백성입니다. 이 제자들은 복음서에서 보통 ‘열둘’이라고 불립니다.
하지만 70년 정도 이후에 이들에게 ‘사도’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으로 봅니다. ‘파견된 사람’을 의미하는 사도는 원래 사회에서 사용되던 용어이지만 초대 교회에서 예수님의 제자인 ‘열둘’을 지칭하는 특별한 용어로 자리매김합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은 열두 제자만이 아니라 바오로와 바르나바에게도 사도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이러한 용례를 보면 사도는 좁은 의미에서 열두 제자를 가리키지만 넓은 의미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선포한 초기 교회의 봉사자들에게도 사용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바오로와 바르나바 역시 예루살렘에서 열린 사도 회의에 참석합니다.
이 회의에서 가장 큰 주제가 되었던 것은 ‘할례’입니다. 할례는 유다인 남성들에게 행하던 것으로 그 기원은 창세기에 나오는 하느님과 아브라함과의 계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너는 내 계약을 지켜야 한다. 너와 네 뒤에 오는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한다. 너희가 지켜야 하는 계약, 곧 나와 너희 사이에 맺어지는 계약은 이것이다. 곧 너희 가운데 모든 남자가 할례를 받는 것이다.”(창세 17,9-10)
이것이 하느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계약이고 이 계약의 징표가 할례입니다.
성장하는 초기 교회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이방인 출신의 그리스도인에게 할례를, 곧 율법이 정한 모든 것을 요구할 것인지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방인들보다 먼저 예수님을 알고 믿었던 유다인 출신들은 이방인들 역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보입니다. 교회는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를 접하게 되고 이것을 사도 회의를 통해 풀어갑니다.
이 회의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바오로 사도입니다. 그에게 할례는 유다교의 특성이지 그리스도교의 특성은 아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하느님은 사람을 차별하시지 않는, 할례받은 이들과 아닌 이들을 구분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결국,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 결정된 것은 이방인 출신에게 할례를 강요하지 않고 우상과 관련된 것들을 멀리하도록 신자에게 권고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사도 회의는 우선 새로운 문제를 접한 초대 교회가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보여줍니다.
사도 회의는 시간이 지나고 공동체가 커지면서 생겨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한 개인의 결정이 아닌, 사도들이 함께 모여 문제를 논의하고 그것을 해결해 갑니다.
새로운 문제들은 이렇듯 새로운 방향과 의미를 위한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사도들은 서로 합심하여 예루살렘 교회를 중심으로 할례를 받은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며 바오로 사도는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데 앞장섭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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