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念)’ 자를 풀이하면 이제 금(今)자와 마음 심(心)의 결합 즉, 지금 마음이라는 뜻이다. 지금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마음이 ‘염(念)’ 자이다. 불교는 윤회설(輪回說)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자신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지 그리고 전생(前生)에 어떤 존재였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지금의 행업에 따라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기에 현재를 성찰하고 선업(善業)을 실천하는 것이다.
반면 묵(默)이란 글자는 선비가 글을 쓰기 위해 먹(墨)을 갈면서 개(犬)를 바라보는 형상이다. 개는 인간과 달리 현재의 것만 생각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나 과거에 대한 기억을 통한 성찰이 불가능하다. 반면 글을 아는 선비는 글을 통해 과거를 알고 이를 바탕으로 다시 현재를 기록하는 역사적 활동을 하며 미래를 희망하고 예측한다. 이러한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기억하고 판단하고 희망하는 능력은 조물주가 인간에게 부여한 유일한 능력임을 드러내는 단어다.
이것을 전례학적으로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묵(默)’자는 “성경에 기록된 사건의 기억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이 지금에도 재현되는 힘을 가지며 미래의 구원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희망을 가져다 준다”는 의미를 동양적 표현을 통해 담고 있는 것이다. 복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교서 「동정마리아의 묵주기도」에서 “묵주기도는 성경을 묵상(默想)하는 가장 탁월한 도구이자 관상(觀相)의 학교”라고 표현하셨다.
우리가 묵주라는 명칭을 대할 때마다 묵주기도가 ‘우리가 바라는 복(福)이 나오는 자판기’의 개념이 아니라 먼저 하느님 말씀을 기억하고 현재의 나의 삶에 적용하며 희망을 얻는 발판으로 삼을 때 이러한 선조들이 만든 호칭에 걸맞은 기도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묵주기도 할 때 화려하고 아름다운 묵주를 소유했다는 만족감보다는 성모님과 함께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의 구원사건들을 묵상하며 기도할 때 더 묵주라는 명칭에 맞는 자세라 하겠다. 이렇듯 묵주라는 명칭에는 우리 신앙선조들의 뛰어난 전례정신이 녹아 있다.
이러한 ‘묵주(默珠)’에 담겨있는 의미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신비체인 교회공동체가 탄생부터 계속해서 지켜온 예수님의 명령과 연결할 수 있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 11,24).
이 명령의 실행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든 모임인 교회(Ecclesia)라는 명칭과 관련된다.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현존의 장소인 유다교에서의 성전이라는 장소적 개념에서 당신이 명령하신 행위(actio)를 통한 현존으로 바꾸어놓았다. 유다인들은 예루살렘에 가서야 참된 속죄제물을 봉헌할 수 있다고 여겼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그 행위를 하면서 그분을 기억(anamnesis) 할 때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요한 4,24)를 드린다.
여기서의 기억(anamnesis)은 단순히 과거의 어떤 일이나 인물을 회상하는 수준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이미 존재했던 현존이 지금 우리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실재적인 기억이다. 즉 과거의 사건이 바로 지금 이곳(hic et nunc)이라는 현재화를 일으킨다. 교회는 미사를 드리면서 영원 속에서 유일한 사건인 십자가의 희생을 최후만찬의 형태 안에서 실현하고 있으며 그 구원의 은총까지도 전해준다. 이러한 미사의 커다란 은총을 온전히 받기 위해서는 참여자들의 능동적인 참여가 요구된다.
기억(anamnesis)을 통한 현재화는 구원역사를 계속하게 하는 전례의 중요한 요소다. 이 요소는 마찬가지로 묵주기도에도 반영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위에 언급한 교서에서 “성모님께서는 그리스도께 시선을 고정시키고 사시며, 그분의 말씀은 무엇이든 소중히 간직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51 참조).
성모님의 마음에 새겨진 예수님의 기억은 모든 일에서 언제나 성모님과 함께 동행하면서, 당신 아드님 곁에서 보내신 삶의 여러 순간들을 묵상하게 하였습니다”라고 하시며 묵주기도가 성모님과 함께 예수님의 구원사건을 기억하고 묵상하는 기도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래서 묵주기도를 단순히 기도문만 외는 정도로 하지 말고 복음의 요약인 각 신비들을 묵상하면서 바쳐야 신앙성숙에 도움이 된다. 이렇게 바친 올바른 묵주기도는 전례로 자연스럽게 교우들을 인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