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모아 부활 희망 드러내는 신앙고백
구성진 가락으로 바쳐지는 토착화의 모범
주님 안에서 고인 영원한 안식 누리길 기원
구성진 가락으로 바쳐지는 토착화의 모범
주님 안에서 고인 영원한 안식 누리길 기원
최근에 가족이 한 사람도 교우가 아닌 형제님의 장례미사를 드렸다. 그 형제님은 가톨릭계통 병원에서 투병하시다가 사돈의 권유로 원목수녀님에게 대세를 받으신 분이다. 대세 받은 지 이틀만에 돌아가셨기에 본당 연령회의 선종봉사자들이 가서 장례의 전반적인 것들을 도와주었다. 교우가 없는 가족들이 연도도 못하고 장례절차를 협의하는 데에도 힘들 것이라는 봉사자들의 예상과 달리 유가족들이 연도도 따라하고 천주교 장례예식에도 매우 진지하게 참여했다.
장례 후에도 미사에 꾸준히 나와서 고인을 위해서 기도를 드렸으며 앞으로 천주교인이 되겠다고 약속을 했다. 그 이유는 고인에 대해서 너무나 열심히 기도해주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선종봉사자들과 본당 교우들에게서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구성진 가락에 맞추어 드리는 교우들의 연도 소리에 자신들의 슬픔을 달랠 수 있었으며 그동안 못한 효도를 드리는 마음으로 성심껏 함께했으리라 여겨진다.
이렇듯 슬픔에 젖은 유가족들의 마음을 달래주는 연도(煉禱)는 ‘연옥영혼을 위한 기도’라는 뜻으로 한국천주교회에서는 150여 년을 이어온 우리 가락으로 바쳐지는 토착화된 위령기도를 말한다. 장례식장이나 기일이나 명절에 우리는 고인을 위해 연도를 바친다. 따라서 초상이 나면 성당에서는 ‘연도 났다’는 말을 한다.
연도를 바치는 목적은 1865년경에 편찬된 「텬쥬셩교례규」에서 문답의 형식으로 잘 설명해주고 있다.
문) 상사 때에 염경기구만 하면 충분하거늘, 어찌 구태어 소리를 높이고 노래하여 외우느뇨, 이는 즐거워하는 모양 같아서 조상의 예에 크게 합치 않음이 아니냐.
답) 그렇지 아니하니, 이 비록 노래 없이 거저 경을 외워도 족하나, 경을 노래하여 외움이 그 연고 있으니, 하나는 노래하는 소리 더욱 내 생각을 들어 주께로 향케 하고, 더욱 내 마음을 수렴케 하고, 더욱 우리 마음의 큰 원을 드러냄이요, 둘은, 거룩한 노래의 소리 만일 법대로 하고 정성된 마음으로 하면 능히 마귀를 쫓느니, 대개 마귀 항상 근심하여 신락의 소리를 듣고 견디지 못함이요, 셋은 장사 때에 교우의 하는 소리는 또한 슬퍼하고 근심하는 소리니 그러나 과도히 못할지라. 대개 우리 근심은 바람 없는 무리의 근심과 다르니라.1)
위와 같이 위령기도(preces pro defunctis)인 ‘연도를 노래로 바치는 목적’을 「상례문답」은 3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는 노래하는 소리로서 내 생각을 들어 주께 향하게 하여 내 마음을 수렴하게 하고 더욱 구원을 향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며, 둘째는 이 노래 소리를 통하여 능히 마귀를 쫓으며, 셋째는 우리가 죽음의 슬픔 가운데 있지만 우리의 슬픔은 희망 없는 믿지 않는 이들과 다르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목적은 바로 연도가 노래로 한국에서 계승되는 이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특히 ‘내 생각을 들어 주께 향하게 하여 내 마음을 수렴케 한다’는 첫째 목적은 현행 미사의 감사송에서 ‘마음을 드높이’, ‘주님께 올립니다’라고 응답하는 전례문과 같다. 즉 연도는 단순히 죽은 이를 위한 기도로서 뿐만 아니라 마음을 드높여 하느님을 향해 구원의 원의를 드러내는 전례행위다. 자신의 죄를 반성하고 회개하며 자신의 죽음과 영원한 생명에 대한 원의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교회공동체는 연도를 하면서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였고 그분과 함께 죄로 인한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간 주님의 자녀들이 적절히 정화되어 그리스도의 재림과 죽은 이들의 부활을 희망하면서 천상에 있는 선택된 이들과 성인들에게 환영받기를 기원한다.
초기 교회에서부터 교우들은 죽음 준비에서부터 죽음 직후, 입관, 장례 전날 고인의 집에서의 기도, 장례미사, 무덤에서의 예식까지 함께했다. 이는 단순히 죽음에 대한 슬픔에 동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활의 희망 속에서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인이 주님의 품에서 평안한 안식을 누리기를 간절히 기원하는 깊은 신앙의 발로이다.
죽은 이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많은 한국천주교회에 1990년대 말부터 들어온 ‘가계치유’(家系治癒)라는 이설은 현재의 고통과 불행의 원인을 조상 탓으로 돌려서 조상의 죄악과 벌이 가계를 통하여 후손에게 유전되기에 조상의 한을 풀지 않으면 후손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기본적으로 하느님의 자비하심과 세례의 원죄의 사함에 대한 교의에 어긋나며 기복신앙으로 흐르게 한다.
주교회의에서 발간한 「죽은 이를 위한 올바른 기도-가계치유의 문제점」(2010년)을 읽고 그 문제점을 파악하고 올바른 신앙생활에 대한 방향을 잡으면 한국천주교회의 공동체적인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연도가 얼마나 좋은 기도인지를 재삼 확인할 수 있다.
연도는 구성진 가락을 통해서 토착화의 모범이 되었으며 현대에는 전교의 선봉 역할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죽음을 끝으로 보지 않고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위령 감사송 1)이라는 부활 희망이 잘 드러나는 신앙고백이라 할 수 있다.
윤종식·허윤석 신부(가톨릭 전례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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