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정은 피세정렴(避世淨廉)을 줄인 말이다. 즉 세상을 피해 정숙하게 지내며 기도한다는 뜻이다. 한국 천주교회 신자들의 기도와 전례생활을 엿볼 수 있는 문헌 중 「회장직분」이 있다.
이 책에 보면 피정에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위의 문헌의 글을 요약하자면 피정은 세속의 사무를 그치고 평소 소홀히 했던 영혼의 일을 힘쓰는 기간으로서 분심됨을 피해 고요한 다른 곳으로 가서 자신을 성찰하고 총고해성사를 통하여 정화하고 그르친 일과 잘못한 일과 부족한 일을 살피고 그 이유를 돌이켜 생각하고 앞으로의 삶을 예비하는 것이며 특히 앞으로의 삶을 위한 방침을 마련하고 이의 실천의지를 갖는 것이다. 불교의 사찰체험이 성찰과 반성 그리고 휴식이라는 차원에서는 그 성격이 피정과 다소 비슷하나 자신의 죄를 사함받는 고해성사가 천주교회에서는 있는 만큼 본질적으로 다른 형태로 이해해야 한다.
피정을 위와 같이 ‘피세정렴’의 준말로 이해하는 경우가 있고, 또한 ‘세상을 피해 고요함을 따른다’는 ‘피속추정 (避俗追靜)’의 준말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여하튼 세상을 피하는 것과 자신을 고요함에 둔다는 두 가지는 공통된다. 이 의미는 피정을 의미하는 라틴어인 엑세르치티움 스피리투알레(exercitium spirituale)와 레체쑤스 스피리투알리스(recessus spiritualis)와도 연결된다. exercitium spirituale는 보통 ‘영신수련’이라고 번역하는데, 영적인 훈련과정을 말한다. recessus spiritualis는 ‘영적으로 휴식을 취하며 깊이 들어간다’는 의미다.
아무래도 피정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단식하며 기도했던 일을 그의 제자들이 본받아 수행하면서 시작되지 않았을까 라고 추측할 수 있다. 피정의 어떤 형태가 구체적인 형태를 보인 것은 아무래도 예수회의 창설자인 성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수련」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실제적인 피정 방법을 발전시켜 1548년 교황 바오로 3세에 의해 인가됐으며, 교황 비오 11세(재위 1922~1939년)는 성 이냐시오 로욜라를 ‘피정의 주보 성인’으로 선포했다. 이후 17세기부터는 피정의 집이 생겨 일정기간 머무르며 피정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교회법에서도 피정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신학생(246조), 성직자(276조), 수도자(663조), 재속회(719조)에 속한 사람들은 연례 피정을 하도록 규정을 하고 있다. 이는 규정이라서, 해야 하는 의무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일년에 일정 기간동안 세속을 피해 영혼을 정화하고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이는 꼭 특별한 성소를 받은 사람만이 행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교우들에게도 해당하는 사항이다.
그러나 평신도들은 자신의 일터나 가정에서 떠나기가 쉽지 않기에 본당 주임의 피정에 대한 사목적 배려가 필요하다. 그래서 교회법 770조에서 “본당 사목구 주임들은 교구장의 규정대로 일정한 시기에 이른바 영성 수련과 기도회 또는 필요에 적합한 그 밖의 형식의 설교 특강을 마련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으며, 일반적으로 본당들에서 교우들을 위해서 대림과 사순시기에 하루 피정이나 특강들을 한다.
우리 인간은 약하고 변덕이 심해서 세례 때 한 약속들을 다시 확인하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임을 깨닫기 위해서 정기적인 피정이 꼭 필요하며 이는 영적, 육적인 에너지를 보충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