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하신 아버지의 품
10여 년 전쯤, 우연히 방문한 남자 수도원의 저녁 기도 소리가 너무나 아름다워서 제대로 된 준비도 없이 덜컥 입회한 적이 있습니다.
그저 형제들이 어울려 사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르심이나 봉헌에 대한 진지한 고민 하나 없이 들어간 수도원 생활이 쉬울 리 없었습니다. 결국 청원자 생활을 끝으로 1년 만에 퇴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처음엔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제 자신을 탓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하느님께 대한 원망이 마음속에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제대로 시작도 못 하고 끝날 것을 왜 부르셨나, 부르시고선 왜 책임지지 않으시나, 그런 원망의 목소리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원망하는 마음이 들 때마다 조금씩 하느님께 등을 돌리게 되었고, 어느새 ‘하느님이 진짜 계시기는 한 걸까?’하는 의심까지 하는 지경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른바 ‘냉담 신자’가 된 것이지요.
그렇게 냉담기를 지내던 중, 우연한 기회에 대학 동기들과 해외문화탐방 프로그램에 지원해 유럽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냉담 중이긴 했지만, 교사 활동을 하며 접하게 된 떼제 공동체를 꼭 방문하고 싶었습니다. 차가워진 제 마음을 다시 뜨겁게 할 무언가를 만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떼제 공동체에 도착한 첫날 밤, 촛불이 일렁이는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했습니다. 몇 년간 제게 일어났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하느님이 계시기는 하는 걸까?’라는 의심이 든다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성당의 분위기 탓인지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습니다. 신부님은 아무 말 없이 흐느끼는 저를 안아주셨습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마침내 마음을 진정시킨 제게 신부님은 따뜻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형제님이 이미 하느님을 믿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아버지 하느님께서 진심으로 기뻐하실 것입니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형제님을 따뜻하게 안아주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느끼고 가시길 바랍니다.”
다음 날 새벽, 오랜만에 미사를 드린다는 생각으로 밤새워 뒤척인 탓에 몸은 무척 피곤했지만 마음은 참으로 기쁘고 떨렸습니다. 영성체를 위해 제대 앞으로 나아가는데, 마치 첫 영성체를 하던 날처럼 너무나 기뻐 또다시 눈물을 흘렸습니다.
마침내 성체를 받아 모시는 순간 하느님께서 저를 꼭 끌어안아 주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전날 고해 신부님께서 말씀해 주신 그대로였습니다.
따뜻하고 포근한 품에 안긴 느낌, 엄청난 고생 끝에 마침내 집에 도착한 듯한 느낌, 그 느낌을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10여 년이 지나 사제가 된 지금, 미사를 봉헌하기 위해 제대를 향할 때마다 하느님께 청합니다.
이 미사에 참석한 이들 중 10년 전 저와 같은 이가 있다면 하느님께서 따뜻이 안아주십사 하고 말이지요. 앞으로도 저에게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미사가 자비하신 아버지의 품을 만나는 소중한 기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미사 이야기’에 실릴 원고를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8매 분량 글을 연락처, 얼굴 사진과 함께 pbc21@cpbc.co.kr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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