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톨 릭 이 야 기

[나의 미사이야기] (12) 이경숙 로사리아(인천교구 원종2동본당)

dariaofs 2017. 8. 27. 04:30

하느님이 기다리시는데 어찌…

 

아기를 둘러업고 한 시간씩 걸어 성당에 갈 때도 있었고, 30분 만에 한 대씩 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육중한 아이를 안은 채 필사적으로 달리기도 했었다.

 

왜 하필 아기는 성당에 갈 시간에 젖을 찾고 기저귀를 적시는지…. 왜 미사 중에 젖 달라며 보채는지…. 수유실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와 함께 앉아 편안히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공간도 없었다.

 

젖먹이를 데리고 성당에 다니는 게 너무 힘이 들었다. 이런저런 이유였다. 수시로 주일을 거르게 되고, 쉬다 보니 냉담도 이력이 붙었다. 주일을 지키지 않는 사유를 합리화시키다 보니 죄의식마저 엷어진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걸을 수 있게 돼 주일을 꼬박꼬박 지킬 수 있게 됐을 즈음 둘째가 태어났다. 두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해서 사정이 더 나빠진 것이다.

 

도중에 가게까지 차려 1년을 내리 쉬었다. 그런데 정말로 성당에 갈 수 없는 형편이 되자 미지근하던 신앙이 갑자기 간절해졌다. ‘이놈의 가게를 그만두면 성당부터 가야지’, 벼렸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면담 고해를 하고 벼락이라도 맞은 듯 정신을 차렸다. 9년 동안 곰팡내 나도록 방치해 뒀던 신앙을 끄집어 정비했다. 성경공부를 시작하고 시간 되는 대로 평일 미사를 드렸다.

 

성당에서 행하는 모든 전례에도 적극적으로 참례했다. 소명으로 믿고 받아들인 중ㆍ고등부 교사와 성경 봉사자 활동도 열심히 했다. 긴긴날 나를 기다려주신 주님 은혜에 대한 보답이었고 그분을 등졌던 세월에 대한 보속이기도 했다.

 

큰아이는 2학년에, 다섯 살 작은 아이는 청강생으로 1학년에 등록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주일학교에 다니게 했다. 그즈음 남편이 입교를 했고 남편과 함께하니 신앙생활이 한결 수월해졌다.

어느 날 군대 간 제자에게서 편지가 왔다. “선생님, 너무너무 성당에 가고 싶어요.”

강원도 철책선 부근에서 복무하던 제자는 성당에 못 가는 게 가장 슬프고 힘들다고 했다. 유난히 성실했으며 방학 땐 매일 미사에 나와 칭찬이 자자하던 학생이었다.

 

그런데 군대에서 보초 서느라 주일도 못 지키게 되었으니 얼마나 애가 닳았을까. 그 제자의 절절함이 내게 죽비가 되었다. 더러 마음이 헐거워지거나 게으름을 피우고 싶을 때도 있지 않은가.

평일 미사를 드리기 시작한 지 22년 됐다. 아프다고 미사를 쉰 적은 없지만 달리 방도가 없어 미사를 못 드리는 날은 정말 크고 소중한 걸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하고 속상하다.

 

저녁 미사가 있는 날 누군가가 만나자고 하면 가급적 미사가 끝난 다음으로 약속을 잡고 주일학교 제자들을 만날 땐 함께 미사를 드린 다음에 밥을 먹는다. 미사를 희생시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살림도 해야 하고 경제활동도 하며 교회 안팎에서 이런저런 봉사를 하고 있다는 걸 아는 지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정말 부지런하세요.” 그런데 부지런해서 날마다 미사를 드리는 게 아니다.

 

그냥 일상이다. 하루 세끼 밥을 먹듯 미사 드리는 것도 내겐 당연한 일상인 것이다. 주님께서 나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어찌 미사를 빠뜨릴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