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태양이 동녘에서 떠오른다.” 하고 흔히들 말합니다. 우리는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지 태양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이 말을 엉터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시적 표현’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지 창조를 마치 곁에서 지켜 본 것처럼 기록하고 있는 구약성서 창세기도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창세기는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가르치거나 과학적 지식을 가르치는 교과서가 아니라 ‘신앙의 진리’를 가르치는 책이기 때문입니다.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 땅은 아직 모양을 갖추지 않고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는데, 어둠이 깊은 물 위에 뒤덮여 있었고 그 물 위에 하느님의 기운이 휘돌고 있었다.……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하시고, 당신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그들에게 복을 내려 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이렇게 만드신 모든 것을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았다. ……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새로 지으시고 이렛날에는 쉬시고 이 날을 거룩한 날로 정하시어 복을 주셨다(창세 1,1―2,3).
유일하시고 전능하시며 사랑이 넘치시는 하느님
우리는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유일하시고 전능하시며 사랑과 자비가 넘치시는 분이심을 믿고 고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오직 한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께서 유일하신 분이심을 알려 주셨습니다. “너,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의 하느님은 주님이시다. 주님 한 분뿐이시다. 마음을 다 기울이고 정성을 다 바치고 힘을 다 쏟아 너의 주 하느님을 사랑하여라”(신명 6,4-5).
또한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십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므로 그분께서는 하늘과 땅에서 전능을 떨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고, 그분께서 만드신 것은 그분의 처분에 맡겨져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온 우주와 역사의 주인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전능을 무한한 사랑과 자비로 보여 주십니다.
세상과 인류의 기원에 관하여
구약성서 창세기에는 태초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태초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적, 종교적 체험을 바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기들과 하느님의 관계가 온 인류와 하느님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조상 대대로 전해 오던 태초의 이야기는 단순히 민족의 기원을 설명하는 설화나 전설이 아니라 세상과 인간의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해답을 주는 진리임을 믿게 되었습니다.
창세기에는 천지 창조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이 창조 이야기는 세상과 인간의 창조가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과학적으로 규명하려는 기록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인간의 삶 속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에 대한 신앙의 진리를 가르치려는 기록입니다. 창세기에는 이 두 가지 이야기가 함께 수록되어 위와 같은 신앙의 진리가 더욱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
창세기의 첫 번째 창조 이야기의 핵심은 하느님께서 우주 만물과 인간을 지어내신 유일하신 창조주이시라는 믿음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만물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사랑으로 만물의 질서를 세우셨고(지혜 11,20 참조), 그 질서를 바탕으로 온갖 천체와 동식물을 제자리에 채우심으로써 조화를 이루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가장 으뜸인 인간이 장차 살아갈 삶의 터전을 마련하신 것입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주 만물 가운데 인간만이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는 존재이며, 세상의 관리자로서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협조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하신 모든 것을 보시고 “참 좋았다.” 하고 말씀하심으로써 당신 사랑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선한 것’이고, 당신 사랑으로 만드시는 것은 모두 ‘좋은 것이된다.’는 하느님 사랑의 진리를 가르치셨습니다.
창조주 하느님 안에서 누리는 인간의 행복
창세기의 두 번째 창조 이야기는 설화적인 서술 방법을 사용하여 하느님께서 인간을 “진흙으로 빚어 만드시고 코에 입김을 불어넣어”(창세 2,7) 창조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 창조에 쓰인 재료나 방법을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기원은 하느님께 있고, 인간은 본질적으로 다시 흙으로 돌아갈 유한한 존재이며, 동시에 하느님의 거룩한 숨결로 생명을 부여받은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은 전적으로 하느님께서 주신 선물이며, 인간 생명의 주권은 하느님께만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에덴 동산 이야기는 하느님과 사람의 친근함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사람은 그 곳에서 “동산을 돌보며”(창세 2,15) 사는데, 그 노동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남자와 완전히 동등한 존재로서 삶의 동반자가 될 여자를 만드시고 서로 짝을 이루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생명과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고,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창조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 때 참된 평화와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른 인간
에덴 동산의 이야기에서 하느님께서는 모든 열매는 다 따먹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마라.”(창세 2,17) 하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이 금지 명령은 인간의 자유를 제약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느님의 보살핌 안에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자유 영역을 보장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헛된 욕망과 하느님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교만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명령을 어김으로써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깨뜨리고 무질서와 혼란, 온갖 불행과 고통스러운 죽음을 스스로 불러들였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들이 하느님과 맺은 올바른 관계를 단절하고 하느님의 뜻을 거스름으로써, 하느님께 받았던 복을 저주로 만들어 버린 근원적인 잘못을 우리는 ‘원죄’(原罪)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을 떠난 인간의 처지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올바른 인간의 길을 알 수 있는 이성적인 판단력, 양심에 따라 선과 악을 분별하여 행동할 수 있는 의지력, 그리고 당신의 뜻을 따르거나 거부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까지도 부여하셨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어떤 길이 생명의 길이고 어떤 길이 멸망의 길인지를 제시해 주셨고, 그 결과까지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궁극적인 선택은 인간에게 달려 있고,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고 범죄한 인간은 정의로우신 하느님의 심판을 자초하여 생명과 사랑이신 하느님과 결별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하느님과 함께 살던 시절의 기쁨과 평화 대신에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을 떠난 인간의 비참한 삶의 현실입니다.
하느님의 구원 약속
창세기에 나오는 인간의 범죄 이야기는 우리에게 암담한 좌절감을 안겨 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뱀과 여자가 원수 사이가 되고 서로 투쟁하게 되겠지만, 결국 여자의 후손이 승리하리라.”(창세 3,15 참조) 하는 말씀으로 인간에게 구원에 대한 약속과 희망을 주셨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원죄에 대비되는 ‘원복음’(原福音)이라고 말합니다.
이 약속과 희망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침내 성취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과는 달리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 죄가 많은 곳에는 은총도 풍성하게 내렸습니다.”(로마 5,19-20) 하고 말하였습니다.
세상과 인간 구원의 역사
하느님께서는 친히 약속하신 대로 인간을 구원하시려고 우리 역사 안에 들어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시어 그와 그 후손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그들을 모세를 통하여 구원하시고 그들과 계약을 맺으시고 당신의 율법을 내리셨습니다(출애 19―20장 참조). 그리고 당신 아드님을 통하여 이루실 구원을 받아들이도록 예언자들을 통하여 그들을 준비시키셨습니다.
마침내 때가 이르자 당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이 세상에 보내시어 인류 구원 계획을 성취하셨습니다(히브 1,1-2 참조).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당신 목숨을 바치시어 인간을 죄악에서 건져내시고(마르 10,45)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회복시키는 은총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인간 구원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내신 당신 사랑의 역사입니다.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유일하시고 전능하시며 사랑과 자비가 넘치시는 분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으로 창조된 만물은 모두 선하며, 그 가운데서도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을 닮고 하느님의 숨결을 받은 가장 고귀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헛된 욕망과 교만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고 하느님의 곁을 떠남으로써 비참한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구원을 약속하심으로써 희망을 갖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요한 15,16). 이 부름에 응답하는 길은 사랑뿐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하느님을 사랑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을 사랑하며, 삶의 터전을 이루어 주는 자연을 사랑하도록 합시다.
'가 톨 릭 이 야 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톨릭이란?> 10. 우리는 성령을 믿습니다 (0) | 2013.04.01 |
---|---|
<가톨릭이란?> 9. 우리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0) | 2013.04.01 |
<가톨릭이란?> 7.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0) | 2013.04.01 |
<가톨릭이란?> 6.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0) | 2013.04.01 |
<가톨릭이란?> 5. 성서란 무엇인가? (0) | 2013.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