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가치, 경제적 관점보다 인간 존엄으로 판단해야
| ▲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는 2011년 9월 마고네공부방을 설립, 다문화가정의 청소년들을 돌보고 있다. 사진은 당시 서울 성북구 성북동 마고네공부방에서 서울대교구 사회사목 담당 교구장 대리 김용태 신부 주례로 축복식이 거행되고 있다. |
보편 교회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정의와 사랑을 장려하기 위해, 또 빈곤한 지역의 발전과 사회정의를 촉진하기 위해”(「사목헌장」 90항 참조) ‘기구’를 설립할 것을 권고한다.
한국 교회는 사회정의와 사랑을 선교 정책에 통합시켜 가면서 현실 사회를 자신의 섬김과 나눔의 토대로 삼고자 도시 빈민사목, 노동사목 등으로 사목 지평을 넓혀갔다.
그렇다면 86 아시안게임과 88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불었던 재개발의 바람이 막 지나간 1988년으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의 한국 교회는 과연 ‘가난한 이들의 교회’일까? 빈민, 노동사목의 현장에서 ‘카리타스(Caritas) 실천’은 어떻게 구체적으로 이뤄져 왔는지 돌아본다.
1987년 10월. 서울 도봉동 달동네에 ‘나란히글방’이 만들어졌다. ‘천주교도시빈민위원회’, 약칭 천도빈 회원들에 의해서였다.
대학 졸업 뒤 할 일을 고민하며 천도빈에서 세미나를 하던 이강옥(로사)씨, 상계동 철거 투쟁 현장의 탁아소에서 일했던 김영실(안나)씨는 윤순녀(수산나) 천주교 여성공동체 회장의 제안으로 윤 회장 집에 입주해 공부방을 시작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오늘의 말씀’을 나누고 하루하루의 삶에 감사와 각오를 다지며 공부방 사도직을 4년간 이어갔다.
1991년 독일 미제레올의 지원으로 나란히글방이 윤순녀 회장의 집을 인수하게 되면서 공동체 생활은 막을 내렸지만, 공부방은 여전히 가난한 아이들의 거점으로 남았다.
그러던 중 철거와 재개발 싸움 속에서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확보하지 못한 나란히글방은 1994년 초 7년 만에 사도직을 종료한다.
그 ‘악다구니’ 같은 재개발 와중에 남겨진 이강옥씨의 회고담을 들어보자.
“천도빈 활동을 하며 각인된 원칙과 이념들이 현실 앞에서 한없는 균열이 생기고 또한 위배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 가난한 이들에게 삶은 원칙보다 우선했다.
이들이 겪는 생존의 절실함이 곧 원칙이자 이념이었다.”(「우리의 사랑 그 온전한 실천」 사례집에서)
‘광풍처럼’ 도시 개발 정책이 불어닥쳤다. ‘강제 철거’는 ‘빈민’을 양산했고, 그 갈등은 1980년대 들어 최고조에 달했다. 이들 가운데엔 예수회 정일우(존 데일리, 1935~2014) 신부와 제정구(바오로, 1944~1999) 전 의원이 있었다.
1987년 4월 28일 도시빈민사목위원회가 설립됐다. 오늘의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다. “사귐과 섬김, 나눔의 정신으로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였다.
당시 빈민들의 삶의 현장을 수시로 찾으면서 ‘도시빈민사목위원회’를 인준한 김수환 추기경은 “교회는 가난한 사람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사목을 펼쳐야 한다”고 당부하곤 했다.
그 덕에 30여 년 동안 서울 금호1가동ㆍ무악동ㆍ봉천3동ㆍ삼양동ㆍ장위1동 선교본당과 평화의 집이 설립돼 ‘가난을 살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교회 건설이 가능했다.
빈민사목 30주년을 넘긴 오늘의 현실은 어떨까?
재개발은 여전히 계속되고, 그 와중에 가난한 이들은 또다시 도시 외곽으로 밀려난다. 쪽방과 고시원, 옥탑방으로 흩어져 ‘힘겹게’ 살아간다.
지난해 설립 30주년을 맞아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는 ‘설립 원형’을 기억하고자 했다. 그 결과물이 「이웃이 되어 준 사람-빈민사목위원회 40년(2017~2026) 의제」였다.
이 문건이 사문화되지 않도록 계속 보완하며 의제와 실천을 풍부하게 하도록 구조를 개편했고 정책홍보ㆍ교육양성ㆍ현장조직ㆍ의제실천팀을 구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제1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을 맞아 비주택 주거자에 대한 사목적 배려로 서울 용산구 동자동, 종로구 돈의동 쪽방 지역과의 연대활동을 시작했다.
선교본당 사목을 확장시켜 일선 본당과 연계하는 빈민사목 활동을 펼쳐나감으로써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을 지속해 나가는 것은 빈민사목의 또 다른 과제다.
이영우(서울대교구 봉천3동선교본당 주임) 신부는 “예전과 달리 빈민가 달동네에 살던 빈민들이 도시 여기저기로 흩어져 ‘안 보이게 되면서’
신빈곤층과 함께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면서 “대학가 고시촌은 1인 가구가 60∼70%나 돼 그분들과 함께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귀띔했다.
“공부방은 폐쇄 직전이지만 중고 의류를 나누는 나눔터는 그런대로 유지되고 있다”며 “신빈곤층이 자기 문제를 스스로 풀어갈 방법을 찾도록 연대한다”고 이 신부는 덧붙였다.
철거와 재개발, 주거복지가 빈민사목의 동인이었다면, 산업화와 노동의 소외 문제는 노동사목의 동인이었다.
1968년 강화도 심도직물 노동조합 사건을 시작으로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가난한 노동 현실이 나아지도록 하기 위한’ 노동사목에 한국교회는 깊은 사목적 관심을 보였다.
특히 교회가 사회 현실에 눈뜨게 된 데는 1958년 국내에서 활동을 시작한 가톨릭노동청년회(JOC)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올해로 설립 60주년을 맞는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의 발자취를 20년 단위로 끊어보면, 노동사목의 윤곽이 그려진다.
1970년대 이전까지가 노동사목의 싹을 틔운 ‘발아기’였다면 1980∼90년대는 그 줄기가 자라난 ‘성장기’, 19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의 긴급구제금융, 이른바 ‘환란(換亂)’ 이후로는 그 가지가 갈라져 나간 ‘전환기’가 되고 있다.
| ▲ 지난 2017년 9월, KTX 해고 승무원 대책위원회는 서울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서울역 광장까지 오체투지로 약 3㎞ 구간을 3시간 동안 행진했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는 KTX 여승무원들과 연대했고, 마침내 이들은 12년 만에 전원 복직하게 됐다. 가톨릭평화신문 DB |
산업화 와중에 우리 노동 현실에 ‘예언자적이고 실천적으로 응답했던’ 한국 가톨릭교회는 오늘은 어떻게 응답하고 있을까.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의 사목 현황을 보면 일면을 엿볼 수 있다. 교구 노동사목위원회는 교육과 연구, 연대 활동, 사도직 강화, 산재사목 등을 통해 노동계의 변화와 흐름을 읽고 시대에 응답하고 있다.
우선 강연(교회와 세상)과 가톨릭 청소년 노동권리 교육(숨), 가톨릭 청소년 노동인권 관심자 교육, 한국비정규노동박람회 부스 참여 등을 통해 교육과 연구에 주력한다.
나아가 노동자들과의 실천적 연대 활동과 노동권익 증진, 노동자 심리상담 네트워크 구축 등에 힘쓰고, 가톨릭노동청년회와 가톨릭노동장년회, 어린이사도직운동(MIDADE) 등을 통해 노동사도직을 강화하고 있다. 산재환자 방문사목도 빼놓을 수 없다.
그래도 우리의 노동 현실은 척박하다. 노동계의 복음화, 나아가 최근 사회적 현안으로 떠오른 난민과 이주민, 이주노동자 선교와 사목은 아직 갈 길이 멀다.
서울대교구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 정수용 신부는 “오늘날 사회에서 노동을 지나치게 경제적 관점으로만 바라보다 보니 일하는 분들도 경제적 논리로만 이해되지만, 교회가 말하는 노동의 가치는 인간의 존엄에서 비롯된다”며
“그런 의미에서 노동사목의 의미도 소외된 노동자들뿐 아니라 우리 각자가 노동의 가치를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오세택 기자(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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