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은 인간의 참여 없이 주어지지 않는다
“모든 이를 위하여”를 “많은 이를 위하여”로
예수 말씀에 대한 존중 담아 성경 표현 충실히 번역 수정
‘모든 이’ 위해 돌아가셨다는 신앙적 가르침은 변함 없어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당신 이름으로 모인 곳”(마태 18,20)에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교회와 우리의 삶 안에 현존하신다.
그 가운데서도 성체와 성혈의 형상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방식은 가장 특별한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특별한 방식으로 당신 자신을 우리를 위한 참된 양식이요 참된 음료로 내어주심으로써 우리 가운데 신비롭게 머무시길 원하셨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5-56)
감사 기도에서 사제가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줄 내 몸이다”, “이는 …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라고 말하며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되도록 빵과 포도주를 축성할 때, 그것은 자신의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교회는 언제나 이러한 믿음을 간직하고 고백해왔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봉헌물들을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신 것은 인간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사제가 말을 하지만, 그 말의 효력과 은총은 하느님에게서 옵니다.
‘이는 내 몸이다.’ 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봉헌물들을 변화시킵니다.”(요한 크리소스토모, 「유다의 배반에 대한 강론, 1,6)
새 「로마 미사 경본」(제3표준판)의 각 모국어 번역에서 가장 논란이 되었던 부분 가운데 하나는 감사 기도의 축성문에서 라틴어 원문의 “pro multis”의 번역과 관련된 문제였다.
한편 루카 복음에서는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20)라고 말한다.
따라서 “많은 이를 위하여”란 표현은 앞서 보았던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중요한 전례문을 변형 없이 원문에 충실하고 정확하게 옮기고자 한 결과로 우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물음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닌가?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12년 독일 주교회의 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 점을 인식하면서도 “pro multis”에 대한 더 정확한 번역으로 “많은 이를 위하여”란 표현을 사용하도록 강조하셨다.
첫째, 예수님의 성찬 제정 말씀에서 비롯한 “많은 이를 위하여”란 말은 전례문 안에서도 하나의 해석의 형태가 아니라 성경의 표현 그대로 정확히 번역함으로써 예수님의 말씀 자체에 대한 교회의 특별한 존중을 드러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이 표현으로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를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죽으셨다는 신앙의 가르침이 변경되는 것이 아니다.
인천교구 소속으로 2000년 1월 사제품을 받았다. 교황청립 성 안셀모 대학에서 전례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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