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는 감동과 통찰이다. 필립 그로닝의 '위대한 침묵'과 마이클 화이트의 '사랑의 침묵'이 그것을 잘 대변하고 있다. 이 두 영화 모두 침묵과 고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필립 그로닝 감독은 카메라 렌즈를 통해 해발 1천300m의 알프스 산자락에 위치한 그랑드 샤르트뢰즈(Grande Chartreuse) 수도원의 완벽한 침묵을 그려내었다.
그리고 마이크 화이트 감독은 런던 로팅힐의 가득찬 소음 너머에서 침묵과 고독 속에 살아가고 있는 수녀들의 일상을 담아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지루한 수도원의 일상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감동하는가? 수도원은 세상과 격리되고 단절된 곳이다. 수도사들은 스스로를 유폐시킨 채 침묵과 고독 속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과연 그들에게서 무엇을 찾고 있는가? 그들이 추구하는 고요와 청빈의 삶인가? 근원적인 영혼의 목마름을 수도원에서 채우고자 하는 것인가?
지난 몇 년 간 대학에서 '중세 수도원 영성과 개혁'이라는 강좌를 개설하면서 수도원에 관한 많은 책을 읽고 여러 문헌들을 찾아 발로 뛰었지만, 중세도 수도원도 멀리만 있었다.
움베르토 에코는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고, 우리는 여전히 중세의 유산 속에 살고 있다'고 했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공간 속에서 시간의 흔적을 찾아야 했다. 수도사들의 삶 속에서 나를 발견해야만 했다. 그래서 지난 여름 프랑스, 수도원 개혁의 심장을 향해 떠났다.
수도원을 찾아가는 길은 프랑스를 크게 세 권역으로 나누어 진행되었다.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 지역이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표적인 건물을 자랑하는 루앙 근처에 있는 쥬미에쥬 수도원과 649년에 세워져 여전히 29명의 수도사들이 베네딕트 전통을 잇고 있는 퐁트넬 수도원과 벡 수도원, 그리고 바다 한 가운데 자리한 바위섬에 세워진 신비의 수도원 몽생미셀과 솔렘 수도원이었다.
솔렘에서의 2박 3일은 감동 그 자체였다. 사르트 강변 작은 언덕에 위치한 수도원에서 만난 검은 수도복을 입은 수도사들의 모습에서 중세를 읽을 수 있었다. 그곳에는 하루에 일곱 번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며, 절제의 삶을 살아가는 베네딕트 규칙이 살아 있었다.
두 번째는 프랑스 서남부와 프로방스 지역에 있는 수도원을 찾았다. 중세의 가장 거대한 수도원으로 그 위용을 자랑했던 퐁테브로 수도원과 프랑스 서부 산골 마을에 위치한 콩크 수도원, 그리고 프로방스 계곡에 자리한 세낭크 수도원이었다.
세낭크 수도원은 라벤더로 유명하다. 라벤더가 익어 가는 7월이면 전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기 때문에 수도원으로 올라가는 좁은 계곡은 자동차들로 가득하다.
세 번째로 찾은 곳은 개혁 수도회의 본원이 위치한 프랑스 남동부지역이었다. 그레노블의 그랑드 샤르트뢰즈 수도원과 리옹의 클루니 수도원, 그리고 디종의 퐁트네 수도원과 시토 수도원이었다.
마지막으로 찾은 플뢰리 수도원은 삶의 여유와 고요가 넘치는 곳이었다. 수도원의 예배는 엄숙함과 장엄함이 특징인데, 플뢰리에서는 자유와 여유의 아름다움이 넘치고 있었다.
플뢰리에서 기도는 바로 삶이었다. 그곳에 머무는 사흘 동안 나는 간간이 기도실을 찾았는데, 아침 기도회를 마치고 방문객들이 식사를 하고 있는 시간에도 기도실에서는 수도사들의 침묵 기도가 이어졌다.
수도원은 단절과 은둔의 장소이며, 수도사들은 스스로 은둔을 택한 사람들이다. 수도원에서 보낸 하루 하루, 수도사들과 만났던 시간 시간은 하나님 안에서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침묵 속에 살아 역동하고 있는 프랑스 수도원은 나를 중세로 인도한 것이 아니라 지금 바로 이 순간 나의 현존을 보게 했다.
유재경 교수(영남신학대학, 기독교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