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승천을 기념한 교회는 이제 주님 친히 약속하신 성령의 오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는 ... 이제 알았습니다. 이로써 저희는 ... 믿습니다."(요한 16,30)
예수님의 긴 가르침 끝에 제자들이 비로소 앎과 믿음을 고백합니다. 무수한 표징들, 가르침, 감격스런 세족례, 그리고 성령의 약속 등으로 조금씩 지혜와 마음이 열린 걸까요? 스승으로서는 참 보람있는 순간이 아닐 수 없을 텐데요.
"이제는 너희가 믿느냐? 그러나 너희가 나를 혼자 버려두고 저마다 제 갈 곳으로 흩어질 때가 온다."(요한 16,32)
예수님의 이 직설적인 말씀에 제자들이 좀 머쓱해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끝까지 충성하겠다고 맹세하던 베드로에게 세 번의 부인을 예고하시던 때도 생각이 나고요.(요한 13,38 참조)
제자들은, 이제 알았고 또 믿게 되었으니 스승과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고 스스로 뿌듯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마치 거기에 찬 물을 끼얹는 것 같네요. 정말 그런 의도셨을까요? 하지만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에 머무르다 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러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다."(요한 16,32)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다 흩어져 떠나더라도 나는 혼자가 아니니 걱정 말라고, 너무 미안해하지 말라고, 안심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앞으로 벌어질 유쾌하지 못한 일들을 굳이 미리부터 밝히시는 이유를 들어 주시지요.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6,33)
평화! 스승께 끝까지 의리와 신의를 지키고 생사고락을 함께함으로써 얻는 자긍심과 성취감이 아니라, "평화"를 말씀하십니다.
이 평화는 세상이 주는 무탈과 안정과 자기 만족과는 분명 다르다는 걸 제자들도, 우리도 그간의 가르침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누리게 될 평화란 어떤 것일까 머물러 봅니다. 예수님께서 미리 예고하신 일들이 모두 일어나고 나면 과연 그들은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될까요?
'세상에! 스승님은 우리가 이렇게 형편없이 도망갈 줄 뻔히 다 아시면서도 우리를 그렇게까지 사랑해 주셨단 말이야?!!!'
예수님은 제자들을 무안하고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말씀을 미리 하신 게 아니라, 제자들 됨됨이와 약함을 이미 다 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어주고 사랑했다는 걸 그들이 나중에라도 깨닫기 바라셨을 겁니다.
사실 이런 류의 믿음은 그대로 이루어지게 만드는 마법의 손가락같은 힘이 있기도 합니다.
"너희는 세상에서 고난을 겪을 것이다."(요한 16,33)
그리고 또 이어지는 고난의 예고는 신앙의 길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암시합니다.
신앙은 한번 알고 믿어서 완성되는 길이 아니니까요. 믿음의 여정은 내게 닥쳐온 고갯길에 드디어 간신히 올라섰다고 여기는 순간, 또 다른 내리막길과 절벽과 더 높은 산봉우리와 급류 치는 천길 물속을 마주하게 되는 역동적인 실재입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
병도 주시고 약도 주시는 예수님 덕분에 오늘의 짧은 복음 분량 안에서 제자들의 오르내림이 잦고 또 가파릅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희망으로 끝을 맺고 있네요. 신앙의 길을 가다보면 이제 조금 성장한 것 같다가도 걸림돌에 걸려 맥없이 주저앉기도 하고, 또 실패한 듯 하다가도 어느새 훌쩍 자라 있는 자기를 만나기도 합니다.
그렇게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우월감도 좌절감도 아닌, 예수님 안에서 평화를 간직하고 나아가고 있다면 제대로 가고 있는 겁니다.
제1독서인 사도행전에서는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에서 활동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메시아의 오심을 예고하고 준비시킨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았던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자 성령께서 그들에게 내리시지요. 저자는 그들이 "열두 사람쯤"이었다고, 또 그곳 회당에서 "석 달 동안 설교하였다"고 표현합니다.
여기에 드러난 열둘과 셋, 완전함을 상징하는 숫자를 통해 성령의 오심과 함께 펼쳐질 복음 선포의 완성을 미리 희망하고 기대하는 암시가 아닐까 싶습니다.
부족한 제자들을 통해 세상 곳곳에 복음의 씨가 뿌려지고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형성되어 갑니다.
물론 이제 막 첫 걸음을 떼었을 뿐 완성이 아니지요. 예수님께서 예고하셨듯이 하느님의 자녀, 예수님의 제자로 거듭난 이들 앞에는 지난한 "고난"의 길이 예외없이 기다리고 있습니다만, 괜찮습니다.
주님의 길에서 겪는 희열도 절망도 웃음도 눈물도 믿음이 자라는 좋은 환경이 될 것이니까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예고하셨듯이 그 모든 것을 통해 얻는 평화야말로 예수님께서, 그리고 우리가 세상을 이겼다는 표지가 될 것입니다.
날고 있건 추락하고 있건 믿음의 길 안에서 멈춤 없이 걷고 있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위안을 담아 격려를 보내십니다.
"용기를 내어라!"(요한 16,33)
그러니 벗님 여러분, 용기를 내어 나아갑시다. 서로에게 용기가 되어 주면서...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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