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된 이 돕는 신부님 보며 저희도 두 팔 걷었죠”
월 2~3회 음식·옷가지 마련해
겨울을 재촉하는 듯한 늦가을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11월 15일 군종교구 서울 용산 주교좌국군중앙본당(주임 하청호 신부) 오전 10시 미사에 20여 명의 여성 신자들이 참례했다.
침묵 속에서 미사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며 기도를 바치고 있던 여성 신자들은 국군중앙본당 성모회(회장 박부경) 회원들이었다. 국군중앙본당 바로 인근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 등에서 근무하는 직업군인 신자들의 배우자들이다.
박부경(안젤라·54) 회장을 비롯한 성모회 회원들은 미사가 시작되기 훨씬 전인 이날 오전 8시 즈음 성당 1층 친교실에 모였다.
용산역 구내에서 하루하루 정처 없이 생활하는 노숙인들에게 샌드위치와 커피, 음료수, 겨울용 옷가지를 나눠주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준비에 나선 것이다.
성모회 회원들과 본당 수녀원장 김 이시도라 수녀(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는 미사가 끝나고 다시 친교실로 내려가 노숙인들에게 나눠 줄 샌드위치를 마저 만들었다.
40인분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큰 가방에 차곡차곡 담고 겨울용 옷가지도 다른 가방에 포장해 승용차 트렁크에 실어 용산역으로 출발했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 궂은 날씨였지만 용산역 구내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에게 음식과 옷을 나눠주는 데는 큰 불편함이 없었다.
이날 준비한 음식과 옷가지는 30여 분 만에 동이 났다. 김 수녀는 “노숙인들을 돕더라도 개인 신상은 전혀 묻지 않고 그들의 자존심을 존중한다”고 밝혔다.
하청호 신부는 성모회 회원들보다 먼저 용산역에 도착해 노숙인들과 담소를 나누면서 노숙인들이 당장 시급하게 필요한 물품들을 확인하고 있었다.
국군중앙본당 성모회가 용산역 노숙인들에게 1년여 전부터 매월 2~3회 음식과 옷가지 나눔을 하게 된 것은 하 신부가 보여준 모범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7월 국군중앙본당 주임으로 부임한 하 신부는 성당 주변을 혼자 걷곤 했고 용산역 노숙인들의 딱한 처지를 마주하게 됐다.
추운 날씨에 양말 한 켤레가 없는 사람, 바지 한 벌을 1년 내내 입는 사람 등 딱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하 신부는 노숙인들이 생각날 때마다 용산역에 혼자 나가 가끔 막걸리 한 잔을 주고받으며 노숙인들의 애환을 듣고 그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힘 닿는 대로 마련해 줬다.
국군중앙본당 성모회 회원들은 하 신부가 우리 사회 가장 소외되고 쓸쓸한 이웃에게 관심과 연민을 보이는 언행에 감화돼 “우리도 돕겠다”는 마음으로 노숙인들을 위한 봉사에 매월 꾸준히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 인터뷰 / 주교좌국군중앙본당 주임 하청호 신부
-“길 위의 노숙인들이 곧 고통받는 예수님”
지난해 추석에는 명절에 더욱 외롭고 슬픈 노숙인들을 생각해 국군중앙본당 성모회 회원들과 뜨끈한 찌개와 돼지고기 요리를 만들어 용산역에서 노숙인들에게 대접했다.
하 신부는 “제가 할 수 있는 선까지는 컵라면 하나라도 도움을 주면 노숙인들이 더 안 좋은 쪽으로 탈선하지 않게 된다”며 “아무 할 일 없이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는 노숙인들에게 말을 걸고 누군가를 만난다는 ‘계획’을 선물해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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