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학문적 접근, 준비 단계에 불과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이에 대해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은 성령의 감도 하에 쓰여진 하느님의 말씀 그 자체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성경 영감설’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단순히 오늘날처럼 소설책을 읽듯이 눈과 머리로 재빨리 읽어 버리면 그 본래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을 수가 없다. 성경 독서는 분명히 오늘날 우리의 독서 방법과는 달라야 한다.
이에 대해 중세 수도승 전통의 권위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장 르끄레르 신부는 두 개의 큰 범주로서 성경 독서법을 제시하였다. 첫 번째 성경 독서는 ‘학문적인 독서’(the scholastic lectio)이다.
이것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지적인 접근 방법으로써 분석적이고 논쟁적인 측면을 지닌다. 이러한 방법은 오늘날 특히 성경학적인 측면에서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러나 성경을 단순히 지적인 호기심이나 학문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한다면, 말씀이 담고 있는 본래의 참다운 의미와 영적인 측면을 소홀히 할 위험이 있다.
예수회의 윌리암 존스턴 신부는 이러한 접근법으로는 사랑에서 나오는 숨겨진 하느님에 대한 참된 지혜와 그리스도의 현존을 결코 발견하지 못할 것임을 지적하였다.
실제로 오늘날 성경학자 중에는 신앙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현실에 우리는 놀라움을 가지게 된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유다인들은 성경을 경건하게 대하고 열심히 탐구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해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요한 5,39)
또한 바리사이들도 성경을 열심히 연구는 했지만 진정 살아계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성경을 연구해 보시오. 갈릴래아에서는 예언자가 나지 않소.”(요한 7,52)
가르멜 수도회의 유명한 영성가이자 저술가인 라르킨(E. Larkin)은 다음과 같이 경고하였다.
“만약 우리가 순전히 지적으로만 성경에 접근한다면 혹시 아름다운 신학적인 표현들과 문장들에 대한 자료들을 발견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주님을 만날 수는 없다.”
현대의 영성가 중의 한 분인 토마스 머튼 역시 이 점을 지적하였다.
비록 현대에 수많은 학문적인 성경 연구가 우리의 성경 이해에 도움을 주었지만, 그 반대로 너무 전문적이고 학문적인 영역의 복잡함으로 인해 오히려 성경에 대한 관심을 덜 갖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이러한 학문적 연구의 단계가 더 깊은 하느님 말씀과의 인격적인 단계에 이르기 위한 하나의 준비 단계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세계적인 구약 성서학자인 루이스 알론소 쇠켈(L.A. Schkel)은 평생을 성경 연구에 투신했던 학자였지만, 자신의 고별 강연회에서 다음과 같은 겸손의 말을 남겼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아직도 나의 성경 연구가 신랑의 목소리를 찾아 밤거리를 헤매는 아가의 신부 마음 같고, 마치 광대한 태평양을 바라보며 그 태평양의 물 한 모금을 조금 맛본 듯한 그런 심정입니다!”
결국, 하느님의 말씀을 단순히 학문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려는 시도는 시작부터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우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허성준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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