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것에서 새것을 꺼내다… 우리 시대에 맞게 현대화
▲ 그림=하삼두 스테파노 |
지금까지 우리는 토마스 머튼이 이해한 기도와 관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번 호부터는 머튼의 관상에 대한 이해가 오늘날의 영성에 어떤 공헌을 하였는가에 대해 평가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토마스 머튼은 지금까지의 관상한 개념을 ‘종합하고 이를 우리 시대에 맞게 현대화’한 인물이다. 그렇다고 머튼이 처음부터 관상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초기 작품은 토미즘에 바탕을 둔 관상에 대한 전통적인 이해를 지적인 면에서 다루었다. 그러나 자신의 관상 체험이 깊어질수록 전통적인 관상에 대한 묘사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막 수도승의 관상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동양의 사상의 영향 아래에서 관상적 체험을 종합하고 자신의 시대 언어로 발전시켜 나갔다.
이러한 머튼의 변화 과정에 대해 앞으로 3회에 걸쳐 머튼의 주요 저서를 중심으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초기에는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의 관점과 비슷
머튼이 관상에 대한 종합적이고 현재적인 비전을 갖게 된 것은 지적(知的)인 전망으로부터 존재론적이고 경험적인 관점으로의 변화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
이 변화는 관상의 영성에 대해 기록된 그의 초기 작품들과 후기 작품들을 비교할 때 분명해진다.
가령, 그의 초기 소책자 「관상이란 무엇인가?」(What is Contemplation?, 1950)에서 머튼은, 관상을 “초자연적인 사랑과 하느님의 지식에 대한 직관이
하느님에 의해 영혼의 정점 안으로 주입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지상에서 순수한 관상가들이 결코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정의는 관상에 대한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의 관점과 매우 가깝다.
가령, 십자가의 성 요한은 관상을 “영혼을 깨어나게 하는 하느님의 주입된 사랑의 지식이며 동시에 한 단계 한 단계 상승하여 창조주 하느님께 도달할 때까지 사랑으로 불타오르게 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머튼은 이 소책자에서 관상의 본성에 대해 다루었으며, 성경과 성 토마스 아퀴나스 그리고 십자가의 성 요한의 기초 위에서 관상적 기도를 위한 실천적 지침을 제안하였다.
그는 ‘주입된’ 혹은 ‘순수한 관상’(infused, or pure contemplation)과 ‘획득된 관상’(acquired contemplation) 사이를 구분하였다.
그리고 오직 전자만이 참된 관상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이것은 그리스도인 삶의 가장 높은 목표인 하느님과의 신비로운 일치와 상응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머튼의 저서 「진리를 향한 상승」(The Ascent to Truth, 1951)은 전통적인 관상에 대한 그의 분명한 관심의 결과였다.
그의 의도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콜라 신학과 십자가의 성 요한의 신비주의적인 통찰과 교회, 성경, 전례와 계시의 지적인 유산에 기초하여 신비 신학의 교의적 본질을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교의적 전망에서 종교적 체험의 전망으로 변화
머튼에게 있어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신비주의는 이성적이고 지적인 것이었다.
1950년대 중반 이후의 그의 글들과 사상에서 머튼의 관상을 향한 조직신학적 접근은 변화를 맞이한다. 예를 들어, 「요나의 표징」(The Sign of Jonas, 1953)의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는 「진리를 향한 상승」을 쓸 때, 비록 그것이 신학자들에 의해 널리 알려진 보편적이고 확실하며 받아들일 만한 것이라 할지라도,
기술적인 전문용어들을 일반인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종교적 체험에서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필수적인 것을 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요나의 표징」에서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교의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을 깨닫게 하는 영성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기에 저 자신의 영혼의 상태에 관하여 제 방식대로 표현하는 것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이러한 진술은 그가 교의적인 전망으로부터 개인적인 종교적 체험의 전망으로 변화되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또 다른 예는 그의 저서 「인간은 섬이 아니다」(No Man Is an Island, 1955)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그는 관상적 삶에 대한 자신의 체험과 그 체험에 관한 숙고들을 나눔으로써 믿음의 문제들에 접근하고 있다고 체험의 중요성을 더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그는 “관상은 신적인 것들의 체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설명할 수는 없지만 체험할 수 있는 이 위대한 신비 속으로 들어갑니다”라고 언급했다.
그가 관상 안에서 체험의 가치를 깨달았다고 하여 전통적인 가톨릭 관상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이 전통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발전시키고 있으며, 그 자신의 관상적 체험 안으로 그것을 종합하였다.
머튼에 따르면, “전통은 살아 있고 활동적이다… 오래된 전통은 항상 매우 새롭기도 하다. 그것은 각 세대에 다시 태어나며, 새롭고 특별한 방식으로 살아 있고 적용되어 항상 활기를 되찾고 있기 때문이다.”(「인간은 섬이 아니다」 226)
그러나 머튼은 ‘진정 살아 있는 전통적 내용이 텅 비워진’ 전통주의에 대해 저항하라고 경고를 했다.
▲ 박재찬 신부(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부산 분도 명상의 집 책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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