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자 료 실

[엉클 죠의 바티칸산책] (15)갈릴래아로 관상 순례를 떠나다

dariaofs 2020. 4. 6. 00:30

‘먹보요 술꾼’인 예수님과 막걸리 한 잔!





▲ 예수님은 갈릴래아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사진 속 언덕 어딘가에서 병든 이들을 고쳐주시고, 배고픈 이들을 위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다. 얼굴에 와 닿는 호숫가 산들바람이 예수님 손길처럼 포근하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아, 갈릴래아! 예수님이 꿈을 키운 땅!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새로운 삶을 시작한 땅!

성경 공부에 빠져들면서 저의 버킷리스트 1호가 바뀌었습니다.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초원에서 이스라엘의 갈릴래아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는 사순 시기, 저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래아로 갑니다. 관상 기도하는 요령으로 ‘관상(觀想) 순례’를 떠납니다. 2000년 전 그분이 사셨던 갈릴래아를 맘껏 체험해 봅니다.


왜 갈릴래아냐구요? 바로 이 말씀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수난당하기 전 제자들에게 이렇게 예고합니다. “나는 되살아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이다.”(마태 26,32)


부활하신 다음에도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시어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갈릴래아, 인간 예수 삶의 전부

‘인간 예수’에게 갈릴래아는 삶의 전부입니다. 부활 이전의 삶도, 부활 이후의 삶도 갈릴래아입니다. 예루살렘은 일시적인 과정일 뿐입니다. 예수님에게 갈릴래아는 무엇이었을까. 사순 시기가 되면 이 화두가 제 머릿속을 지배합니다.

갈릴래아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하느님의 역사와 인간의 역사가 겹쳐 있는 유일한 땅입니다. 예수님은 탄생(베들레헴)과 죽음(예루살렘) 등을 제외한 삶 전체를 여기에서 보냈습니다. 저의 관상 순례는 항상 카파르나움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님 공생활의 거점입니다. 기적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일어났습니다. 드넓은 대지에 웅장한 파노라마가 펼쳐집니다. 그분이 보았을 밤하늘 별은 지금도 총총히 빛나고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던 푸른 풀밭에 앉아 봅니다. 많은 사람이 그분에게 몰려들고…. 나도 그 순간 사람들 틈에 끼어 그분이 주시는 빵과 물고기를 얻어먹습니다.

갈릴래아에 가면 ‘인간 예수’를 만날 수 있어 좋습니다. 성경에 잠깐잠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만, 갈릴래아의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취하셨다는 사실이 큰 위안을 줍니다. 관상 순례가 즐거운 것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믿음이 겨자씨만도 못하다고 야단맞기도 하고, “너 어떻게 그따위로 사느냐”고 호된 질책도 받지만,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습니다.


 ‘먹보요 술꾼’(마태 11,19)인 예수님을 만나 막걸리 한잔 하며 고민을 털어놓습니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장면이 펼쳐집니다. 저의 관상 순례에는 고리타분한 엄숙주의가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 ‘시범 지역’

5년 전 광교산 기슭 ‘말씀의 집’에서 30일간의 영신수련을 마치던 날, 지도신부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갈릴래아로 갑시다.” 갈릴래아로 가자고? 왜 하필 갈릴래아? 신부님에게 물어봤습니다.


“신부님께서 가라고 하신 갈릴래아가 대체 어디입니까?” “형제님이 지금 사는 바로 그곳이 갈릴래아 아닐까요? 예수님이 언제 형제님에게 찾아올지 모릅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묵묵히 실천하면서 기다리십시오.” 어이쿠! 내가 또다시 엮이고 말았구나. 이런 질문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 아닌 후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갈릴래아에서 이루기 위해 이곳에 오셨습니다. 당시 갈릴래아는 하느님 나라 ‘시범 지역’이었습니다.


갈릴래아에 하느님 나라를 우선 건설한 다음, 이곳을 모델 삼아 땅끝까지 하느님 나라를 건설한다는 전략이 있었던 것 아닐까요. 무지한 인간들이 그분의 뜻을 알 턱이 없었지요.


예수님은 그 모진 수난을 당하셨으면서도, 이 땅에 다시 오신다셨으니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곳은 어디일까요? 다시 갈릴래아? 한반도는 아닐까요? 갖가지 상상을 해봅니다.

예수님께서 세우려 하신 하느님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림을 그려 주셨습니다. “그때에 눈먼 이들은 눈이 열리고 귀먹은 이들은 귀가 열리리라.…


뜨겁게 타오르던 땅은 늪이 되고 바싹 마른 땅은 샘터가 되며 승냥이들이 살던 곳에는 풀 대신 갈대와 왕골이 자라리라.…


주님께서 해방시키신 이들만 그리로 돌아오리라. 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에 들어서리니 끝없는 즐거움이 그들 머리 위에 넘치고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과 함께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라.”(이사 35,5-7.10)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