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자 료 실

[엉클죠의 바티칸 산책] (23) 코로나 사태, 집 없는 노숙인의 삶은

dariaofs 2020. 6. 3. 01:04
▲ 박형지 야고보 수녀가 이동제한령으로 인적이 뚝 끊긴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한 노숙인에게 도시락을 건네고 있다.



로마의 많은 시민이 지난 5월 4일 오랜만에 해방감을 맛보았습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단행된 이동제한령이 일부 해제되어 외출이 허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날 반가운 카톡 메시지를 하나 받았습니다. 박형지(야고보, 예수의 꽃동네 자매회) 수녀님이 오른쪽 다리에 붕대를 칭칭 감은 여성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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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잘 받고 집에 가고 있습니다”는 간단한 문자 메시지와 함께! 저 혼자 생각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어 성공하셨네! 하느님, 감사합니다.’

50대 이탈리아 여성 이사벨 자매님. 지난해 11월 예수의 꽃동네 자매회 로마 분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 만났습니다. 먼저 인사를 했는데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하더군요. 좀 이상했습니다.

 

천성이 쾌활한 이탈리아 사람들, 처음 만난 사람이라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수다를 떠는데, 도대체 반응이 없으니 말입니다. 박 수녀님이 슬쩍 귀띔해줬습니다.

 

“노숙인들은 세상 사람 모두를 극도로 불신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마음의 문을 좀처럼 열지 않아요. 친구는 물론이고 부모 형제도 믿지 않습니다. 병원 의사도….”

이사벨 자매님과 박 수녀님은 노숙인과 노숙인 자원봉사자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만났답니다. 광장 부근에는 120여 명의 노숙인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이사벨 자매님은 그 가운에 한 사람이었던 것이지요. 박 수녀님은 이사벨 자매님이 다리에 큰 상처를 갖고 있고, 마음의 상처(트라우마) 또한 깊고 크다는 사실을 알고서 수녀원으로 데리고 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사벨 자매님이 한사코 병원에 가지 않으려 한 것이었습니다. 바티칸의 노숙인 병원에 가면 무료로 치료받을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가장 딱한 사람들

박 수녀님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수녀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사벨 자매님이 드디어 병원에 갔네요.” “네, 수녀원에 온 지 7개월만입니다. 자매님이 만족스러워하니 고맙지요.”

이동제한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가장 딱한 사람은 사실상 노숙인들입니다. 정부 당국은 시민들에게 꼼짝 말고 집에 있으라고 하는데 노숙인들은 집이 없으니 말입니다.

 

모든 식당이 문을 닫아 얻어먹을 곳도 없고, 길거리에 사람들이 없으니 구걸할 수도 없고, 세상은 노숙인들을 코로나19 고위험군으로 인식하여 거들떠보지도 않고….

박 수녀님은 2013년부터 7년째 성 베드로 광장의 노숙인들에게 급식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김효정(야고보) 수녀님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매주 목요일 수녀원에서 밥을 짓고 수프를 끓여 노숙인들에게 저녁 식사를 드리는 일입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수녀님들이 주는 음식은 노숙인들에게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었던 만나와 같을 것입니다.

 

수녀님들은 주일에 샤워장 봉사도 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는 요즘, 노숙인들을 일일이 대면하여 봉사 활동을 한다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입니다.

박 수녀님을 생각할 때마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김 마리비안네(성가소비녀회) 수녀님이 떠오릅니다. 2013년 그곳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할 때였습니다.

 

캄보디아의 독특한 장례 문화에 관해 이야기하는 중이었는데, 김 수녀님이 캄보디아에 오기 전 오랫동안 시신을 염하는 봉사를 했다며 재미있는 일화를 들려주셨습니다. “아니, 수녀님이 염을 하셨다고요?” 저는 당시 적잖이 놀랐습니다. “형제님, 생각을 바꾸면 간단합니다.

 

돌아가신 분을 예수님이라 생각하고 정성껏 모셨습니다. 몇몇 신자들은 저에게 염해달라고 자식들에게 유언하기도 했어요. 정말 보람 있는 일입니다. 그 일 하려고 염사(殮師) 자격증도 땄습니다.” 저는 할 말을 잊고 말았습니다.


친구로 만나고 있어요

박 수녀님은 성 베드로 광장의 노숙인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노숙인들은 비록 집이 없지만, 바티칸 부근 어딘가에 저마다 ‘보금자리’를 하나씩 갖고 있습니다. 박 수녀님은 어느 자리에 누가 있는지 훤히 알고 있습니다.

 

“저는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도움을 주고 도움을 받는 그런 관계가 아니어요. 저분들과 친구로서 만나고 있습니다.”

누가 예수님의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어려운 일입니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은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것을 실천하면 너희는 나의 친구가 된다.”(요한 15,13-14)


이백만(요한, 주교황청 한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