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도 재테크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는 끝없이 부(富)를 쌓기만하는 사람들에게 탐욕을 버리고 가진 것을 나누라고 가르치신다. 그분이 싫어하는 것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에 대한 탐욕이다. 【CNS 자료 사진】 |
예수님에게 돈은 무엇이었을까. 예수님은 왜 돈 이야기를 그리 많이 하셨을까? 복음서에는 돈 이야기가 정말 많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교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비교종교학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불교와 이슬람교의 경우 주요 경전에 돈 이야기가 거의 없습니다. 불자들이 가장 많이 읽는 금강경에는 돈 이야기가 일절 없다고 하더군요. 이슬람교는 교리로 금리를 인정하지 않으니 돈 이야기가 많이 나올 수 없습니다. 복음서는 어떤가요?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예화의 절반 이상이 돈(재물)에 관한 내용입니다. 복음서 전반에 걸쳐 헌금, 세금, 이자, 환전상, 은행 등 돈과 관련된 단어가 많이 나옵니다.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금융 이야기
예수님은 당시 기준으로 상당한 수준의 금융 전문가였음이 분명합니다. 돈의 생리와 메커니즘을 꿰뚫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돈 이야기를 하십니다. 다른 종교의 창시자들과 대조적인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돈 담론’은 구름 잡는 선문답이 아닙니다. 매우 구체적이고 실무적입니다.
예수님 말씀 속에 등장하는 화폐 단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500원 정도 되는 동전(렙톤)에서부터 4억 원 정도 되는 거액(탈렌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마르 12,41-44) 예화를 읽을 때마다 놀라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렙톤은 그리스 동전이고 콰드란스는 로마 동전입니다. 예수님은 서민들이 많이 사용했을 푼돈까지도 잘 알고 있었고, 로마 화폐와 그리스 화폐의 환율까지 말해 주십니다. 얼마나 자상하고 꼼꼼한 금융 전문가이신가!
2000년 전 갈릴래아는 금융업이 꽤 발달했습니다. 나자렛 근방의 세포리스는 왕립은행이 있던 국제도시였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의 티베리아스도 세포리스에 버금가는 도시였습니다. 금융을 모르고는 사목 활동(복음 선포)이 어려웠을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금융에 대한 관심이 많았을 터이니 말입니다.
부자들은 물론이고 부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재테크가 중요한 화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설교나 연설을 할 때 드는 예화는 생활 속의 소재라야 설득력이 있습니다.
성경에 양(羊) 이야기와 돈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활 속에서 양과 돈이 그만큼 중요했다는 의미입니다. 돈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돈의 중요성과 저축의 필요성입니다. 되찾은 은전 이야기(루카 15,8-10)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찮은 은전 한 닢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요.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예수님은 되찾은 은전 한 닢을 되찾은 양 한 마리처럼 귀히 여겼습니다.
둘째, 적극적인 재테크입니다. 탈렌트의 비유(마태 25,14-30)는 목표 수익률 100%의 공격적인 재테크입니다. 예화 속의 주인은 종에게 금융기관(대금업자)의 수익률보다 높은 수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맹목적 저축에 대한 경고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루카 12,16-21)는 돈 자체에 탐닉하는 수전노가 되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곳간이 미어터지게 재물을 모은들 뭐 합니까. 하느님은 언제든지 주인의 목숨을 거두어 갈 수 있는데!
네 번째, 나눔의 미덕입니다. 예수님은 부자들에게 나눔이 참행복임을 가르칩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카 16,19-31)는 나눔을 모르는 부자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돈에 대한 탐닉을 경계하라
예수님은 돈을 싫어하신 게 아니라 돈에 대한 탐닉을 싫어했습니다. 부자를 미워하신 게 아니라 나눔을 모르는 부자를 미워했습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마태 19,24)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들어 예수님이 부자들을 미워한 게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해입니다. 돈을 벌어 부자된 것이 죄가 아니라 모은 돈을 나누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낙타와 바늘구멍? 전지전능한 하느님이신데 이게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하느님은 좁은 바늘구멍을 커다란 터널로 늘려 줄 수 있는 분입니다. 자캐오가 그 모범적 사례입니다(루카 19,1-10).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돈을 피하지 말고 부딪혀라. 그러나 돈에 사로잡히지 마라.”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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