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 증인’ 바티칸 오벨리스크와 한강변의 절두산
“수녀님, 혼자 이곳에 있으면 무서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넓은 전차 경기장에서 먹잇감을 향해 달려드는 굶주린 사자들 모습을 떠올리면….”
“네, 대사님. 오벨리스크는 저희 수도자들에게도 항상 각별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가운데 우뚝 서 있는 긴 돌기둥, 오벨리스크! 2000년 전 바티칸 언덕에는 공동묘지가 있었고, 언덕 밑에는 전차 경기장이 있었습니다. 오벨리스크는 전차 경기장 한가운데 서서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희대의 폭군 네로 황제!(재위 54~68년) 그의 그리스도인 박해는 이 전차 경기장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카발로비치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쿼바디스’(2001년 리메이크)는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 없는 잔인한 장면을 실감 나게 재현하고 있습니다.
죄인들(그리스도인들)이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노래를 부르며 무릎을 꿇고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뛰쳐나온 굶주린 사자들이 이들을 마구잡이로 물어 뜯어먹습니다. 사자 한 마리가 엄마 품에 있던 갓난아기를 입에 넣습니다. 젖먹이의 비명이 귀를 찢습니다.
거룩한 순교를 지켜보다
네로는 흐뭇한 표정을 짓습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위대한’ 로마 시민들은 네로의 비위를 맞춰주기라도 하듯 환호합니다. 이른바 로마의 맹수형(猛獸刑)입니다. 오벨리스크는 이 잔인한 맹수형, 이 거룩한 순교를 말없이 지켜본 ‘목격 증인’입니다.
바티칸의 오벨리스크가 여느 오벨리스크와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벨리스크는 원래 지금의 자리에서 11시 방향으로 150m 지점에 있었으나, 식스토 5세 교황이 1586년 베드로 광장 한가운데로 옮겼습니다.
오벨리스크는 그때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광장을 오가는 순례자들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교황청은 성탄절 때마다 베들레헴의 마구간과 구유를 오벨리스크 앞에 설치해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합니다.
바티칸을 찾는 순례자들에게는 만남의 장소로 안성맞춤이지요.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고, 사방 천지에 볼 것이 널려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람을 기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손님을 만날 때 오벨리스크를 자주 이용합니다. 때로는 손님을 기다리며 깊은 상념에 잠기곤 합니다.
순교란 무엇일까. 하나밖에 없는 귀중한 목숨인데, 많은 구경꾼 앞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인데, 신앙의 선조들은 왜 순교를 마다치 않았을까.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35~110년)만큼 순교의 의미를 절실하게 가르쳐 주신 분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안티오키아 교회의 주교로 계시던 성인은 트라야누스 황제(재위 98~117년)로부터 맹수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로마 교회는 성인이 로마로 압송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구명운동을 펼쳤습니다. 성인은 이에 대해 구명운동을 하지 말라고 간곡하게 만류하는 편지를 로마 교회에 보냈습니다.
“맹수의 먹이가 되도록 나를 내버려 두십시오. 맹수가 나의 무덤이 되게 해주십시오. 나는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께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하느님의 밀입니다. 나는 맹수의 이빨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깨끗한 빵이 될 것입니다.”
성인은 자신의 순교를 성체의 신비와 연결시켰습니다. 교황청은 순교를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스승을 본받고 피를 흘려 스승과 동화되는 순교는 교회에서 최상의 은혜로, 또 사랑의 최고 증거로 여겨진다.” (「교회헌장」 42항) 순교는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의미합니다. 완덕의 극치입니다.
참수형의 현장 절두산
바티칸의 오벨리스크를 보면, 한강변 양화진의 절두산 순교성지가 떠오릅니다.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 절두산(切頭山)! 본래 이름은 잠두봉이었으나 1866년 병인박해 때 이곳에서 수백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머리가 잘려나가는 집단 처형을 당한 후 붙여진 이름입니다.
잘린 머리가 절두산 바위 너머 한강으로 던져졌습니다. 절두산의 암갈색 바위는 피비린내 나는 참수형의 현장을 말없이 지켜본 ‘목격 증인’입니다.
한국 교회는 해마다 9월을 순교자 성월로 지내면서, 한반도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순교자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삶을 본받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9월은 우리나라의 순교 성인 103위와 순교 복자 124위 등 수많은 순교자의 굳센 믿음을 본받고자 다짐하는 때입니다.
이백만(요셉, 주교황청 한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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