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베엘제불 논쟁입니다.
"저자는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루카 11,15)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 주시자 몇 사람이 수근댑니다. 이미 예수님은 여러 지역에서 마귀의 힘에 묶여 있던 이들을 구해 주셨지요. 지금 이 놀라운 현장을 목격한 이들 중에는 하느님의 권능을 찬양하는 이들도 있지만, 반면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의 힘이라 곡해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리하여 그 사람의 끝은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루카 11,26)
악이 악을 쫓아내면, 나간 악은 제가 내키는 대로 다시 쉽게 되돌아올 수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그들의 비난처럼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라면, 그 사람의 존재는 악끼리의 각축장일 뿐, 그 구마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마귀가 마귀를 밀어낸다고 그 사람이 창조 때의 온전한 모습을 회복할 수는 없으니까요. 새로운 악이 그를 점령해 그의 상태는 더 악화될 뿐입니다.
그런데 악은 선으로만 물리칠 수 있습니다. 악끼리는 서로 야합하고 가중시킬 뿐입니다. 악을 물리치실 수 있는 분은 선 자체이신 분, 하느님 아버지십니다. 그분께서 예수님을 파견하셔서 당신 이름으로 고통에 신음하는 당신 백성을 구원하게 하신 것이지요.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예수님의 기적을 영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이들은 하느님의 현존을 감지하기에 기쁘고 감사합니다. 예언서에 기록된 메시아의 도래와 하느님 나라의 현존을 목도하고 하느님을 찬양하기 바쁘지요.
똑같은 표징 앞에서 이렇듯 사람들의 생각이 갈립니다. 누구는 하느님을 떠올리고 누구는 베엘제불을 떠올리지요.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믿음입니다. 예수님에게서 하느님의 얼굴을 발견하는 이들은 하느님 나라 안에 있습니다. 반면 그분에게서 베엘제불을 떠올리는 이들은 두려움과 혐오, 반감의 그늘에 스스로를 가둘 뿐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율법과 믿음을 선명히 대비시킵니다.
"율법은 믿음과는 관련이 없습니다."(갈라 3,12)
율법주의 사회에 던지는 매우 대담한 선언입니다. 율법을 목숨처럼 지켜도 얻을지 말지 한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얻는다고 하니 가히 혁명적이고 기가 막힌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사도를 가장 고민에 빠뜨리는 부류는 여전히 율법을 고수하는 정통 유다인들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새로운 길에 들어섰음에도 율법과 믿음 사이를 갈팡질팡하며 자의적 선택과 절충으로 믿음의 가치를 희석시키는 양다리꾼들일 것 같습니다.
"율법서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한결같이 실천하지 않는 자는 모두 저주를 받는다."(신명 27,26 참조; 갈라 3,10)
인간은 한계성을 지닌 존재라 아무리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고자 해도 복잡한 세상사 안에서 숨 쉬고 관계 맺고 일하고 살아가면서 모든 조항을 다 완벽히 지켜내기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울 겁니다. 그런 집착이 오히려 사람을 긴장시키고 온기 없는 냉혈한으로 만들 뿐이지요.
율법에 대한 지식과 행위가 곧 믿음이 아닙니다. 신학과 교리에 대한 지식이 반드시 신앙이나 사랑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과 같은 이치지요.
"(주님은) 언제나 당신 계약을 기억하시네."(화답송)
시편 저자는 주님께서 언제나 당신 계약을 기억하신다고 노래합니다. 계약이 그분의 앎에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잊거나 놓칠 수 있어도 그분은 당신의 말씀 앞에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분께 계약의 책인 율법을 들이대고 짚어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그분 안에 있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계심을 믿는 이들은 구원을 살아갑니다. 믿음이 구원을 부릅니다.
사랑하는 벗님! 벗님은 무엇을 믿나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랑의 기적들 앞에서 누구의 얼굴을 보시는지요? 주님입니까, 아니면 베엘제불입니까? 주님을 믿는 이들은 하늘 나라의 현존을 누릴 것이고 어둠을 믿는 이들은 그 어둠에 묶일 것입니다. 우리는 믿는 바를 누리고, 향유하고, 소유할 것입니다. 믿는 대로 될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얼굴을 뵈옵시길 축원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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