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을 지척에 둔 오늘 미사의 말씀은 우리를 준비시키고 있습니다.
"이웃과 친척들은 주님께서 엘리사벳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다는 것을 듣고, 그와 함께 기뻐하였다."(루카 1,58)
오랜 시간 자녀없이 살아온 엘리사벳의 고통을 아는 이들은 모두 이 신비하고 복된 출산을 자기 일처럼 기뻐합니다. 엘리사벳이 요한을 해산한 뒤 여드레째 되는 할례식 날, 명명식도 함께 이루어지는 그 순간에 그들도 함께하지요.
"안 됩니다. 요한이라고 불러야 합니다."(루카 1,60)
이웃과 친척들은 당시 관습에 따라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기를 부르려 합니다. 이에 산모가 이를 강력히 거부하지요. 부부는 천사에게 들었던 모든 것을 그대로 지키고자 합니다. 이름에 깃든 소명의 무게를 알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주님께서 계획하신 일들이 그대로 다 이루어지도록 협력합니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하느님을 찬미하였다."(루카 1,64)
아기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이름이 부여되자 즈카르야는 열 달 동안 닫혔던 입이 열립니다. 그렇게 혀가 풀린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느님 찬미입니다. 열 달 동안 마음 안에서 이루어진 참회와 간구가 세상을 향한 축복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루카 1,66)
아기의 잉태에서 시작해 할례식의 사건까지 보고 들은 이웃들은 두려움과 놀라움으로 이렇게 묻습니다. 복음사가는 이 물음을 통해 세레자 요한의 소명에로 우리의 시선을 돌립니다.
제1독서는 주님의 사자에 대해 언급합니다.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말라 3,1)
요한은 주님에 앞서 세상에 온 주님의 사자입니다. 그분이 오실 길을 닦고 백성을 준비시키는 것이 그의 소명이지요. 그는 백성을 정화하고 정련하여 주님께 맞갖는 존재로 거듭나도록 돕습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으리라."(영성체송)
이제 주님께서 우리 문 앞에, 인류의 문 앞에 서셨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 요한의 탄생에 이어 말씀은 우리의 시선이 주님께로 옮겨지도록 돕고 있습니다. 성탄을 앞둔 우리에게 회개와 충실한 사랑을 촉구했던 요한의 목소리가 바로 이 순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곧 하느님께서 가려진 신비의 장막을 여실 것입니다. 마리아께서 태를 열어 성자를 세상에 내어주실 것이고요. 그와 더불어 우리도 이 놀라운 은총의 문 앞에 서 계신 주님께 문을 열어드려야 합니다. 성탄은 이렇듯 하느님 한 분의 독무대가 아니라, 온 인류가 주님과 함께 엮어가는 거대한 군무의 장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주님께서 우리에게 오시기 위해 설레며 채비를 차리시듯, 우리도 설렘과 기쁨으로 영육의 준비를 다하는, 기다림의 정점의 날 되시길 기원합니다. 답답하고 막막한 현실이지만 주님은 세상 어둠에 빛이 되어 주시려 한달음에 오십니다. 성탄의 의미가 더욱 확연히 드러나는 올해의 축제를 저마다 영과 진리 안에서 맞이하시길 축원합니다. 잘 견뎌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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