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하고 자선 베풀며 주님 부활 준비하는 은총의 시간
▲ 사순 시기는 하느님의 구원 신비를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주님의 파스카를 준비하는 때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재의 수요일’부터 ‘성주간 성토요일’까지를 사순 시기로 지내고 있다. 가톨릭 신자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단식과 금육, 기도와 희생을 실천한다. 가톨릭평화신문 DB |
사순 시기이다. 지난해 세계 교회는 코로나19로 사순 시기 동안 ‘성찬례 단식’을 해야만 했다. 코로나19 상황이 그나마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 올해는 신자들과 함께하는 미사를 중단해야 하는 극한 상황까지 가지는 않겠으나 여전히 간소화된 예식으로 전례가 거행될 전망이다.
지난해 교회 스스로 보속의 행위로 결정한 성찬례 단식은 신자들에게는 성사 생활의 중요성과 치유자이신 하느님께로 향한 인류의 회심이 얼마나 절박한가를 깨닫게 해 주었다. 올해 사순 시기는 세상의 ‘모든 형제들’과 연대해 이 깨달음을 실현하는 때가 되길 희망한다.
사순 시기를 맞아 사순 시기 의미와 전례를 정리했다.
사순 시기
사순 시기는 주님의 수난과 희생을 기념하는 시기이다. 또 파스카 신비(주님 부활)를 준비하는 때이다. 주님의 수난은 단순히 주님께서 당하신 고통 자체로서가 아니라 영광스러운 부활과 직접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사순(四旬)은 ‘40일’을 뜻하는 라틴말 ‘Quadragesima’(콰드라제시마)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성경에서 ‘40’은 하느님을 만나기 전 거치는 정화와 준비의 기간이다. 교회도 이 성경의 전통을 고스란히 받아들여 40일간 기도와 절제, 희생을 통해 주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것이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재의 수요일’부터 ‘성주간 성토요일’까지를 사순 시기로 지내고 있다. 이 기간에서 6번의 주일을 지내는데 주일을 뺀 날 수가 정확히 40일이다. 주일을 사순 시기에 포함하지 않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쁜 날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전례주년의 정점으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시는 ‘파스카 성삼일’이 사순 시기와 구분된다는 점이다. 파스카 성삼일은 주님 만찬 성목요일부터 주님 수난 성금요일, 성토요일, 파스카 성야와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말한다. 비오 12세 교황은 1955년 전례 개혁을 통해 파스카 성삼일의 본뜻을 되살려 사순 시기를 ‘재의 수요일’부터 ‘주님 만찬 성목요일 전까지’로 정했다. 이에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개혁과 1969년 전례력 개정을 통해 사순 시기와 파스카 성삼일을 구분하고 있다.
하지만 사순 시기가 파스카 성삼일과 완전히 분리된 것은 아니다. 사순 시기는 성주간과 파스카 성삼일을 위한 준비 기간이자 연결점이며, 파스카 성삼일은 사순 시기의 마지막 절정과 주님 부활 대축일이 연결된 지점이기 때문이다.
사순 시기 주요 전례
사순 시기는 하느님의 구원 신비를 총체적으로 드러내는 주님의 파스카를 준비하는 때다. 그래서 교회는 사순 시기 동안 대축일을 제외한 모든 미사 중에 부활의 기쁨을 노래하는 대표적인 환호인 ‘대영광송’과 ‘알렐루야’를 하지 않는다. 제의 색도 통회와 보속을 상징하는 ‘자색’(보라)으로 바뀐다. 제단 꽃장식도 하지 않는다.
△재의 수요일
‘재의 수요일’은 사순 시기를 시작하는 날로 이날 미사 중에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해 이마에 바르거나 머리에 얹는 예식을 행하는 데서 이름이 생겨났다.
성경에서 ‘재와 먼지’는 속죄와 참회의 표지이다. 또 죽음과 재앙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회와 슬픔을 드러낼 때 머리에 재를 뒤집어쓰고 자루 옷을 찢었다. 이 참회 예식(2사무 13,19; 에스 4,1)을 교회가 받아들인 것이다.
재의 수요일에 사용하는 재는 일반적으로 지난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나눠 받았던 성지(聖枝)를 거두어 태워 남은 재이다. 사제는 이 재를 축복한 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명심하십시오”(창세 3,19) 또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마르 1,15)라고 말하고 회중의 머리에 재를 얹거나 이마에 재를 바른다.
재를 얹거나 바르는 예식은 인간은 결코 죽을 수밖에 없는 허무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현세의 삶에서 죄의 나락으로 떨어질 때도 있지만, 인간의 삶은 궁극적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준비를 하는 것임을 일깨워주는 게 재의 예식의 본뜻이다. 따라서 재의 예식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회개하고 하느님께 향한 삶을 충실히 살아가라고 권고하고 있다.
올해 재의 수요일에 거행되는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은 코로나19 감염증 대유행 탓에 간소화된다.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감염병 예방 차원에서 당일 주례 사제가 신자들의 머리나 이마에 재를 얹을 때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또는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라고 하는 권고를 회중을 대상으로 한 번만 하고, 접촉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머리에 재를 얹을 것을 권장했다.
△사순 시기 주일 전례
사순 시기 주일은 축일과 대축일에 우선 한다. 사순 주일과 겹치는 대축일은 토요일에 미리 거행된다. 특히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파스카 성야 미사까지의 성주간은 전례주년의 1순위라 할 만큼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사순 시기 주일 전례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볼 수 있다. 하느님 자녀로 태어난 ‘세례에 대한 회상과 준비’ 그리고 ‘참회와 보속’이다. 사순 제1·2·6주일 미사 독서 주제는 해마다 모두 같다. 사순 시기 각 해의 고유한 주제를 보려면 사순 제3·4·5주일의 독서들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된다. 사순 시기 제1·2주일에는 주님의 유혹에 관한 이야기와 주님의 거룩한 변모에 대한 복음이 봉독된다. 사순 제3·4·5주일은 가해의 복음으로 사마리아 여인,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 라자로의 부활 사건을, 나해에는 요한복음에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장차 영광스럽게 되시리라는 말씀을, 다해에는 회개를 촉구하는 루카 복음을 봉독한다.
사순 시기 생활
교회는 전통적으로 주님 부활 대축일을 잘 준비하기 위해 사순 시기 동안 회개와 보속, 기도의 삶을 살도록 권고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의미에서 ‘십자가의 길’ 기도를 자주 바치고,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단식과 금육, 기도와 희생을 실천한다.
하지만 교회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가르친다. 진정한 회개와 보속의 삶은 개인적이고 내적인 절제와 희생뿐 아니라 외적인 실천이 동반되어야 한다. 절제와 절약을 통해 모은 결실을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나누는 자선이 뒤따라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사순 시기 동안 “서로 용서하고 기도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 쉴 곳을 찾아 주는 등 자비를 실천하자”고 강조하면서 “회개하기 매우 좋은 이 사순 시기를 헛되이 보내지 말자”고 당부한 바 있다.
사순 시기에는 판공 성사를 통해 마음을 깨끗이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맞이할 준비를 한다.
△ 단식과 기도, 자선
단식, 곧 금식과 금육재는 단순히 먹고 마실 것을 절제하라는 고행의 의미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동시에 다른 이들의 곤경에 관심을 두도록 촉구한다. 따라서 금식과 금육은 세속의 유혹에 휘둘리지 않고 그리스도께 나아감과 함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꺼운 나눔을 실천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가톨릭 신자는 의무적으로 재의 수요일과 주님께서 수난 하시고 돌아가신 성 금요일에 금육재와 금식재를 지켜야 한다. 금육재는 만 14세부터 모든 신자가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하며, 성인이 된 모든 신자는 60세까지 한 끼를 단식하는 금식재를 지켜야 한다.(교회법 제1252조) 한국 교회에는 만 18세부터 만 60세 전까지 금식재를, 만 14세부터 금육재를 지키도록 규정하고 있다.(「사목지침서」 136조) 이외에도 사목자와 부모는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킬 의무가 없는 미성년자들도 참회 고행의 의미를 깨닫도록 보살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교회는 전통적으로 그리스도인 삶의 첫 자리에 ‘기도와 자선’을 두었다. 따라서 기도와 자선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행위이다. 단식이 영성 생활을 위해 악습을 없애는 약이라면 기도는 회개의 표시이고, 자선은 하느님 은총의 증거이다.
리길재 기자(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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