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예수에게 모유 수유하는 어머니 마리아가 반겨주는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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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 앞 마리아 광장. |
몇 년 전, 한 배낭 여행자가 내게 물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니 ‘로마 젊음의 거리’라고 되어 있어서 트라스테베레를 찾았는데 젊음은커녕 한산한 거리에 오래된 성당 하나가 있었다고. 왜 거기가 젊음의 거리냐고 굉장히 실망하는 말투였다.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당신이 평일 낮에 가서 그런 거라고.”
이렇게 젊음을 대표하는 로마의 트라스테베레 지역은 저녁이 되면 우리나라의 홍대 입구나 신촌과 비슷한 분위기를 낸다. 좁은 골목골목에는 맛집과 선술집이 즐비하고 그곳에는 로마의 젊음이 있다. 그 젊음을 따뜻하게 안아 주는 듯한 어머니의 모습으로 로마의 오랜 역사와 함께하는 성당이 바로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다.
최초로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당
성당이 위치한 지명 ‘Trastevere’는 라틴어 ‘Trans Tiberium’ 즉 ‘테베레 강 건너편’이란 말에서 유래했다. 이 성당은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가운데 하나로 초기 신자들이 모여 미사를 봉헌했던 공적인 교회 1호로 여겨지고 있다. 성당 내 비문에서도 이 성당의 역사를 알 수 있듯이 서방 교회에서 성모 마리아께 봉헌된 최초의 성당이라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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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성당 제단 |
그리스도의 탄생을 예언한 기름의 샘
2000여 년 전 로마 시대의 이곳은 원래 퇴역한 군인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됐다. 그 시설을 타베르나 메리토리아(Taverna Meritoria)라고 불렀으며, 그들이 사용했던 수도를 이용해 만든 로마 최초의 분수였다고 한다. 이 분수 터를 1692년 건축가 카를로 폰타나가 지금의 모습으로 조성해놓았다.
또한 기원전 38년 온종일 기름이 솟아 테베레 강까지 흘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기름 부은 자는 곧 그리스도인 예수님을 의미하기 때문에 예수님 탄생 이전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하는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름이 솟은 자리인 성당 중앙 제대 하단에는 ‘Fons Olei(기름의 샘)’이라고 쓰여 있고 바닥에는 이 사건을 기록한 비문을 볼 수 있다. 이곳에 성 갈리스토 1세 교황(재위 217~222)이 최초의 교회를 세웠고 그 후 340년 성 율리오 1세 교황(재위 337~352)이 재건하기에 이른다.
이렇게 오래된 교회의 기초 위에 1140~1143년 인노첸시오 2세 교황(재위 1130~1143)에 의해 대대적인 복원과 재건이 이루어지며 그 모습이 현재 성당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업적을 기억하기 위해 성당 내부의 앱스(apse, 반원형 내부 공간)에서 한번, 그리고 성당 내부에 있는 인노첸시오 2세의 무덤에서 한 번 더 그를 기억하고 있다.
그 후 16~17세기에 복원과 재건이 이루어지고 1702년에는 성당 현관이 추가되면서 오늘날의 모습이 갖춰졌다. 이 현관 위로는 성 갈리스토 1세 교황, 성 율리오 1세 교황, 성 고르넬리오, 성 칼레포디오 등 4개의 동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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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라스테베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정면. 수유하는 마리아와 열 처녀 도상이 새겨져 있다. |
성당 정면의 ‘수유하는 성모 마리아’와 열 처녀 도상
성모 마리아 광장에서 성당을 바라보면 눈에 띄는 도상들이 있다. 성당 정면의 위쪽 장식은 거의 지워져 식별할 수 없지만, 흐릿하게나마 19세기의 프레스코화가 남아 있는 것이 보인다.
자세히 살펴보면 네 복음서와 일곱 개의 촛불 사이에 계신 예수님과 천사들의 형태가 보인다. 하지만 아직도 바로 식별이 가능한 부분은 페디먼트 맨 위쪽 부분인데 여기에는 하느님의 손이 그려져 있다. 이 부분은 그림자가 지는 부분이기 때문에 남았을 것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의 로마에서 생명력이 짧은 프레스코화를 외관 장식으로 사용한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하지만 이 프레스코화 하단 부분의 모자이크는 1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존 상태가 매우 훌륭하다. 내용을 살펴보면 중앙에 계신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께 모유를 수유하고 계시고 양쪽으로 5명씩 총 10명의 처녀가 등불을 가지고 성모님을 향해 가는 모습이다.
이 처녀들은 마태오 복음(25,1-13)의 비유에 나오는 슬기로운 처녀들과 어리석은 처녀들이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성모님 아래 양쪽으로 두 명의 남자가 무릎을 꿇은 모습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들은 이 성당의 후원자라고 한다. 이 모자이크화에서 주의 깊게 볼 도상은 ‘마리아 락탄스(Maria Lactans)’ 또는 ‘마돈나 락탄스(Madonna Lactans)’라 불리는 아기 예수에게 모유를 수유하는 성모님 도상이다.
‘마리아 락탄스’의 유래와 번성 그리고 쇠퇴
이 도상의 유래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등의 대지의 여신 신앙에서 기원한다. 성모님을 ‘테오토코스(하느님의 어머니)’라고 선포한 에페소 공의회(431년) 이후 최초로 초기 교회 미술에 나타나게 된다. 성모님이 예수님을 양육하는 성스러운 존재임을 나타내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확산하는 도상이 바로 이 마리아 락탄스, 곧 수유하는 성모님 도상이다. 아기 예수의 인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흔히들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와 연결해서 생각하기 쉽다.
한 번은 이 성당을 순례객들과 함께 순례 중에 다른 팀 가이드가 르네상스와 연결해서 설명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아기 예수의 인성을 강조하는 도상은 누드의 아기 예수나 중세 때 그려졌던 근엄한 아기 예수가 아닌 말 그대로 아기처럼 그려지는 게 큰 특징이다.
이 마리아 락탄스는 르네상스 시기의 이탈리아에서는 정작 그려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16세기 중반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성직자들은 종교적 주제에 대한 과도한 노출을 억제했고 이런 경향이 마리아 락탄스 도상에도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는 특히 13~14세기 피렌체와 시에나를 중심으로 토스카나 지방에서 마리아 락탄스 도상이 크게 유행하게 되는데 이것은 당시 페스트로 인한 기근과 공포심 그리고 넘쳐나던 고아의 양육 문제 등 사회적인 문제들과 관련이 깊다. 이 수유하는 마리아는 육화의 신비에 대한 신학적 도상의 출발로 어머니로서의 헌신적인 노력의 상징이기도 하며 아기 예수에게 생명을 부여하는 동시에 구원을 간청하는 상징이 된다.
특히 페스트의 피해가 심했던 토스카나 지방은 페스트가 사라지고 사회가 안정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되는 도상이다. 마리아 락탄스 도상만이 유행한 것이 아니라 이 시기의 피렌체에서 건축된 5개의 성당이 모두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되는데 이는 극심한 공포의 시절에 어머니에게 의탁하는 당시의 신심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알게 한다.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성당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성당을 돋보이게 하는 내부 구조와 도상들, 그중에서도 성모대관 도상을 살펴본다.
윤종식 신부(가톨릭대학교 전례학 교수)
박원희(사라, 이탈리아 공인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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