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한 날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면서도 하느님과 이웃 사랑 몸소 실천
우리 잘못과 죄 용서해 주시며 당신 자녀로 받아주시는 주님
주님 부활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분 삶 바라보고 본받아야
이남규 ‘예수님의 일생’, 61x450, Antique glass, 1989년, 서울 논현동성당.
시각 예술로 표현된 성화는 성경의 문자적 기록을 구체화하고 형상화함으로써 성경을 읽으며 받을 수 있는 막연하고 불분명한 이해와 감동을 뇌리에 선명하게 전달한다. 신자들은 부활에 담긴 의미를 묵상하는 가운데 부활을 그린 한 편의 성화를 감상한다면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는 기쁨은 배가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해설로 고(故) 이남규(루카) 화백의 부활 성화를 소개한다.
주님 부활 대축일의 아침이 밝았다. 참으로 아름답고 거룩한 날, 주변은 생명의 물결로 출렁거린다. 겨우내 앙상했던 나뭇가지에는 형형색색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주님을 찬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수님은 부활을 통해서 당신의 삶이 참되다는 것을 알려 주시며 천국 문을 활짝 열어 주셨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몸소 실천하다가 돌아가신 예수님. 그러나 십자가 위의 처절한 죽음으로 그분의 삶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예수님은 오늘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시어 언제나,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머무는 주님이 되셨다. 사랑은 죽음보다도 강함을 주님 부활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이 예수 성탄이라면, 그분께서 다시 본래 하느님의 영광에 들어가신 사건이 부활이다.
세상의 많은 예술가들은 예수님의 일생, 탄생과 죽음을 다양한 작품으로 표현하며 사람들의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었다. 나아가 그들은 공기나 바람처럼 보이지 않게 계시는 부활하신 주님도 표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그러나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현존하시는 주님을 형상으로 묘사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신앙심이 깊은 화가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작품에 담으려 노력했다. 우리나라 유리화의 선구자 고(故) 이남규(루카, 1931~1993) 화가도 그중에 한 사람이다. 그는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을 비롯한 전국의 여러 성당과 수도원에 아름다운 유리화를 장식해 사람들에게 신앙의 세계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
서울 논현동성당에서 이남규 작가의 아름다운 유리화를 만날 수 있다. 그는 1987년에 ‘천지창조’, ‘빛’, ‘성모님의 일생’, ‘예수님의 일생’을 추상과 구상의 유리화로 제작했다.
그 가운데는 수직의 기다란 창문에 위로부터 ‘아기 예수의 탄생’,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부활하신 예수’ 모습이 담긴 작품이 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은 사랑의 길을 걷다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부활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이 되셨다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부활하신 예수’ 유리화에서 그분은 영원한 생명의 빛을 상징하는 흰옷을 입고 양손과 발을 보여 주신다. 그곳에 새겨진 못 자국은 부활하신 주님이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던 예수님과 똑같은 분이라는 것을 말한다.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를 향해서 조용히 오신다.
사람들이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탓하지 않고 다가와 감싸주신다. 우리의 잘못과 죄를 거듭거듭 용서해 주시며 새롭게 당신의 자녀로 받아주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다.
화창한 봄날에 핀 꽃들은 혹독한 겨울을 견디며 이긴 식물의 아름다운 부활처럼 보인다. 어디 흐드러진 꽃뿐이랴. 온 천지가 주님의 부활을 함께 기뻐하며 생명의 물결로 출렁거린다. 십자가의 죽음을 물리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도 부활의 삶을 가꾸도록 초대하신다. 주님의 부활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분께서 가꾸셨던 삶을 바라보고 본받는 것이다.
온갖 고난과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면서도 경천애인(敬天愛人)을 온몸으로 실천하신 예수님을 닮도록 초대받은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세상에 사는 동안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서야 어찌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 품에 안길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하는 크고 작은 사랑은 부활하신 주님의 큰 사랑에 이를 수 있는 가장 좋으면서도 유일한 길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8)
정웅모 신부 (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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