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가장 큰 죄는 하느님을 배신하는 것
제9 지옥의 마지막 구역 ‘주데카’
영원한 침묵으로 단죄 받은 악마 대왕
죄인들을 물고 씹어 으깨며 고통 부여
단테, 우정만은 배신 않겠다고 다짐
베키에타 ‘악마 대왕과의 만남’(1445년경).
제9 지옥 제1구역 카이나에는 혈연을 배신한 자들이, 제2구역 안테노라에는 조국과 당파를 배신한 자들이 있었다. 제3구역인 톨로메아에는 친구와 손님을 배신한 자들이 등장한다.
전자보다 후자의 죄가 더 큰 것은, 가족과 나라는 자신이 선택할 수 없지만, 친구와 손님은 자신이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의 죄인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고, 후자의 죄인들은 모두 고개를 곧추 세우고 있다.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눈물이 눈에서 직접 떨어지나, 고개를 세우고 있으면 눈구멍에 눈물이 고여 얼어버린다.
그곳에는 울음 자체가 울음을 허용하지
않았으니 눈 위에서 가로막힌 고통이
안으로 향해 더욱 큰 고통이 되었다.
(지옥 33, 94-96)
그러므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편이 덜 고통스럽다. 톨로메아라는 명칭은 유다 지방을 차지하려고 장인과 그 아들들을 불러 성대한 잔치를 베풀고 술에 취하게 한 뒤 살해한 프톨레마이오스라는 자의 이름에서 나왔다.(1마카 16,11-17) 한 가지 끔찍한 사실이 있다.
그것은 배신자들의 영혼이 죽기 전에 이곳 톨로메아로 먼저 떨어져 살아서 지옥을 맛본다는 점이다. 대신 지상에 남아 있는 좀비 같은 육체 안으로는 악마가 들어가 ‘육화한 악마’가 된다.
내가 그랬듯이 영혼이 배신하게 되면
곧바로 그 육신을 악마가 빼앗아서
그 이후로 남아있는 시간이 모두
흐르는 동안 줄곧 지배하게 되지요.
(지옥 33, 129-132)
예수를 배신한 유다의 경우도 그러했다. ‘유다가 그 빵을 받아먹자마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요한 13,27) 제9 지옥의 마지막 구역은 지옥의 맨 밑바닥이다. 배신자 가리옷 사람 유다의 이름을 따 ‘주데카’라고 불리며 은인을 배신한 자들이 거기에 얼어붙어 있다.
그 중앙에는 세 개의 얼굴을 지닌 악마 대왕이 우뚝 서서 여섯 개의 날개로 증오의 차가운 바람을 불어 올려 코키토스를 온통 얼어붙게 하였다.
악마 대왕의 여섯 개의 눈은 눈물을 흘렸고, 또 여섯 개의 귀를 가지고 있기에 666이라는 숫자로 불렸다. 각각의 입은 죄인을 한 사람씩 물고 씹어 으깨며 세 놈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 있었다. 그의 식인성(食人性)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 성체성사와는 정반대임을 보여준다.
또한 악마 대왕은 영원한 침묵으로 단죄받았다. 이 역시 사람이 되신 말씀(Verbum)과 대척을 이룬다. 제34곡에 나오는 그의 이름은 루치페로(89행), 사탄, 디스(20행), 마귀 우두머리 베엘제불(127행)(2열왕 1,2;마태 12,24), 고통스러운 왕국의 황제(28행), 세상을 갉아먹는 사악한 벌레(108행) 등이다.
악마 대왕의 한가운데 빨간 얼굴에는 유다의 상체가 입안에서 씹히고 있다. 유다는 제19곡에 나오는 성직 매매자들처럼 머리는 입 안에 있고, 다리가 밖으로 나와 있다.
그는 인류의 은인인 그리스도(교회)의 배신자이다. 오른쪽 노란 얼굴에는 카이사르(제국)의 배신자인 카시우스, 그리고 왼쪽 검은 얼굴에는 브루투스가 물려있다.
여기서 빨강은 성령의 사랑과 반대되는 증오, 노랑은 성부의 권능과 반대되는 무능, 검정은 성자의 지혜와 반대되는 무지를 상징한다.
이 세 배신자는 인류의 두 영웅 즉 지상의 새 질서를 확립한 카이사르와 천상의 새 질서를 확립한 그리스도를 배신한 것이다.
사람이 죄를 피하려면 먼저 죄의 두려움을 알아야 한다. 지옥의 구조는 가장 무서운 죄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사람이 짓는 죄 가운데 가장 큰 죄는 하느님을 배신하는 것이다.
프랜시스 톰슨이 「하늘의 사냥개」에서 노래하였듯이, 하느님을 배신하는 자 모든 것이 그를 배신할 것이다. 이마미치는 「단테 신곡 강의」에서, 지옥 편의 중심사상은 배신이 아니라 오히려 ‘우정(友情)’이라고 말한다.
제34곡에는 바로 이 우정의 파괴자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단테는 여기서 절대로 우정만은 배신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의를 다지고 있다. 이제 돌과 얼음이 된 인간 내면의 밑바닥까지 견뎌낸 단테(Durante)는 밖으로 나와 별들을 올려다본다.
마침내 나는 동그란 틈 사이로 하늘이
운반하는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고,
우리는 밖으로 나와 별들을 보았다.
(지옥 34, 136-139)
「신곡」의 각 편은 모두 ‘별들(stelle)’이라는 말로 마무리된다. 이 별들은 이제부터 상승하는 여정의 길을 가리키고 있다. 그리고 독자들이 각자의 인생길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살아가기를 권고한다.
김산춘 신부 (예수회·서강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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