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구분과 차별이 아니라 포용과 통합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알리십니다.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 백성과 이방인이 언급됩니다.
"내 고향, 내 친족에게 가서 내 아들 이사악의 아내가 될 여자를 데려오겠다고 하여라."(창세 24,4)
사라가 죽은 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에게 아내를 얻어주기 위해 자기가 떠나온 고향으로 종을 보냅니다. 당시 그들이 몸붙여 사는 가나안 땅의 여자가 아니라 동족의 딸을 통해 후손을 얻고자 했기 때문이지요.
아브라함이 이루게 될 민족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하느님 백성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선택은 단지 그 민족의 번영이나 안위만을 위한 특혜가 아니라,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느님 계획의 시작입니다. 하느님께서 다른 민족을 적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근간과 기틀이 형성되는 단계에서 하느님 백성이 자신의 정체성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라 볼 수 있을 겁니다. 결국 세상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을 통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더 이상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구분이 필요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 주신 사랑의 결속만 남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의인과 죄인이 언급됩니다. 민족이라는 하나의 틀이 완성된 후에는 민족 내부에서 또 다른 구분의 단초가 등장한 것이지요. 바로 율법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마태오라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마태 9,9)
식민지 이스라엘의 세리는 동포의 혈세를 착취해 정복국 로마의 배를 불려 주고 자신도 그 권력에 기생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방인과의 잦은 접촉과 동포에 대한 착취 때문에 늘 죄인이라 손가락질을 받는 이들이지요.
세관은 그런 세리들의 일터이고 그곳에 앉아 있던 마태오 역시 그들 중 하나였습니다. 그날 예수님은 그곳을 지나가시면서 짧은 찰나에 마태오 내면의 깃든 고뇌와 갈망, 가능성을 보십니다. 그리고 지체없이 그를 부르시지요. 그가 지금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고 어떤 평판을 받든 상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욱 그 자리에서 그를 부르신 겁니다.
예수님의 부르심에 마태오는 그대로 일어나 그분을 따라나섭니다. 이렇게 그는 육을 만족시키는 세리라는 직업을 떠나 영의 길로 주저없이 들어선 것이지요.
"당신네 스승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오?"(마태 9,11)
예수님의 제자단에 참여하게 된 마태오는 예수님을 모시고 동료들까지 불러 잔치를 베풉니다. 그런데 직업이 직업인만큼 마태오의 주변 사람들은 그와 비슷한 처지의 세리이고 죄인이었나 봅니다. 그러니 바리사이들 눈에 그 잔치는 세리와 죄인들의 불결하고 부정한 난장일 뿐이겠지요. 그들은 당장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항변합니다.
"사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 9,13)
예수님은 사람을 구분하지 않으십니다. 구분이 없으니 차별하지도 않으시지요. 예수님 눈에는 의인도 죄인도 한 아버지의 한 형제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가로막는 구분의 벽을 허물고 모두를 끌어안으십니다.
예수님께 의인은 이미 하느님 사람이니 살아온 그대로 주님 앞에 머무는 기특한 벗이고, 죄인은 새로운 부르심에 응답해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느님의 사람으로 변화될 기대되는 형제입니다. 서로를 손가락질하며 선을 긋고 차별하는 것은 주님의 방식이 아니지요.
하느님 백성의 기틀이 형성되던 때에는 순혈 민족과 이방인의 구분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온 세상의 주인이신 분이 구원의 지평을 이스라엘 담장을 넘어 온 세상으로 활짝 열어주신 뒤에는 오히려 구분이나 차별이 극복하고 넘어서야 할 구태이며 악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형제와 이웃 안에서 의인과 죄인을 가르던 율법의 문자적 잣대 역시 그 모두를 위해 희생하신 예수님을 통해 사랑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주님 앞에서 완전한 의인일 수 없고, 또 죄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에게 손가락질과 비방, 소외와 방치, 적대와 외면은
스스로를 주님과 관계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릴 뿐입니다.
율법은 이제 더이상 의인과 죄인을 구분하고 가르는 잣대가 아니라 모두를 포용하고 통합하는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율법의 정신인 사랑을 선포하고 실행하신 예수님 가르침의 골자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주님께서 죄인인 우리를 부르러 오셨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탁월한 지식이나 능력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의인이 되게 하시니 이 또한 감사합니다. 그러니 우리 또한 사람을 함부러 차별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죄인이고 또 의인인 우리를 통해 세상이 조금 더 포용적이고 관대하며 사랑 넘치는 그런 곳이 되기를 빌어 봅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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