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론 말 씀

2021년 7월 10일 연중 제14주간 토요일

dariaofs 2021. 7. 10. 06:06

오늘 미사의 말씀은 진정한 두려움을 이야기하십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태 10,28)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미움과 박해는 기정 사실이고 예견된 미래입니다. 스승이신 예수님을 베엘제불이라 손가락질했다면 그 제자들을 어떻게 대할지 불보듯 뻔하니까요.

그들은 그렇다 치고, 그렇다면 제자들은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까요? 인간적으로야 당연히 두렵고 불쾌하기까지 하겠지요. 아무리 선하고 진실하게 다가가도 상대가 곡해해서 반응하고 베엘제불 일당으로 몰아세운다면 답이 없을 때가 많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것이 예수님의 해답입니다. 왜냐하면 피조물로서 갖는 진정한 두려움은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경외심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껏해야 육적인 생명과 안위 정도를 좌지우지하는 존재가 진정한 경외심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제1독서에서 요셉이 형들에게 하는 말 안에 이 점이 잘 드러납니다.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창세 50,19)
야곱이 죽은 뒤 형들은 과거 요셉에게 저지른 잘못에 대해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유언이라며 요셉에게 용서를 구하고 스스로를 아우의 종이라 칭하지요. 이미 용서와 화해가 오간 일이었음에도 가해자의 영혼은 여전히 두려움에 빠져 있습니다.

요셉의 쿨한 답변에서 그의 깊은 신앙적 면모가 드러납니다. 그는 하느님만이 두려움의 대상이어야 함을 잘 알고 있지요. 비록 자기에게 못할 짓을 한 형들이어도, 그들이 꾸민 악을 선으로 바꾸신 하느님을 경외하는 이라면 함부로 앙갚음하지 않습니다. 갚으실 수 있는 분은 주님뿐이니까요.

형들은 요셉의 육적 생명에 해를 가했지만 영혼까지 해치지는 못했습니다. 만일 그가 스스로 버림받은 데 대한 상처와 분노에 사로잡혀 칼을 갈면서 제 영혼을 갉아먹었다면 사정이 달랐겠지만, 요셉은 어떤 고난과 시련 한가운데서도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순수하고 진실하게 영혼을 지켰습니다.

요셉은 '인간에게 당한 악을 하느님께서 선으로 바꾸어 주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반드시 이스라엘을 찾아오셔서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을 굳게 믿었습니다. 이야말로 하느님과 친밀하고 충실한 관계 안에 있는 영혼의 통찰일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마태 10,31)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십니다. 사람이나 이념, 제도, 형벌은 두려움이 대상이 되지 못하지요.

그런데 그분은 우리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하느님이십니다. 그리고 경험으로 아시겠지만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늘 약자가 됩니다. 사랑하기에 받아들여 주고 사랑하기에 믿어 주지요. 사랑하기에 져 주고 사랑하기에 내어 줍니다. 거창하게 신앙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는 가족과 이웃에게 본능적으로 그렇게 하면서 성장해 왔습니다.

순진무구한 아기처럼 주저없이 거침없이 하느님 아버지께 달려가 영혼을 던지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오직 한 분, 그분은 우리 앞에 늘 활짝 열린 "사랑"이십니다.

코로나19 대응 단계가 격상되어 다음주부터는 대면 미사가 어렵다고 합니다. 다시 영상을 통한 비대면 미사로나마 성체를 모시지 못하는 영혼의 허기를 달래야겠네요. 앞뒤 꽉 막힌 것 같은 힘겨운 상황이지만, 믿음과 인내로써 영혼의 아름다움을 간직하시길 기원합니다. 말씀과 함께 주님 안에 머물러 이 고통의 시기를 건너고 있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