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미사의 말씀은 "주인"이 어떤 존재인지 알려 주십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루카 6,2)
바리사이들이 묻습니다. 이번에는 안식일 논쟁입니다. 그런데 묻는 대상이 "당신의 제자들은~~?"이 아니라 "당신들은~~?"입니다. 이 경우에는 제자들과 예수님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뭉뚱그려 덫을 놓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사실 무언가 알고 싶어 묻는 질문이 아니라 추궁과 공격의 의미가 더 큽니다. 바리사이들은 밀 이삭을 뜯어서 손으로 비벼 먹는 제자들의 행위를 추수에 준하는 노동으로 간주하고 안식일 법을 들이댑니다. 어떤 사실을 자기들의 의도에 맞춰 과장하고 왜곡하고 곡해하는 겁니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루카 6,5)
예수님은 다윗이 했던 일을 예로 들어 그것이 하느님의 일이거나 인간의 기본적인 생명 유지를 위해서라면 이해와 사랑이 먼저임을 밝히십니다. 율법을 함부로 어겨도 무방한 사람은 없지만, 굳이 율법을 끄집어낼 필요가 없는 상황도 있는 법입니다.
"안식일의 주인"
안식일은 모든 이에게 평등히 쉼을 제공하는 날입니다. 하느님은 안식일을 통해 종들과 이방인, 짐승, 땅에게까지도 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셨지요. 안식일법은 유한함을 운명처럼 안고 사는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증진하고 더욱 풍요롭게 해 주는 필수적인 회복 장치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안식일의 "주인"이십니다. 계급 사회에서 "주인"은 자기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타인을 착취하고 목숨까지 사유화하기도 했지만, 그건 하느님의 시선에서 가장 주인답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혹여 "주인"의 권리를 그렇게 쓰면서 그걸 당연히 여기는 이가 있다면, 그는 하느님을 주인으로 섬기지 않고 악을 주인으로 섬기고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하느님의 "주인다움"은 어떤 의미일지 제1독서에 잘 드러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로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이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콜로 1,22)
하느님은 "죽음"으로 주인의 최대 권리를 행사하셨습니다. 하느님은 사랑 때문에 목숨을 던지는 주인이지, 타인의 죽음을 양분 삼아 부와 권력을 쌓는 주인이 아닙니다.
원죄에 물들어 악의 어둠에 짓눌린 인류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로 다시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모습, 즉 하느님의 모상성을 온전히 회복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주인이심을 말씀과 행위로 당당히 밝히십니다. 주인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종의 종이니까요. 그분 생애가 시작부터 마침까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 일행의 범법을 찾아내려 핏대를 올리던 바리사이들 중에 단 한 번이라도 하느님의 이러한 주인다움을 실천해 본 이가 있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공감하며 이해했을 겁니다. 복음 안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으리라 희망을 가져 봅니다.
"주님은 내 생명을 떠받치는 분이시다."(화답송)
시편 작가는 안식일의 주인, 생명의 주인이신 분께서 죽음으로 우리의 생명을 떠받치고 계시다고 노래합니다. 우리는 주인이신 예수님의 생명을 먹고 나날이 생기를 얻어 누리는 행복한 종들입니다.
관습과 규범, 전통에 앞서 사랑을 우선하는 오늘 되시길 기원합니다. 주님께서 "내가 막아 줄게." "내가 책임질게" 하며 부족하고 죄인인 우리를 떠받쳐 주고 계시니, 우리도 용기를 내고 사랑을 다해 그분을 따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가정과 사회. 공동체 곳곳에서 '진정한 주인다움'을 살고 있는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강 론 말 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1년 9월 6일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0) | 2021.09.06 |
|---|---|
| 2021년 9월 5일 연중 제23주일 (0) | 2021.09.05 |
| 2021년 9월 3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0) | 2021.09.03 |
| 2021년 9월 2일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0) | 2021.09.02 |
| 2021년 9월 1일 연중 제22주간 수요일 (0) | 2021.09.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