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열하게 말씀을 사랑하신 예로니모 성인을 기리는 오늘, 미사의 말씀은 복음의 일꾼들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루카 10,3)
첫 파견을 받아 설레며 길을 떠나는 일흔두 명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아주 직설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좀 완곡히 표현을 하셔도 가뜩이나 여러 걱정이 앞설 텐데 회유나 감언이설 따위는 없습니다.
사실 예수님이야말로 이리 떼 가운데 오신 어린 양이십니다. 이를 요한 복음사가는 직설적으로"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11)고 전하지요. 악과 어둠이 판치는 세상에 하느님의 진리를 전하는 여정이 절대 녹록치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루카 10,5)
제자들은 만나는 이들이 자기들에게 호의를 가질지, 적대감을 가질지, 아니면 그저 무관심할지 가리지 않고 먼저 평화를 선사합니다. 이 평화의 축복은 낯설고 어색한 첫 만남의 분위기를 누그러뜨릴 수도 있지만, 백인백색의 세상에서 아직 누가 이리인지 알 길 없으니 그조차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도 복음의 일꾼이 전하는 평화는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든 소멸되지 않습니다. 그 평화를 반기는 이에게는 평화가 내리고, 거부하는 이 앞에서는 그 평화가 되돌아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혹여 거부를 당하더라도 평화의 축복을 건넨 이는 자기 평화를 잃지 않을 겁니다. 인간적으로 감정이 동요하고 실망과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지만 이내 되돌아온 평화를 껴안고 꿋꿋이 다음 길을 가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알아 두십시오.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습니다."(루카 10,11)
복음의 일꾼은 한 집에서뿐 아니라 한 고을 전체에서도 거부를 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 고향 나자렛에서도 그러셨지요.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요한 1,5)는 까닭입니다. 오랜 세월 세상에 겹겹이 쌓인 짙고 음울한 어둠은 그리 만만히 자리를 내주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일꾼은 진리의 말씀에 대한 저항과 박해를 각오해야 합니다.
제1독서에서는 말씀을 만나는 가장 이상적인 장면이 펼쳐집니다.
"온 백성이 일제히 '물 문' 앞 광장에 모여, 율법 학자 에즈라에게 주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서를 가져오도록 청하였다."(느헤 8,1)
말씀에 대한 갈망이 아래로부터, 즉 백성들에게서 싹터서 율법을 읽어 달라고 청하는 모습이 놀랍고도 감동적입니다. 많은 어려움과 방해를 극복하고 예루살렘 도성이 제 꼴을 갖추게 되자, 이제 백성은 내용으로 들어가고 싶어합니다. 사실 하느님의 도성도, 성전도, 온갖 제도와 신분도 하느님의 말씀을 담은 그릇이고 구현이지요.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의 뜻을 사는 진짜 하느님 백성이 되려면 이제는 형식들로 겹겹이 둘러싼 껍질을 뚫고 내용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백성은 모두 율법서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느헤 8,3)
"온 백성은 손을 쳐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였다. 그런 다음 무릎을 꿇고 땅에 엎드려 주님께 경배하였다."(느헤 8,6)
"먹고 마시고 몫을 나누어 보내며 크게 기뻐하였다."(느헤 8,12)
말씀을 듣고 백성들은 주님을 경배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말씀 안에 이스라엘의 역사와 자기들이 걸어온 삶의 궤적을 위로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가득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또 유배와 귀환, 도성과 성전 재건의 지난하고 고된 과정을 통해 구원을 체험하고 확신했기에, 무엇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소유한 그분의 백성이라는 자긍심이 율법을 통해 다시금 일깨워졌기에 그랬을 것 같습니다.
말씀과 다시 하나 된 그 날, 에즈라는 백성들에게 울지 말고, 맛있는 음식과 단 술을 즐기며 기뻐하라고 다독입니다. 또 미처 마련하지 못한 이들과도 나누라는 권고 또한 빼놓지 않지요. 말씀은 듣고 깨닫고 머무르는 이에게 고여 있지 않고 가난한 이들에게로 흘러나갈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렇게 되기까지 이스라엘이 얼마나 많은 고통과 난관을 넘어섰는지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 말씀의 가치와 사랑을 깨닫기까지 우리 또한 얼마나 많은 물음과 공허와 불안의 산들을 넘어왔고 또 넘어가야 하는지요! 불확실성 앞에 던져졌던 무수한 복음의 일꾼들이 뿌린 씨앗이 세상 어디선가 열매를 맺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가 어쩌면 우리 자신이 아닐까 싶습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 그는 제때에 열매를 맺으리라."(입당송)
주님께서 부족하지만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말씀의 일꾼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십니다. 갖가지 방해와 냉소와 몰이해 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말씀을 듣고 머무르고 사랑하는 이는 언젠가, "제때에"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당장 지금이 아니어도 "제때"는 반드시 올 것이니 오늘도 묵묵히 말씀과 함께 나아가시길 기원합니다. 말씀의 사람인 여러분을 축복합니다. 9월 한 달도 수고많으셨습니다.
오상선 바오로 신부(작은형제회)
'강 론 말 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021년 10월 2일 수호천사 기념일 (0) | 2021.10.02 |
|---|---|
| 2021년 10월 1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0) | 2021.10.01 |
| 2021년 9월 29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0) | 2021.09.29 |
| 2021년 9월 28일 연중 제26주간 화요일 (0) | 2021.09.28 |
| 2021년 9월 27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0) | 2021.0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