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오늘 복음의 눈먼 이들은 주님께 쫓아오며 자비를 청합니다.
이것을 보면서 자비와 관련한 성찰을 해봅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청원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일 좋아하는 청원 기도라고 했지만
2-30대 때는 제일 싫어하던 기도였지요.
자비를 달라는 제가 불쌍하다고,
더 나아가서 참 비참하다고 생각됐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저는 제가 불쌍한 것을 인정할 수 없었고,
하느님께도 그런 저를 인정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교만했던 겁니다.
그런데 교만함, 이것이 참으로 불쌍하고 제일 비참한 것입니다.
육신의 눈이 먼 것은 교만함에 비교하면 불쌍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고요?
첫째로 교만은 자기의 본모습이랄까 전모를 못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런데 참으로 모순입니다.
왜냐면 교만은 자기 밖에는 모르는 지독한 자기 집중인데
그렇게 자기를 보는데도 자기를 제대로 못 보기 때문이고,
제대로 못 보는 것은 자기의 죄와 비천함은 보기 싫어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보고 싶은 대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람들 가운데서 자기 주제를 모르고 날뛰겠지요.
그러나 이것은 자기의 비참함과 비 구원을 모르고
자비를 청하지 않음에 비하면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기의 비참함과 비 구원을 보고 인정해야,
그리고 이 비참함과 비 구원은 자기 힘으로 극복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구원자에게 구원을 청하고 자비를 청할 텐데
인정치 않으니 그야말로 구제불능이지요.
그렇습니다. 교만은 자기만 보고 자기 밖에는 못 보게 합니다.
그런데 자기 밖에는 못 본다는 말은 자기의 안과 밖이 있는데
자기 밖에 수많은 사람이 있고 하느님이 계셔도 못 본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교만한 사람의 무시無視 현상입니다.
한자에서 무시를 그대로 풀이하면 시력이 없다는 뜻도 되고,
우리말의 업신여김의 뜻처럼 있는 것을 없다고 보는 뜻도 됩니다.
제 생각에 업신여김은 없이 여긴다는,
분명히 사람이 있는데도 투명 인간처럼 없이 여김의 준말입니다.
이것은 다른 존재에 대한 엄청난 폭력이요 죄이기도 하지만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심각한 장애입니다.
이 장애는 인격적인 장애일 뿐 아니라 영적인 장애입니다.
인간 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하게 하는 것일 뿐 아니라
하느님을 믿을 수 없고 볼 수 없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비해 오늘 복음의 눈먼 이들,
오랫동안 눈먼 것 때문에 한껏 겸손해진 눈먼 이들은 주님을 믿었습니다.
주님께서 "내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너희는 믿느냐?"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조금도 주저함 없이 "예, 주님!"하고 대답합니다.
그들은 겸손하고 믿었기에 주님을 알아보고 주님의 능력을 알아본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눈이 멀었어도 주님을 알아본 그들이 부럽고
눈이 멀쩡해도 주님을 영적으로 보지 못하는 제가 오히려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그렇기에 오늘 눈먼 이들처럼 저 또한
"주님, 제게 자비를 베푸소서"라고 기도하는 오늘입니다.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작은형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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