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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의 자취 안에서] 29. 하느님의 시선

dariaofs 2022. 2. 20. 00:58

날씨가 무척 차갑다. 20년 입은 겨울 점퍼를 보며, 수녀님들은 더 따뜻한 것으로 하나 사라고 하는데 정이 들어 그것도 쉽지 않아 오늘도 입고 나왔다. 아직 따뜻하기만 한데, 아마도 유행하는 옷이 아니면 더 추워 보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장갑을 잃어버려 점퍼 주머니에 손을 감추고 광화문 금요기후행동을 위해 길을 나섰다. 세종로 사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한 10분이 지났으려나, 손이 꽁꽁 어는 것을 느꼈다.

 

소매 끝을 내려 손을 반쯤 덮고 피켓을 들다가 이번에는 오른손 왼손을 번갈아가며 주머니에 넣어 손을 녹이니 훨씬 나았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볼을 때리고, 피켓을 밀어붙였지만 이 정도쯤은 견딜 수 있었다.

 

한참을 서 있는데,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수녀님, 저….” 얼굴을 돌려 보니 젊은 여성분이 공손한 자세로 서서 내게 노란색 비닐 봉투를 내밀었다. “수녀님, 장갑 끼고 하세요. 제가 사왔어요.” 순간 나는 너무 놀라서 “아니에요, 자매님. 저는 괜찮아요”라고 거절을 하려 했다.

 

그러나 젊은 여성분은 “그냥 받아주시면 안 될까요? 감사해서요”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포장을 벗겨서 상표를 떼고 내 손에 끼워주고는 밝게 인사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 무리에 섞여 떠나갔다.

 

가지각색의 얼굴들이 초록불이 켜지기를 기다리면서 안 보는 듯 곁눈질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지나갔다. 피켓을 든 손에 온기가 돌았다.

누군가에게 폐를 끼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피켓에 크게 쓰여 있는 “기후행동 지금 당장!”, “지구가 아파요!”, “맹방해변을 살려주세요!”라는 내용에 사람들의 마음이 이렇게 움직이는 것임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 그 자매님은 장갑을 끼워주며 함께 피켓을 든 것이다. 그래서 마치 모세가 기도할 때 그의 팔이 내려오지 않도록 함께 팔을 떠받쳐 주었던 사람들처럼 다가왔고, 함께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손도 따뜻했지만 마음이 더 따뜻해졌다.

문득 돌이켜보니,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위하여 일하는 이들을 ‘이토록’ 섬세하게 지켜주시고 계속해서 그 일을 하도록 힘을 불어넣어 주시고 계셨다. 그분의 시선은 언제나 가엾은 이들을 지켜보시며 “내가 누구를 보낼까?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가리오?” 하며 당신 말씀에 귀 기울이는 이들을 듣는 마음이게 하시고, 그들이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라고 응답 드리게 하신다.

 

설사 그가 당신의 교회를 박해하는 이라고 하더라도 당신이 누구이신지를 일깨우시어 오히려 당신을 증거하게 하신다. 하느님의 시선은 모든 이들을 지켜보시면서도 강요나 지배 없이 그들의 필요를 읽으시고, 누군가를 보내신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모든 관계는 이 하느님의 시선 안에서 서로 주고받는 것으로 여겨진다. 나를 위해 그를 보내주시고, 그를 위해 나를 보내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찾아온 군중에게 하느님 나라에 대하여 선포하실 때, 그들을 바라보셨던 시선을 떠올려본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향한 그 많은 눈길들에 마주한 당신의 시선으로 “괜찮다, 너도 괜찮다”라고 응답해 주신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 많은 이들 가운데 시몬을 눈여겨보신다. 또 두 배 중에 굳이 시몬 베드로의 배에 오르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도움을 청하시고, 이후 깊은 데로 저어 나가자고 말씀하신다.

 

이에 베드로는 상황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서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린다. 하느님의 시선, 그 신비 앞에서 “제가 있지 않습니까?”라는 응답을 드린 것이다.

 

그러니 우리 삶은 태고부터 있었던 하느님의 지켜보심에 대한 응답이다. 가만히 보면 곁에 있는 모든 눈길은 하느님 시선의 다른 이름이다.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