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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 자취 안에서] 36. 우리의 봄

dariaofs 2022. 4. 15. 00:48

겨우내 가물다가 요사이 봄비가 한 번 내리고 나니 멀리 보이는 산자락이 뿌연 연둣빛 옷자락을 드러냈다. 가로수를 품고 있는 몇 줌의 흙에도 여린 초록빛 새싹들이 드리운 것을 보니 너무나 반갑다.

 

간간이 자리한 화단에 가장 먼저 자리 잡고 올라온 잎은 역시나 쑥과 개망초였다. 얼마나 반갑던지, 정말 1년 만에 만난 친구들이라 도심에서 새까맣게 때 낀 얼굴을 해도 여전히 예쁘기만 하다.

 

“하, 너구나! 반갑다. 여기서 만나네.” 그 친구들도 더 환한 빛으로 봄바람에 하늘거리며 나에게 인사한다. 정말 설레는 것은 벚나무 꽃망울들인데 금세라도 터질 양으로 잔뜩 오므리고 모두의 눈길을 받고 있다.

 

며칠 후면 제 환한 모습을 보여주려나 보다. 이들을 보면 노래할 수밖에 없고,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고, 마음에 생명과 사랑을 담을 수밖에 없다.

봄은 오고 있는데, 아직 우리 마음은 겨울인 듯하다. 힘이 빠지는 일들이 정말 많이 일어나고 있다.

 

시민들은 기후위기에 직면해 도대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전 지구적 팬데믹에서 어떤 의식 전환이 있어야 하는지, 에너지부터 먹거리까지, 분리수거부터 자원순환가게까지, 학교 교육부터 가정교육까지 배우고 직면하고 바꾸고자 뭔가를 시작하고 있다.

 

나 혹은 우리 가족, 혹은 우리나라를 넘어선 지구 시민적인 행동변화를 일으키고 싶어서, 전 세계인이 ‘지구의 시간(Earth Hour)’을 지키고, 버려지는 상자 뒤에 ‘기후행동 지금 당장!’을 써서 소리 없는 외침을 하고 있다.

 

한 시간 동안 벌서는 자세로 피켓을 들고 서 있어도 힘든 줄 몰랐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언어가 다르고 살아가는 상황이 달라도, 지금 우리가 처해있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모두 힘을 모으려는 줄 알았다. 사실 그렇게 힘을 모아도 뒤늦은 우리가 선택한 것은 ‘전쟁’이다.

정말 할 말을 잃게 한다. 서로 남을 탓하고, 심지어는 중상모략으로 그 어떤 선한 의도를 묵살하며, 자신들이 믿는 신념이 답이라고 강요하고, 뻔히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죽음과 고통을 부르는 그 일을 우리가 하고 있다.

 

총과 칼, 미사일이 필요한 상황으로 조장하고, 나라 간의 친교를 배제하고, 속국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넓게는 나라 간의 관계이지만 알고 보면 우리나라의 상황이기도 하다.

 

또 아주 가까이는 내가 살아가는 관계이기도 하다. 당장에 총을 쏘는 이들에게 나는 손가락질하고 있지만, 결국 이 모든 일이 내가 사는 이야기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너무 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너무 많은 사람이 자신이 살던 터전에서 내몰리고 있다. 성경에서 무죄한 아기들의 죽음으로 울부짖는 어머니들의 소리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그들의 피가 땅바닥에서 하느님께 울부짖고 있다.

 

자신이 도대체 어떤 권리로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저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다는 말인가? 무기를 들도록 하는 선의 가면을 쓴 악의 얼굴을 우리는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우리는 가장 똑똑한 척하면서 정작 가장 바보 같은 짓을 하는 듯하다. 우리는 성경에 쓰인 인간의 죄상을 알면서도 그대로 답습하는 바보이다.

 

하느님께서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시는데,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말하고 있다. 또 서로를 고소할 구실을 찾고, 올가미를 씌우려고 하고, 돌을 던지려고 하고 있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인간은 살려달라는 말이라도 할 수 있지만, 죽음의 공포 속에서 떨고 있는 자연 생명은 그 자리에서 죽을 수밖에 없다.

 

저 소리가 들리는가?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나와 우리와 그리고 모든 생명을 살리시기 위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위기에 처해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이 바로 그때다. 들고 있던 돌을 내려놓고 그가 살도록 할 때…. 모든 생명은 참으로 ‘봄’을 맞이하고 싶어한다.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