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기사 쓸 때면 성호 긋고 기도부터 먼저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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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영은씨는 청년들에게 과거의 일에 대해서는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미래에 생길 일에 대해서는 ‘마음의 부담감을 덜고 조금은 가벼운 자세로 임하라’는 조언을 전했다. 사진은 양씨가 2014년 8월 서울 광화문에서 124위 시복 미사에 참여하러 가는 길에 프란치스코 교황 사진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양영은(아녜스)씨는 2001년 KBS한국방송 27기 공채로 방송기자 생활을 시작해 2004년 KBS 8 아침 뉴스타임 앵커로 전격 발탁되었다. 지난 2017년에는 최은희 여기자상을 받는 등 대한민국 언론계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2006년 정진석 추기경 서임 당시, 각종 방송에서 인터뷰 요청이 쇄도하여 나는 거절하는 것이 일이었는 데 양영은 기자의 인터뷰만 허락했던 것을 보면 아마도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나를 끈질기게 괴롭혔는지(?) 알 수 있다.
▶천주교에 입교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유아세례를 받았어요. 어린 시절이라 그때가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아요.
외증조할머니께서 매일 묵주기도를 드리신 것을 기억하신 어머니께서 저와 동생을 낳으시고 “하느님의 인도하심에 의탁해야겠다”라는 생각에 함께 세례를 받으셨대요. ‘아녜스’라는 본명도 어머니께서 저에게 양보해주신 거예요.
▶학창 시절은 어땠나요?
돌이켜보면 아주 평범한 ‘범생이’였어요, 공부를 핑계로 성당에 나가지 않았던 적도 많았고요. 그런데 항상 마음속엔 신앙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늘 기도하곤 했거든요,
물론 주로 무언가를 간절히 바랄 때였지만요. 한 번은 좋아하던 미국의 ‘뉴 키즈 온 더 블록’이라는 보이밴드 그룹이 공연을 위해 내한했는데 직접 만나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그 꿈이 이루어지게 해주시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죠. 성모님 그림을 앞에 두고, 묵주반지로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를 드렸었어요. 그렇게 열심히 믿고 기도한 적은 그 전에도 후로도 없었던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정말 ‘드라마’처럼 소원이 이뤄졌고, 이후에도 그 가수들을 일로도 몇 번 더 만나게 되었어요. 순수했던 10대 소녀의 그 믿음이 스스로도 가끔 그리울 정도예요.
▶기자로 활동을 시작하셨는데 어려운 점도 많았죠?
네, 초반에 아주 힘들었어요. 특히 사회부와 정치부 초년병 기자 시절에는 회사를 그만둘까 매일같이 고민할 정도로요. 많이 울기도 했고요.
회사에 들어와서 “너는 왜 그러니? 이것도 못 하니?”라는 질책을 받을 때 스스로 너무 부족하게만 느껴져서 힘들었어요.
그리고 매일 새벽같이 출근해 다음 날 새벽에 퇴근하는 살인적인(?) 일정도 견디기 힘들었고요. 그런데도 그 ‘기자’직을 아직 유지하고 있는 저를 보면서 종종 생각해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거구나.’
▶방송하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아주 많죠. 생방송은 정말로 특별한 순간들의 연속이거든요. 스튜디오에 양(羊)과 반려견을 데리고 뉴스를 한 적도 있고,
생방송 중에 ‘아이스 버킷 챌린지’를 한 적도 있고요. 가장 특별했던 건 정진석 추기경님이나 성남 안나의집 김하종 신부님, 그리고 몇 해 전 돌아가신 제주 이시돌 목장 임피제 신부님을 뵀던 그런 순간들이에요. 은총과 감사의 순간이었죠.
▶업무 중일 때나 평상시의 삶에서 신앙이 어떤 도움이 되나요?
항상 극단의 순간엔 하느님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수술대 위에서 마취에 들어가기 직전이라든지, 사랑하는 존재가 갑자기 아파서 지켜주시라고 기도를 하게 된다든지.
평소에는 잊고 사는 것 같아도 결정적인 순간에 의지할 분은 하느님뿐이더라고요. 짤막한 한 줄의 화살기도도 큰 힘이 돼요.
뉴스 생방송이나 큰 프로그램 녹화에 들어가기 직전 또는 정말로 온 마음을 다해 잘 쓰고 싶은 기사가 있을 때는 성호경을 긋고 기도 먼저 해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담대해지는 느낌을 받아요.
방송의 한순간이 누군가의 인생이나 세상을 바꿀지도 모르는 일이니 온 마음을 다해 정성껏 임하자는 마음가짐과 태도를 지니게 되죠. 그게 제가 방송 생활을 하면서 때때로 느끼는 ‘신앙의 힘’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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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유학 시절 친구들과 |
▶미국 유학 시기에는 어떤 공부를 하였고, 어떤 추억이 있나요?
추억이 너무 많은데요, 제게 미국 유학 생활은 원 없이 공부하고 추억을 쌓은 시간이었어요. 뭐니 뭐니해도 사람 공부, 사람 경험이 제게는 가장 큰 추억이었죠.
저는 ‘세상에서 가장 지적인 도시’라고 하는 보스턴 옆 케임브리지에서 공부했는데 특히 하버드, MIT에서 세계적인 석학들을 많이 만났어요. 노엄 촘스키, 故 클래이튼 크리스텐슨, 조셉 나이, 네리 옥스먼, 석지영 교수 같은 분들요.
그분들과의 만남과 대화를 엮어 귀국 후 책으로 펴냈어요. 물론 그분들로부터 얻은 지혜와 영감을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워서 더 많은 사람과 나누려는 목적이 가장 컸고, 유학 생활의 소중한 추억들을 잊지 않고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컸어요.
그 책 「나를 발견하는 시간 하버드/MIT 석학 16인의 강의실 밖 수업」이 그래서 제 유학 생활의 가장 큰 결과물이자 자산이네요. 30대 초반의 모든 추억이 다 녹아들어 있는 제 유학 시절의 기록이기도 하니까요.
▶일상 속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나만의 방법은 무엇인가요?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을 땐 사람을 만나고요, 정말로 힘들 때는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 같아요. 성당에 가서 조용히 앉아 있어요.
예술과 자연도 많이 중요한 것 같아요. 물론 친밀한 사람들과의 긴밀한 관계도 큰 도움이 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강아지랑 놀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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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영은씨가 경기도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오보이'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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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영은 기자와 안나의집 김하종 신부. 양 기자는 2016년 출간한 「나를 발견하는 시간」 책 인세를 안나의집에 기부했다. 가톨릭평화신문DB |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 인생 후배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요?
제가 스스로 ‘마법의 주문’이라고 명명한 게 있는데요, 누가 가르쳐준 건 아니고 제가 살면서 이런저런 경험과 생각 끝에 깨닫게 된 거예요.
그건 바로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선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그리고 미래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선 ‘안 되면 어때? 일단 한번 해보지 뭐’라는 조금은 가벼운 자세로 임하는 거예요.
생각해보면 저는 과거에 대해선 후회가, 그리고 미래에 대해선 염려가 먼저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주눅이 들거나 생각만 하다가 정작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경우도 많았고요.
‘마법의 주문’을 좀 더 미리 깨닫고 읊으며 살았더라면 좀 더 용감하게 많은 것들에 도전했을 것 같아요. 사실 젊었을 때의 불안정, 불안함은 달리 말하면 ‘가능성’이잖아요, 젊음의 특권인 그 ‘가능성’을 백분 시험하고 누려봤으면 좋겠어요.
그게 ‘실패’가 된다 하더라도 젊었을 때의 ‘실패’라는 경험은 ‘노력을 했다는 훈장’이라고 하더라고요. 인생에서 내가 주도권을 갖고 선택하고 나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즐겨 하는 기도나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무엇인가요?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제 SNS 프로필에 있는 글인데요. 모든 걸 함축하고 있는 말씀 같아요. 이 기도를 드릴 때면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느껴요. 아무리 힘든 상황이더라도요.
양영은씨는 항상 시간이 부족하고, 시간에 쫓기는 삶을 살고 있다 보니 생각만큼 봉사를 많이 다니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나를 발견하는 시간」을 써서 나오는 인세를 노숙자 자활시설인 ‘안나의집 아지트(아이들-가출 청소년들-을 지켜주는 트럭) 프로젝트’에 기부하고 있다.
다른 좋은 뜻을 가진 분들도 이런 선순환을 계속 구축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오늘도 무에서 유를 만드는 창작활동을 통해 가치를 창출하고, 그렇게 얻어진 가치를 더 좋은 일을 위해 쓰고 나누면서 그런 생태계를 만들고 키워가는 아녜스 자매의 앞날이 기대된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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