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정 아나운서 “주님 앞에선 아이처럼 기도하고 마음을 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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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수정 아나운서 |
한국에 와서 더 예뻐졌다고 하니 손사래를 치며 까르르 웃는 강수정(마리아)씨는 시간의 흔적이 없다.
아나운서 활동 초창기 예능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그에게는 연예인처럼 재능과 인기가 많은 아나운서라는 뜻의 ‘아나테이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인기가 많아 연예인 못지않은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2005년 12월, 교구는 당시 정부의 중요사업이었던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정면으로 반대하고 윤리적 문제가 없는 성체줄기세포 연구를 위해 교구가 100억 원을 투자하는 등 생명위원회를 출범했다.
정부와 교회가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대치하던 상황에 강 아나운서는 교구의 ‘생명홍보대사’를 용감하게 맡았다. 이에 고 정진석 추기경은 두고두고 고마워했고, 이례적으로 강 아나운서와 어머니를 주교관 식당으로 초대해 오찬을 함께했다.
▶근황을 이야기해주세요. 텔레비전에서 다시 뵈어서 좋던데요.
안녕하세요. 집이 홍콩이라 홍콩댁(?)이라 불려요. 가족과 집이 모두 홍콩에 있어서 아이를 가진 후엔 죄송하게도 방송 섭외에 응할 수가 없었어요. 무엇보다 어렵게 가진 아기의 육아에 좀 더 집중하고 싶었어요.
코로나 상황도 심각해서 거의 1년 반 이상 일보다는 가정에 오롯이 집중한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올해 초에 감사하게 방송 제안이 들어와 다시 활동을 시작했어요. 설레는 마음으로 홍콩과 서울을 오가며 방송을 하고 있어요.
▶어떻게 신자가 되었는지요?
외가가 구교우 집안이어서 어려서부터 천주교 신자였어요. 특히 어렸을 때는 미사보를 쓰는 것이 예뻐 보여서 더욱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엄마의 여러 미사보를 혼자 거울 앞에서 써보고 공주 놀이를(?) 했던 기억도 있어요. 저의 세례명은 엄마와 같이 마리아예요.
▶아나운서로서 예능프로그램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워낙 다른 분들께서 웃기는 이야기를 많이 해서 저는 그냥 가만히 웃으며 서 있기만 했어요.(웃음) 예능에 나오게 된 것은 제 뜻과는 전혀 다르게 방송국 측 요구대로 했을 뿐이죠. 실제로는 힘들었어요.
▶어릴 적엔 어떤 아이였고 꿈은 무엇이었나요?
선생님께 칭찬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모범생이었어요. 부끄럼을 탔지만,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면 막춤을 추거나 연극을 하며 무대에 오르는 것도 좋아했어요.
선생님들은 제가 반장, 부반장을 자주 했었기 때문에 저를 아주 얌전한 학생으로 보셨는데 갑자기 특이한 행동을 하면 매우 놀라셨어요. 어릴 적 꿈은 놀랍게도 아나운서였어요.
성적표와 생활기록표를 찾아보는 프로그램에 나간 적이 있었는데 꿈이 아나운서라고 적혀있었어요. 정말 신기했어요.
▶아나운서가 되는 것이 참 어렵죠?
사실 연습도 못 하고 도전해서 첫해에 지상파 3사라 불리는 방송사에서는 모두 떨어졌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SBS와 KBS는 최종에서 떨어져서 가능성은 있다’고 응원을 많이 해주셨죠. 더 준비해서 다음 해에 KBS에 합격했어요.
대학원과 국회방송에서 일하며 준비했던 것이 도움되었던 것 같아요. 최종면접을 보고 집 앞 레스토랑에서 엄마랑 그동안 다이어트 때문에 못 먹은 음식을 잔뜩 시키고 그 앞에서 엉엉 울었어요.
그러면서도 다 먹었어요.(웃음) KBS에 붙은 최종 발표 날, 부모님과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나요.
▶하느님이 주신 재능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하느님께선 제게 노래나 춤 실력을 안 주셨지만, 대신 아주 밝은 성격과 힘든 일이 있어도 빨리 극복하는 단단한 마음을 주셨어요.
사실 여기서 고백하지만, 하느님께 잠시 삐진(?) 적이 있어요. 유산을 여러 번 할 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나 했고 기도도 소홀했어요. 비록 하느님께는 아이처럼 투정부렸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어요.
주님이 제 마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신 것 같아요. 그렇게 세상에 나온 아이가 지금 벌써 8살입니다. 아이가 말을 점점 안 들어서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에 더욱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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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수정(왼쪽에서 두 번째)씨가 2005년 12월 안성기 배우와 함께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홍보대사 임명장을 받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요?
하느님의 보호 안에 있는 가족의 사랑입니다. 제가 힘들 때나 즐거울 때 가장 먼저 지지해주고 기뻐해 주는 이들이 있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어요. 가족도 사람이라 갈등도 있지만, 신앙은 그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어요.
▶엄마가 되면서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저는 어렵게 아이를 가졌었고, 그 과정은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아이를 낳기 전엔 모든 걸 제 위주로 생각했다면 이젠 제 모든 것이 아이에게 맞춰져 있어요. 그래도 요즘은 조심스럽지만 아이를 위해 다 맞추지는 않으려 해요.
아이는 엄마의 일을 자랑스러워해요. 최근 제가 다시 일한다니 저에게 “엄마가 2년 동안은 아빠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 이제 엄마를 위해 일해 봐. 엄마는 일을 좋아하잖아!”라고 해서 감동했어요. 그래놓고 제가 일하는 날은 엄청나게 싫어해요.
▶어떤 기도를 많이 하시나요?
뭔가 원하는 것이 있을 때 자주 하고, 매일 자기 전에 고백하듯 속으로 기도합니다. 너무 자잘한 기도를 많이 해서 부끄러워서 말씀은 못 드리겠네요.(웃음) 하느님께서 저의 이런 아이 같은 모습도 사랑해주시리라 믿으며 그냥 마음을 보여드리려 해요.
▶인생 후배들에게 꼭 이것만은 기억하라 한다면?
저도 누구에게 조언하기에는 부족한 사람이에요. 하지만 한 발짝 먼저 뛴 사람으로 이야기할게요. 제가 방송을 통해 힘을 얻는 것처럼, 각자의 길에서 위로와 힘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인생을 살다가 넘어지는 일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럼 재빨리 일어나서 앞으로 달려나가길 바라요. 넘어지는 건 절대 부끄러운 게 아니고 다시 일어나서 가는 그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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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수정 아나운서는 2005년 교구 생명홍보대사에 임명됐다. |
가능한 방송을 오래 하고 싶다는 강수정 아나운서에게 ‘방송’이란 살아있다고 느끼게 하고, 인생의 의미를 깨닫게 하며 사람들과의 연대감을 느끼는 일이다.
출산과 육아로 잠시 방송을 떠나있었지만 “늘 그리웠고 돌아오고 싶었던 곳이었다”고 말하는 그는 천상 방송인이다.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한다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한다.
“2005년 12월 공영방송 아나운서로서 어려웠던 선택을 어떻게 했느냐”는 질문에 “신자로서 교구에서 원하는 것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다른 생각이나 어려움은 없었다”고 했다.
특히 “자신이 받은 만큼 하느님께서 시키시는 일에 따르겠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한다. 그녀의 행복한 기운이 더 많은 이에게 전달되길 바란다.
또한, 한층 성숙하고 의미 있는 생명과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며 사람들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는 이 시대의 훌륭한 방송인이 되기를 기도한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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