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와 오메가, 영원하신 하느님을 상징
▲ ‘A’와 ‘Ω’는 영원하신 하느님을 상징할 뿐 아니라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지배자로서 종말에 심판자로 재림하시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리스도 왕’, 프레스코, 4세기, 콤모딜라 카타콤, 로마. |
성경 속 ‘수’(數)의 의미에 관해 살펴봤었다. 고대와 중세인들은 물론이고 현대인들도 가끔 재미삼아 숫자로 그 날의 운세를 알아보곤 한다. 또 특정 수가 심리적으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동서양 불문이다.
서양에선 지금도 ‘13일의 금요일’을 불길한 날로 여긴다. 요즈음은 그렇지 않지만,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4’를 ‘죽음’(死)과 연관 지어 불길한 수라 하여 층수를 가리킬 때 ‘F’로 대치해 표기하기도 했다.
신자 중에도 수에 유난히 민감한 이들이 있다. 예수님의 나이 곧 주님께서 지상의 삶을 마감하고 부활하신 해, 그리고 교회가 탄생한 해를 일반적으로 서기 33년으로 본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수 ‘3’이 둘, 곧 하느님의 세계를 드러내는 수가 나란히 있다. 로마 제국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를 공인한 해가 313년이다.
이를 합한 수가 ‘7’이다. 7은 하느님의 수 3과 세상 만물을 상징하는 자연의 수 ‘4’가 합쳐져 성경 안에서 완전 수로 표현된다고 설명했다.
그리스도교 신경을 처음으로 선포한 제1차 니케아 공의회가 개막한 해는 325년이다. 이 수를 합치면 ‘10’이다. 성경에서 10은 ‘십계의 수’ 곧 율법의 수이다.
갈라진 교회와 일치하기 위해 개신교와 화해하고 가톨릭교회 신앙과 교리, 전례를 명확히 하기 위해 열린 트리엔트 공의회는 1545년에 개막해 1563년에 폐막했다.
개막과 폐막 연도 모두 그해를 합한 수가 ‘15’이다. 15는 3x5로 3이 다섯 번 겹친 수이다. 교회가 현대 사회에 적응하고 쇄신하기 위해 개방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개막한 1962년도 수를 합하면 ‘21’이다. 21은 3을 일곱 번 곱한 수이다.
수에 민감한 이들은 이런 식으로 해석하면서 신자들을 현혹한다.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를 드러내는 거룩한 표징인 성경의 수를 임의로 해석하거나 자기중심으로 의미를 두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으며 삼가야 한다.
이번 호에는 성경 속 문자 중 특정 알파벳의 의미에 관해 알아보자. 먼저 우리가 흔히 인용하는 ‘알파요 오메가’라고 하는 헬라어를 소개한다. 헬라어는 신약 성경의 문자이다. 곧 신약 성경은 모두 헬라어로 적혀 있다.
헬라어의 첫 자가 바로 ‘Α’(알파)이고, 끝 자가 ‘Ω’(오메가)이다. 이처럼 시작과 마지막을 뜻하는 알파와 오메가는 ‘시간과 공간’을 나타내는 말이다. 시공간은 유한하다. 시공간은 유한하다.
시공간에 있는 모든 사물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시공간에 구속받지 않는다면 그 한계가 없어져 모든 것이 완성되고 무한해진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무한한 존재, 시작도 끝도 없는 존재는 오직 하느님뿐이시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나는 처음이며 나는 마지막이다. 나 말고 다른 신은 없다”(이사 44,6)라고 선포하신다.
아울러 요한 묵시록은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또 앞으로 오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께서, ‘나는 알파요 오메가다’하고 말씀하십니다”(1,8)라고 고백한다. 따라서 ‘알파요 오메가’(A και το Ω)는 ‘영원하신 하느님’을 상징하는 말이다.
‘A Ω’는 또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지배자로서 당신 자신이 모든 것의 시초이며 완성이실 뿐 아니라 종말에 심판자로서 재림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부활초에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해 ‘A’와 ‘Ω’ 두 글자를 새긴다.
이처럼 성경 말씀에 따라 그리스도인은 하느님만이 처음과 마지막을 지배하신다고 믿는다.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는 영원한 분이시지만 창조주로서 우주의 시작과 마지막 곧 종말을 결정하신다고 가르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 영성에 영향을 끼친 예수회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는 우주의 창조는 단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오메가 점이라는 목적을 향해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고 했다.
헬라어 ‘T’(타우)는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어 교부 시대 때부터 ‘십자가의 상징’으로 쓰여오고 있다.
십자가는 로마 제국에서 시민을 제외한 이민족과 포로, 노예, 범죄자들을 사형에 처할 때 사용한 형구였다. 그래서 사형수인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 못 받혀 돌아가셨다.
대표적인 십자가 모양은 ‘T’ 형태이다. 짧은 가로 목과 긴 세로 기둥으로 구성돼 있다. 십자가의 세로 기둥은 사형장에 붙박이로 세워져 있었다.
사형수가 가로 목을 지고 사형장에 도착하면 형리들이 사형수의 양손을 가로 목에 못 박은 채 그대로 밧줄로 달아올라 이미 서 있는 세로 기둥에 매달았다. 세로 기둥 가운데쯤에는 사형수가 걸터앉을 수 있는 턱이 있다.
사형수가 이 턱에 걸터앉아야만 못 박힌 손이 찢어지지 않는다. 사형수가 이렇게 자리를 잡으면 형리들은 죄수의 발에 못을 박아 십자가에 고정시켰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문자 가운데 십자가 모양을 닮은 이 ‘T’(타우)를 가장 사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은 ‘타우 십자가’를 자신의 수도회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리길재 기자(가톨릭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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