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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자 수녀의 하느님 자취 안에서] 57. 생명과 평화를 회복하는 길

dariaofs 2022. 9. 14. 00:18

문득 가을이 찾아왔다. 막연히 기다려야 할 것만 같은 마음으로 더위를 견디던 중, 문득 새벽녘 반가운 손님처럼 그렇게 가을이 왔다. 매미는 제자리를 넘겨주고 훌쩍 떠나, 이제 곳곳에서 귀뚜라미와 찌르레기가 울기 시작했다.

 

내 마음 때문인지 새들도 보다 경쾌하게 노래하는 듯해 보인다. 하늘이 파랗고 높다.

 

그런데 이렇게 예쁜 하늘을 보다가도 예전처럼 마냥 감탄하지 못하고, 마음 깊은 데서부터 ‘우리는 이들을 얼마나 더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슬프다.

출근길에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맞은편 신호등 아래에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와 아이의 엄마가 서 있었다.

 

엄마는 아이에게 길을 건널 때에 지켜야 할 신호에 대하여 가르쳐 주고 있었다.

 

그런데 나와 함께 서 있던 젊은 여성 두 사람이 차가 다니지 않자 신호가 바뀌기 전에 아이가 서 있는 맞은편으로 건너갔다.

 

그러자 아이는 반사적으로 튕겨 나오듯이 내가 서 있는 쪽으로 달려 나왔다.

 

그런데 급하게 달려오던 오토바이가 횡단보도로 뛰어든 아이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서 순간적으로 방향을 틀어 멈추었다.

 

나도 모르게 “안 돼!”라고 외치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의 엄마는 반사적으로 아이에게로 달려가 아이를 안았다.

 

아이는 놀라서 울지도 못하고 있었고, 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초록불일 때 건너라고 했잖아”라고 다그쳤다.

 

아이의 눈이 이미 길을 건너가고 있는 젊은 두 여성 쪽을 향하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정말 다행하게도 아무 사고 없이 지나갈 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이 상황을 보며 나도 너무나 놀랐는데 아이와 아이의 엄마는 얼마나 놀랐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면서 이 상황이 정말 낯설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표상해주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신호가 바뀌기도 전에 길을 건넌 어른들로부터 비롯된 이 상황에서 그들은 아무런 책임 없이 유유히 그들의 길을 가고 없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싸우면 안 된다. 욕심내지 마라. 신호가 바뀌면 길을 건너야 한다. 올바로 살아야 한다’며 정말 많은 가르침을 준다.

 

그러면서 정작 싸우는 것도, 욕심내는 것도, 신호가 바뀌기 전에 길을 건너는 것도, 옳지 않은 결정을 하는 것도 어른들이 먼저 하고 있다.

 

결국, 아이가 배운 것은 말이 아닌 행동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수많은 교육으로 진리의 가르침을 주고 있지만, 우리의 옳지 않은 행동으로 그들의 실제 삶을 그르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런 책임 없이 갈 길을 간 두 여성처럼 우리도 이러한 태도로 직면한 위기의 상황을 지나쳐 가려는 듯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나는 시간을 돌이킬 수만 있다면 젊은 두 여성이 길을 건너기 전 상황으로 돌이켜서 “맞은편에서 아이가 보고 있어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아니, 더 구체적으로 “아이가 배우고 있어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가 적어도 무책임한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돌아서서 아이에게 “미안해. 우리가 잘못했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다행스럽게 살 수 있었지만, 우리를 따라 건너오는 다음 세대는 그렇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교회가 정한 창조시기를 지내며, 하느님께서 본래 우리에게 주신 그 선물을 깨닫고 생태적 회개의 길을 걷게 된다.

 

특별히 오는 9월 24일은 전 세계가 기후정의 행동으로, 대규모의 거리 행진을 할 예정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광화문 일대에서 펼쳐지게 될 이 여정이 마치 다음 세대를 향한 우리의 ‘사과’와도 같을 것이다.

 

위기의 상황에서 참으로 지혜로운 선택은 먼저 평화 협정을 청하고, 함께 살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함께 걷는 이 길이 그 평화의 길을 재촉하는 것이기를 기도드린다. 자, 노래하며 함께 걸어요!

조경자 수녀(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장상연합회 JPIC분과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