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획 특 집

[허영엽 신부가 만난 사람들] (35) IT 전문가 김승현 데레사

dariaofs 2022. 10. 6. 00:08

헬스케어 디지털 전문가이자 하느님께 지혜 청하는 신앙인

 

                                      ▲ 김승현씨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외국어 통역 봉사자로 활동했다.


부모님 신앙을 따라 자연스럽게 하느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었고, 여섯 살 때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가 된 김승현(데레사)씨.

김씨는 외국계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IT 전문가이다. 환자 중심의 디지털 생태계를 만들고자 글로벌 부서들과 협업하여 프로젝트도 하고,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여 한국 헬스케어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

 

사회과학 분야 공부를 했지만, 경력은 정보 기술 분야로 쌓아오면서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김씨는 서로 다른 듯 연결되어있는 두 학문과 분야를 융합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부분을 찾는 것이 재미있다고 말한다.

그를 처음 만난 때는 10여 년 전 청년성서모임에서였다. 이후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김씨가 외국어 봉사자로 참여하고, 수백 명의 봉사자를 관리하는 책임자로서 그와 다시 만났다.

 

김씨는 작년 명동에서 봉사 중에 외국 회사들과 30분가량 스마트폰으로 회의하기도 했다. 이처럼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크고 작은 봉사에 시간을 아끼지 않고 참여하며 인연을 이어 나갔다.

Q. 학창 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A. 친구들 만나는 것이 좋고 선생님도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어서 학교 가는 게 참 즐거웠어요. 방학하면 개학을 언제 하는지 물어봤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학교에서 구구단을 외워오라고 한 이후부터는 방학을 언제 하는지 물어봤어요.(웃음)

 

성실하고 명랑한 학생이었던 것 같아요. 다양한 것에 호기심이 많고 많은 걸 경험하고 싶었어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모든 과목을 모두 잘해야 하는 고등학교 때보다, 제가 관심이 있고 잘하는 과목에 집중할 수 있는 대학교 때 공부가 더 재미있었어요.


                                                                            ▲ 김승현씨


Q. 하느님께서 어떤 재능을 주신 것 같나요?

A. 항상 나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돌아보는 건 어려운 것 같아요. 돌이켜봤을 때 제가 재미있어하고 잘했던 건 언어 쪽이었던 것 같아요.

 

보이는 글자에 대한 호기심으로 한글을 깨우치고, 외국어도 뭐라고 얘기하는지 모르면서 따라 하고 싶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다가 관심을 지니게 되었어요.

 

지금 하는 일도 비즈니스에서 하는 언어를 이해하고 기술 분야에서 하는 언어를 알아서 서로가 이해하는 언어로 풀어내는 일이에요. 업무 용어나 사업에 대한 이해 등도 모두 내가 좋아하는 언어와 관련해서 쉽게 풀어낼 수 있으니 재미있게 할 수 있어요.

 

이러한 재능이 갈등을 싫어하고 부드럽게 잘 해결해 나가고자 하는 성향과 맞물려서 사회에서나 개인적으로나 미약하게나마 역량을 발휘해 나가는 것 같아요.

Q.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A.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 중 하나는 ‘조화’예요. 한 사람이 모든 걸 다 잘할 수는 없어요. 또한, 다양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여러 가지 각기 다른 경험을 한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하지요. 살아가다 보면 혹은 일하다 보면 이해가 충돌되거나 감정이 개입되기도 하는데 이 모든 걸 조화롭게 풀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삶의 길잡이나 지표가 되어준 성경 말씀이 있다면?

A. 창세기에 나오는 “보시니 참 좋았다” 이 말씀이 오랜 여운이 남아요. 그렇게 하나하나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사랑으로 정성을 다하여 만들어 주신 곳에서 우리가 사는 거잖아요. 모든 생명체 하나하나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구절이에요. 세상의 모든 생명체를 더 잘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Q. 성서 모임과 연수는 삶 속에서 어떤 의미가 되었나요?

A. 성경 공부를 통해 막연했던 성경 말씀이 생활과 연결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특히 탈출기 공부했을 때가 생각나요. ‘광야’ 하면 끝도 없는 사막에 끝 날에 대한 기약도 없는 시련이었는데 이것을 삶 속에서 연계해서 생각해보니 많은 위로와 힘을 얻게 되었어요.

Q. 살면서 ‘이것이 바로 하느님 기적’이라고 느꼈던 체험이 있나요?

A. 어렸을 때 첫영성체 준비하던 때가 떠올라요. 교리 공부할 때 신부님께서 매일 묵주기도를 드리면 하느님께서 예쁘게 보실 거라고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매일 밤 자기 전에 무릎 꿇고 두 눈 꼭 감고 묵주기도 5단을 드렸어요.

 

첫영성체 며칠 전에는 여름밤 방문을 닫고 묵주기도를 드리는데 양팔 옆에 시원한 바람이 느껴졌어요. 묵주 알을 하나하나 넘기며 기도드릴 때마다 하얀 구름 같은 것이 펄럭이면서 예쁜 빨간 장미꽃이 한 송이씩 놓이는 게 눈을 감았는데도 보였어요.

 

그리고 첫영성체 바로 전날 밤 꿈에 성모님이 보였는데 그때까지 본 적이 없는 성모님 모습이었어요. 집이나 성당에서 봤던 성모상은 두 손을 기도 손으로 모으고 먼 곳을 바라보시는 성모님이었는데 꿈에서는 두 손을 양옆에 펼치고 계셨어요. 꿈에서 깬 후 그때까지 본 적 없는 성모상을 꿈에서 봐서 신기해하며 첫영성체를 하러 성당에 갔어요.

 

성체를 잘 모시고, 성당에서 선물로 작은 성모상을 주셨는데 바로 꿈에서 뵈었던 성모님 모습을 하신 성모상이었어요. 신기해서 계속 기억에 남아요. 그때 기억이 담긴 성모상이라 잘 간직하고 있어요. 야광이라서 밤에는 환하게 빛나신답니다.

Q. 일하면서 언제 가장 보람됐나요?

A. 직접적으로 신약을 개발하지는 않지만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건강과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며 하고 있어요. 가끔은 일 자체만 집중하지만 넓게 보면서 더욱 편리하고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은 없는지 다시 되돌아보게 되어요.

 

Q. 일하면서 기도도 열심히 하나요? 어떤 기도를 하나요?

A. 어떤 일을 하더라도 잘해나갈 지혜를 허락해 주시길 기도드려요. 그러면 그 지혜를 저에게 주실 때도 있고 지혜로운 조력자를 보내주실 때도 있었어요. 지나고 보니 스킬이나 언변, 지식, 인복 모두 중요하지만 모든 걸 지혜롭게 조화시키고 지혜로 헤쳐나갈 에너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래서 항상 기도해요.

                                          ▲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하는 김승현씨.


Q. 특별히 생각나는 봉사가 있나요?

A. 예전에 어딘가에 혹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일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어떤 봉사를 하면 좋을지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픈데 돈이 없어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다면 정말 비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관련 기관이나 단체를 알아보았더니 마침 ‘라파엘 클리닉’이라는 이주 노동자 무료 진료소를 알게 되어 정기적으로 봉사했어요.

 

언어가 달라서 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분들에게 간단하게 통역하는 도움을 드렸습니다. 또 영상의학과에서 초음파 진료를 도와드리거나 초음파나 엑스레이 영상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봉사를 했어요.

김씨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여름휴가를 내고 프레스센터에서 기사를 번역하는 봉사를 했다. 그녀는 기사를 번역하면서 성경 용어도 많이 알고, 기사 쓰는 법도 알게 되어 봉사가 오히려 자신에게 더 도움이 되었다고 겸손하게 말한다.

 

가끔 유기견 보호소 봉사나 헌혈 등 그때그때 도움이 필요하겠다 싶은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찾아가고, 더 많이 봉사하고 싶다는 그녀의 말이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었다. 그와 같은 사람들이 더 많아질수록 우리가 사는 사회는 더욱 밝고 따뜻해질 것 같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영성심리상담교육원 원장)